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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현수 Mar 01. 2024

<우리 시 다시 읽기> 김종삼, '묵화(墨畵)'

비문법적 피동사의 묘미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시적 분위기는 매우 담백하고 담담하다. 수묵화처럼 펼쳐지는 할머니와 소 사이의 유대감은 우리의 마음을 적신다. 잔잔하게 파고드는 그들의 교감과 연민이 우리의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크게 울리게 한다’. 그것이 이 시가 보여주는 여백의 아름다움이다. 고요의 손 건넴, 그 기이한 감응이 영혼의 숨구멍이다.

- 김경복(문학평론가) -


마을에서도 꽤 떨어져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는 외딴집에, 나이 많은 할머니와 또 할머니만큼 늙은 소 둘이 쓸쓸하게 살고 있습니다.

늙은 소가 그런 것처럼 할머니는 주어지는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갑니다. 할머니에게 살아가는 것은 그저 사는 일일 뿐입니다.

다만 이제 밭일이 소에게도 할머니에게도 점점 힘에 부쳐 갑니다. 할머니가 소의 어깨 위에 애써 무거운 멍에를 올리고 힘들게 쟁기를 지탱하면, 소는 느릿느릿 힘든 걸음을 옮겨 밭을 오갑니다. 착하게 늙어 더 늙은 어머니와 홀로 사는 벙어리 아들 같은 소입니다.

그렇게 해가 지고, 밭에서 돌아와 목을 축이는 소의 목덜미 위에, 할머니가 주름진 손을 얹습니다. ‘오늘도 힘들었지. 우리밖에 없구나.’  


이런 서사를, 여백 넓게 먹 필치 몇 번으로 그려낸, 제목처럼 한 장의 묵화 같은 시입니다.

그런데 굳이 해야 할 필요도 없는 군더더기 말들을 붙이고 붙여 풀었는데도, 아직 남은 여운이 있다는 것이 느껴져 안타깝습니다. 생각하다가, 이 시에서는 교감의 다른 한쪽인 소의 마음도 읽히고 있다는 사실을 놓쳤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시에서 소의 감정이 읽힌다면, 그것은 ‘얹혀졌다’는 시어의 효과가 클 듯합니다. 물론 ‘함께, 서로’라는 부사가 세 번 쓰이고 있지만, 이것은 표현 그대로 보면 할머니의 말일뿐입니다. 그런데 ‘손을 얹었다’는 행위를 ‘손이 얹혀졌다’는 피동태로 표현하니, 참으로 이상하게도 소가 된 내 목덜미 위에 할머니의 거칠지만 따뜻한 손이 와 닿는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함께, 서로’가 자연스럽게 소의 마음으로도 더 잘 이어지고 있습니다. ‘얹혀졌다’는 ‘얹혔다’로 해야 문법에 맞겠지만, ‘얹혀졌다’로 한 음절 늘어난 이중피동의 비문법적 어휘가 호흡을 약간 늦추면서, 오히려 할머니의 손길을 은근하게 만들어 주고도 있습니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가 손을 얹었다.


라고, 능동형으로 표현했을 때와 비교해 보니, 이 피동형 시어의 효과가 참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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