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생은 한 편의 소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을 동반한 만남이란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가. 그런데 거기에는 “부서지기 쉬운/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함께 오는 것이니 방문의 무게는 남다르다. 시의 후반부에 이르면 시인의 시적 사유과 감각이 더욱 두드러진다. 전반부에서 보인 돌올한 시적 사유와 감각이 더 심도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문학적 밀도가 ”그 갈피를/아마 바람은 보듬어 볼 수 있을 마음”에서처럼 한층더 축적되고 있다.
- 문현미, ‘기독교한국신문’-
사람마다 보고 듣고 겪고 읽는 것들은 다 다릅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이 직,간접의 체험들로 인해서 각자가 인식하는 세계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세계를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일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와 마주치게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굉장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해설들이 보통 이 시를 이렇게 새로운 세계, 하나의 다른 우주와의 만남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교보문고에 걸개 시로 올렸던 앞 부분만을 보고 생각했다면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 시는 그렇게 관념적, 철학적인 내용이 아닙니다. 이 시가 담고 있는 것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삶입니다. 방문객이 가져오는 것이 새로운 세계라면 그 ‘어마어마’함은 낯섦과 발견의 충격이겠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삶의 무게라면 그 ‘어마어마’함은 화자의 강렬한 공감과 동정의 표현일 것입니다.
화자는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방문객의 삶의 역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양상은 다르지만, 한결같이 힘들었을 인생의 중량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내 얘기를 소설로 썼으면 족히 몇 권은 되었을 거다.’라고 하면서 한숨짓던 그런 인생입니다.
게다가 인생, 인간은 금방 부서질 수 있을 만큼 연약한 것이어서, 삶의 과정마다 부딪혔던 실패와 절망과 좌절의 순간들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어마어마한’ 인생을 살아낸 방문객이 내게 오는 것입니다. ‘- 그 갈피를’이라는 시구를 독립된 시행으로 잡거나 다음 시행의 앞에 두지 않고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에 연결한 것은, 그 ‘부서짐’의 속사정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보입니다.
화자는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그 속사정을 살펴볼 수 있다면)’이라고 가정하고 있지만, ‘바람’과 같이 전지적 능력을 갖고 속속들이 들여다 보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사실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처럼 그 사람의 인생 역정에도 엄청난 고뇌와 고난의 무게가 얺혀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이 말은 ‘사람이라면 마땅히’라는 말의 수사적 표현일 뿐입니다.
그래서 화자는 말합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환대’할 수밖에 없다고. 어마어마한 무게를 감당해 온 그 연약한 인생들을, 따뜻한 이해와 위로와 격려로 맞이할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연약한 인간과 인생에 대한 시인의 깊은 연민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