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현수 Mar 12. 2024

<우리 시 다시 읽기> 서정주, '화사(花蛇)'

그의 시까지 내칠 수 없는 까닭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꽃다님 같다.


너의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잃은채 낼룽그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눌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무러뜯어.


다라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麝香 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게 아니라

석유(石油) 먹은 듯……石油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눌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 슴여라! 배암.


우리순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 슴여라! 배암.


·· 이 시집의 표제작 ‘화사’에서 시인이 사향과 박하와 방초와 징그러우면서 아름다운 배암과 고양이 같이 고흔 입설을 말할 때, 우리는 그것들을 읽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느낀다. ‘화사’의 언어들은 미약(媚藥)을 바른 화살들처럼 우리에게 날아와 몸 깊숙이 꽂히고, 그 순간 우리 몸은 가눌 수 없는 어지럼증으로 비틀거린다. 탐미가 예술의 전부는 아니지만, 탐미 없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 ‘화사’는 한국어로 표현된 예술의 끝 간 데다. 적어도 탐미의 끝 간 데다. 문학책 광고 카피에 너무 자주 쓰여 상투어가 돼버린 표현을 말의 가장 엄정한 의미에서 다시 쓰자면, ‘화사’는 한국어에 벼락처럼 내린 축복이다.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



기독교에서 뱀은, 이브를 유혹하여 아담과 함께 선악과를 먹게 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뱀은 원죄의 표상이 되지만, 다른 편으로는 '어떤 규범에 의해 억압당하는 인간적 본능의 상징'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뱀이 그 형태적 유사성 때문에 종종 남성 성기를 상징한다는 사실과 관련시켜 보면, 그 '인간적 본능'은 '관능적, 성적 욕망'으로까지 구체화됩니다. 요컨대 뱀은 '부자연스러운 규범에 의해 억압당하는 원초적 본능의 표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2연 - 뱀에 대한 두 가지 시각


본능은 윤리적 제약 때문에 늘 억누르고 감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 본능은 '사향'이나 '박하'처럼 너무도 향긋한 유혹입니다. 1연 첫 행의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란 바로 이렇게 '윤리적 제약 때문에 감춰져야 하는 매혹적인 본능의 뒷길'인 것입니다. 

다음 두 행은, 뱀이 ‘사향 박하의 뒤안길’을 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드러냅니다. ‘아름답다'는 본능과 '징그럽다'는 윤리의 대립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해설들은 이 두 개의 시각을, 뱀을 바라보는 화자의 갈등(윤리와 본능)으로 보는 듯합니다. 그러나 ‘징그럽다’는 행을 제외한 이 작품 전체의 기조는 분명합니다. 화자는 뱀(본능)에 대해 긍정적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두 행이, 화자의 내면적 갈등이 아니라 뱀이 ‘사향 박하의 뒤안길’을 다닐 수밖에 없게 만드는 두 개의 다른 세상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연 3행에서 ‘을마나, 크다란’은, 시인의 고향뿐만 아니라 서울 사투리이기도 하기에, 이어령 선생의 해설처럼 의도적인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오는 감탄사 ‘으~!’를 연상시키는 ‘ㅡ’음이 뱀에 대한 일반적 혐오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2연에서는 뱀(본능)을 보는 화자의 시각이 분명해집니다. '꽃대님'은 값비싼 옷감으로 꽃무늬를 넣어 만드는 남자들의 호사입니다. 화자에게는 그처럼 뱀이 아름답습니다.. 


3연 – 윤리적 규범에 대한 거부와 저항


화자는 이렇게 아름다운 뱀(자연스럽고 원시적인 본능)에게 죄의 굴레를 씌워 놓은 윤리적 규범을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뱀에게, 너의 먼 조상이 능란한 말솜씨로 이브를 유혹해 결국 하느님으로부터 말을 빼앗기게 되었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에 대한 불합리한 억압이므로, 그 입으로 하늘을 물어 뜯으며 저항하라고 부추깁니다. 뱀으로 상징된 '원시적 본능'이 '푸른 하늘'로 표현된 '윤리적 제약'을 거부해야 한다는 화자의 생각을 드러낸 연입니다.


4, 5연 - 본능적 욕구에 사로잡힌 화자의 고통


그러다가 화자가 갑자기 돌을 던지면서(돌팔매를 쏘면서) 뱀을 내칩니다.

화자는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가 아니라'라고 말합니다. 즉 이브를 통해 아담이 죄를 짓도록 한 윤리적 이유 때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뱀을 쫓는 것일까요?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라는 구절이 그 이유를 말해 줍니다. '가쁜 숨결'은 '본능적, 성적인 흥분 상태'입니다. 그리고 '석유 먹은 듯'은 그 '흥분 상태'가 얼마나 강렬한지를 보여줍니다. 윤리적 제약에 대한 저항감이 생기면서 성적 욕구가 일어난 듯합니다. 그런데 지금 화자에게는 그 흥분을 가라앉힐 방법이 없습니다. 문득 자신의 강렬한 흥분 상태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뱀(욕망)을 향해 '달아나거라(사라져 버려라).'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6, 7연 - 본능적 욕구에 대한 긍정과 수용


그래도 화자는 자신의 본능적 욕구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전적으로 긍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뱀(욕망)의 아름다움을 긍정하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바늘에 꼬여 두를까 보다.'는 바로 그러한 심정의 표현으로 보입니다.

본능적 욕망, 특히 성적인 욕망의 긍정과 수용은 대상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화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도 자신과 같이 본능적 욕구에 대해 긍정적이며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대상은 '순네'입니다. 그녀는 '클레오파트라'나 '고양이'처럼 더없이 아름답고 관능적인 입술을 가졌지만, 윤리적 규범의 틀을 쉽게 벗어날 만한 성격은 아닌 듯합니다. 그래서 화자는 '순네'도 자신과 같이 적극적으로 본능적 욕구를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됩니다(스며라 배암).



이 작품의 주제를 대부분의 해설에서는 '원시적 생명력에 대한 향수'라고 하고 있습니다. 성적인 욕망을 포함한 본능적 욕구는 윤리적 규범에 의해 억압되고 있지만, 실은 살아 있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명 현상이라는 점에서 이를 '원시적 생명력'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징그러운, 꽃대님'과 같은 감각적인 시어, '몸뚱아리, 아가리, 대가리'와 같은 비속한 어휘도 서슴지 않고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본능적 욕망의 강렬함과 그것을 감추지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려는 화자의 태도가 어휘를 선택하고 구사하는 측면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 시 다시 읽기> 김종삼, '묵화(墨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