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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풀' 해설과 감상

- 민초(民草) : 민중을 잡초에 비유해 부르는 말

by 느티나무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르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좀더 구체적으로 해석한다면, 오랜 역사를 통하여 억세고 질긴 삶을 지켜 온 민중과 그들을 일시적으로 억압하는 사회 세력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들판의 수많은 풀처럼 이 세상에 언제나 무수히 있어 왔던 서민들, 풀이 끊임없는 시련을 견디며 삶을 지키고 번성하였듯이 그렇게 살아 왔던 민중들 - 이러한 상징적 연결은 극히 자연스럽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어떤 사람들은 민중을 '민초(民草)'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와 같은 해석을 거쳐서 본다면 이 작품은 역사 안에서 끊임없는 시련을 받으며 살아 온 민중이 결국은 그들을 누르는 일시적 강제의 힘을 이겨 내는 생명력의 원천임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 김흥규, '한국 현대시를 찾아서' -



이 작품은 자연의 장면을 빌려, 정의롭지 못한 강자의 폭력과 감시를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으면서도, 그 바람을 견디고 다시 일어서는 민중의 힘을 또렷이 드러내는 시입니다. 쓰러지고 우는 순간조차 패배가 아니라 재기를 위한 준비 과정임을 보여주고,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가장 단순한 언어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1연 ― 수동의 눕기

1연의 풀은 억압(바람) 앞에 눌리고 울고 다시 눕는 수동적 존재입니다. 여기서 풀은 불의의 폭력 앞에 놓인 민초의 상징일 것입니다. 화자는 개입하지 않고 관찰자적 태도로 현재형을 유지하면서, 억압이 진행 중임을 느끼게 해 줍니다.

형용사는 거의 없고 '부사, 동사'가 '풀'의 이러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눕다 - 나부끼다 - 울다 - 눕다 - 울다 - 울다 - 눕다'로 연결되는 동사들이 전부 수동적 좌절의 모습입니다. 여기에 '드디어 울었다'의 '드디어'가 인내의 임계점을, '더 울다가'의 '더'가 증폭되는 슬픔을, '다시 울었다'의 '다시'가 반복되는 좌절과 무기력을 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2연 - 능동으로의 전환

1연에서 수동적이기만 했던 풀이 능동적 모습으로 변모합니다. 바람이 부는 상황은 마찬가지이지만, 먼저 눕고 먼저 울고 먼저 일어나는 의지를 가진 능동적 존재입니다. 바람에 대한 저항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눕다'와 '울다'라는 동사는 그대로이지만, 여기에 '더 빨리'라는 부사가 결합되면서 행동이 자기주도적이 되고 감정도 능동적으로 변합니다. 여기에 '먼저 일어난다'는 시구가 등장하면서 '눕기'(패배)'가 '일어서기'(저항)로 전환됩니다. 이쯤되면 ‘눕기’는 이제 더 이상 패배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전략적 자세로 보입니다.

이는 억압이 강할수록 민중의 대응이 더 빠르게 조직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먼저 일어난다’는 어떤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삶의 경험이 만들어 낸 생활의 반사신경에서 비롯된 저항입니다. 여기서 눕기는 패배가 아니라 힘을 비축하는 전략이고, 일어섬은 주체의 회복이 됩니다.



날이 흐르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3연 - 역전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습니다. 바람으로 인해 눕기의 정도가 심화되어, 풀은 발목까지, 발밑까지, 그리고 뿌리까지 눕습니다.

그러나 대립하는 바람과의 비교에서 점차 풀이 우세를 점하는 모습이 부사를 통해 드러납니다. '늦게' 눕지만 '먼저' 일어나게 되는 모습에서 풀의 의지가 더 강력함을 보여주고, '늦게' 울지만 '먼저' 웃는 모습에서 둘 사이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풀은 패배의 가능성을 견디고 승리의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또 '웃다'는 '울다'와 완벽한 대비를 이루면서, '저항의 승리'를 넘어 '삶에 대한 긍정과 해학'이라는 민중 특유의 정서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순한 승리가 아닌, 모든 시련을 이겨 낸 여유와 해방감도 느끼게 해 줍니다.

여기서 초점이 '풀뿌리'로 향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비유에서 보듯, 자연의 이야기를 집단, 민중으로 그 의미를 확대해 주기 때문입니다.

다른 연과 마찬가지고 접속어를 사용하지 않고 간결한 문장과 절 몇 개로 역전되는 상황을 전개시켜 묵직한 울림과 긴장감을 주고 있고, 동사를 수식하는 부사 '늦게 / 먼저'를 교차, 반복하면서 리듬감을 만들고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풀'은 시대의 폭력을 정면으로 고발하는 대신, 민중이 어떻게 버티고 일어서며 결국 역전하는가를 속도와 리듬으로 보여줍니다. 짧은 문장을 반복하여 민중의 고난이 일상적이고 반복적임을, 동시에 그들의 재기가 지체할 수 없는 본능적 행동임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이 시는 한 장의 일시적 투쟁 포스터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저항의 이론이 됩니다. 바람은 지나가고, '풀(민초)은 먼저 일어나 먼저 웃는다'—이 단순하고 단단한 명제가 불의의 시대를 건너 오늘까지 유효한 희망의 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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