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 다시 읽기> 설요(薛瑤), ‘반속요(返俗謠)
문화적 맥락으로 다시 읽는 시
化雲心兮思淑貞 (화운심혜사숙정)
洞寂滅兮不見人 (통적멸혜불견인)
菊草芳兮思芬蒕 (국초방혜사분온)
將奈何兮靑春 (장내하혜청춘)
구름의 마음이여 맑고 곧음을 생각하노니
동굴 죽은 듯 고요함이여 아무도 보이지 않네
요초의 꽃다움이여 향기로움을 생각하노니
아 어이할까나 이내 젊음을
- 고은 번역-
중국 전당시(全唐詩)는 신라사람의 시 몇 편도 수록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다. 당 고종 때 그곳으로 건너간 신라 설승충(薛承沖)의 딸인데 미인이었다. 당나라 좌무위장군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15세인 그녀는 삭발 입산해 버렸다.
6년 뒤 세상에 나올 때 지은 노래다. 젊은 날의 번뇌가 서려 있다. 신라로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살다가 죽었다. 이름난 시인 진자앙(陳子昻. 661~702)이 그녀의 묘비명을 지을 정도였다. 초사(楚辭)투이지만 단순함은 시경 국풍(國風) 쪽이다.
-고은, ‘네이버블로그 여름개굴’에서 재인용-
‘구름[운(雲)]’은 일정한 형체가 없고 그 나타나고 사라짐도 덧없다 하여, 불교에서 ‘인생의 무상함, 덧없음’을 비유하기 위해서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운심(雲心)’은 글자대로 ‘구름의 마음‘이라고 번역할 일이 아닌 듯합니다. ’인생의 덧없음, 불교의 인생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뜻하는 말일 것입니다.
‘적멸(寂滅)’은 명확한 불교 용어입니다. ‘죽음·입적·열반’을 뜻하기도 하지만, ‘모든 번뇌와 미혹을 벗어나 고요의 경지로 들어간다’는, 수행자가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런 불교적 맥락에서 이 시를 다시 보려고 합니다.
제목에서 ‘반속(返俗)’은 ‘속세로 돌아간다’는 뜻이고, ‘요(謠)’는 ‘노래’이니, ‘반속요(返俗謠)’는 ‘세속으로 돌아가며 부르는 노래’ 정도가 될 것입니다.
1. 1구, 化雲心兮思淑貞 (화운심혜사숙정)
‘운심(雲心)’이 ‘불교의 인생관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라면, ‘화(化)’는 ‘그렇게 변화되었다’ 곧, ‘불교의 인생관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불교에 귀의하여 스님이 되었다는 것이죠.
‘혜(兮)’는 감탄을 뜻하는 어조사로, 우리말의 느낌표[!]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합니다.
‘숙정(淑貞)’은 ‘맑고 곧음’의 의미이고, ‘사(思)’는 ‘생각하다’의 뜻이니, ‘그리워하다, 추구하다’로 의미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구의 해석은,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여(불교에 귀의하여), 맑고 곧은 삶을 구하였더니’
가 될 것입니다.
2. 2구, 洞寂滅兮不見人 (통적멸혜불견인)
여기에서 ‘洞’은 동굴, 골짜기를 의미하는 '동'이 아니라, ‘통’으로 읽어 ‘비다, 비우다’의 뜻이라는 견해(한문학자 이가원 교수)가 있습니다. ‘적멸(寂滅)’이 ‘모든 번뇌와 미혹에서 벗어난 경지’를 뜻한다면, 이 견해와 잘 맞아 떨어집니다. 그렇다면 ‘통적멸(洞寂滅)’은 ‘동굴 죽은 듯 고요함이여’ 또는, ‘골짜기의 적막함이여’가 아니라,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세속적 욕망과 미혹을 비워 낸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맞추어 보면, ‘불견인(不見人)’은 단순히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직역보다는, ‘인간적인 삶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해석이 더 매끄러워 보입니다.
그렇다면 2구의 해석은,
‘(불교에서는 세속적인) 모든 것을 비워 없애라 하니(모든 것을 비워 적멸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하니), 사람다운 삶의 모습이 보이지를 않는구나.
가 될 것입니다.
3. 3구, 菊草芳兮思芬蒕 (국초방혜사분온)
‘국초(菊草)’는 ‘국화꽃’을, ‘방(芳)’은 ‘꽃의 아름다운 모습’을, ‘분온(芬蒕)’은 ‘향기’를 뜻합니다. ‘思(사)’는 1구와 같이 ‘생각하다, 그리워하다, 추구하다’의 뜻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3구의 해석은,
‘아름답게 꽃은 피어 그 향기에 마음이 이끌리는데’
정도가 될 듯합니다.
아름답게 핀 꽃이 고운 향기를 흩날리듯, 젊음의 절정에 이른 화자가 즐거움과 행복으로 가득한 세속적 삶에 대한 미련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4구, 將奈何兮靑春 (장내하혜청춘)
‘장(將)’은 ‘장차, 앞으로’, ‘내하(奈何)’는 ‘어찌할까’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4구의 해석은,
‘앞으로 어찌할 것인가 내 청춘을’
일 것입니다.
세속으로 돌아가야겠다는 화자의 결단이 드러나고 있는 부분입니다.
내 해석을 정리해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맑고 곧은 삶을 구하였건만,
모든 세속적 욕구를 비워 없애라 하니, 사람다운 삶이 보이지를 않는구나.
꽃은 아름답게 피어 그 향기에 이끌리는데,
아아, 장차 어찌할까나 이 내 청춘을.
* 책마다 글자가 조금씩 다릅니다. ‘국초(菊草)’를 ‘瑤草(요초)’라고 한 경우는, 그저 ‘아름다운 꽃’을 가리키는 말이니 큰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적멸(寂滅)’을 ‘적막(寂寞)’이라고 한 경우가 좀 문제인데, 이것도 화자가 불교에서 추구하는 해탈의 경지를 부정적으로 인식해서 ‘적막함’으로 표현했다고 보면, 큰 뜻에서의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위 고은 시인의 해석은 ‘요초’, ‘적막’으로 된 원문을 텍스트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