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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행나무 위 참새 Aug 06. 2024

겨울 1.



우리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그는 내가 알아도 되나 싶을 만한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꺼내놓았다.그게 그렇게 독이 될 줄 모르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 깊은 상실감과 부재는 나를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친구나 다른 가족에 위로는 고마웠지만 그때마다 나를 밖으로 끄집어낸 건 영화와 책들이었다. 평일엔 겨우 회사를 다니고 휴일이면 하루종일 집에 틀어박혀 영화를 몇 편씩, 책을 몇 권씩 닥치는 대로 보기 시작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어느 영화감독의 특별전을 보기 위해 영화관을 갔고 오전부터 저녁까지 영화를 보다 나오던 길이었다. 어느새 어두컴컴해진 겨울의 공기를 마시며 영화리뷰를 읽으며 걸어가던 중, 갑자기 뛰어오는 한 남자와 부딪혔다.


“아.... 뭐야...”

“괜찮으세요? 정말 죄송해요. 그런데 혹시 기억이라는 영화 상영 끝났을까요? 보고 나오시는 것 같아서 여쭤봐요.”

“네, 아마 5시 35분 회차가 마지막일 거예요.”

“하.... 진짜 보고 싶었는데, 감사해요. 그나저나 정말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


하루종일 영화만 본 탓에 허기진 나는 그를 제쳐두고 가까운 카페로 향했다. 커피와 빵 한 조각을 급히 먹고 창밖을 바라보니 아까 그 남자가 담배 하나를 피우며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갑자기 뒤를 돌아본 그와 눈이 마주쳐 시선을 황급히 돌린 나는 커피를 쏟아 허둥지둥 테이블을 닦았다. 어느새 카페에 들어온 그가 또다시 괜찮냐고 물어왔다.


“이번에도 괜찮아요.. 하아... “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나를 조금은 당황한 얼굴로 바라보며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합석해도 되냐고 묻지도 않고 다소 무례하게 그는 아까 말한 그 영화가 어땠는지, 꽤 박식해 보이는 용어를 써가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는 평범한 회사원이라는 그는 영화를 말할 때만큼은 열정적이고 재미있게 이야기했다.


”저는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유체이탈을 한 것처럼 제가 아닌 느낌이 들어요. 이상하죠? 그러면서 과거에 지나갔던 사람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요. 근데 그게 누군가를 만나고 있을 때 그 관계를 망치는 요인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의도치 않게 상처도 많이 주고... 차였던 이유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잘 안 되네요.”


“음... 어떤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저도 영화를 보면 그 속에 갇혀서 어떨 땐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또 너무 깊게 공감을 해서인지 괴로울 때가 있거든요. 물론 관계에 지장을 줄만큼은 아니지만 “


그러면서 그는 지나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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