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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나무 Jan 18. 2024

내 마음의 풍경

아주 오래 전 내가 강원도에서 군대 생활을 할 때의 일입니다. 

  휴가를 얻어 서울로 오려고 OO 버스터미날 대합실에 앉아 버스 출발 시각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가족이 흥분에 들떠 대합실을 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넓고도 넓다는 OO군 한 산골짜기에서 농사를 짓다가, 어느 친척의 혼사나 환갑 잔치에 가려고 아주 오랜만에 나들이를 하게 된 사람들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호들갑을 떨며 아침 일찍 서둘러 준비하고, 몇 시간에 한 번 지나는 시골 버스로 터미날에 도착해, 다시 시외버스로 갈아타려고 기다리고 있는 듯했습니다. 

  부부는 험한 일 때문에 한결같이 검고 주름진 얼굴을 하고 있어서 나이를 가늠하기가 힘들었지만, 데리고 있는 아이가 한 6-7세쯤인 것을 보면 30대 초중반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의 차림과 행동이었습니다. 

  아저씨는 흰 와이셔츠를 입었는데,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아 오래 장롱에 넣어 두었다가 꺼내 입은 것 같았습니다. 좁디좁은 칼라는 신파 시대에나 유행했을 것이었는데, 처음 색은 분명 희었겠지만 오래 묵어 누렇게 바래져 있는 데다가, 온통 꼬깃꼬깃 구겨진 채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츄리닝을 입고 있었습니다. 아주 새 츄리닝을 말입니다. 짐작이 가고도 남을 일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먼 나들이를 하면서 새 옷을 입어야 하겠건만, 오래 묵었어도 그래도 정장의 일부인 와이셔츠 하나 말고는 이렇다 할 입성이 없었던 것입니다. 5일장에 갔을 테고 다른 옷은 엄두도 내지 않았을 것이고, 거기서 좌판이나 리어카에 널린 츄리닝 한 벌을 샀을 것이었습니다. 감색이니 양복에 흔한 색인데다가 양복처럼 아래위가 한 세트이니, 집에 있는 와이셔츠까지 합치면 안성맞춤의 정장이라고 기뻐했을 터이고, 이런 식의 양복쟁이 차림새를 하고 동네를 나서는 나를 좀 보라는 듯이 으슥하기도 했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저씨는 한 손에 소주병을 들고 가끔 한 모금씩 마시고 있었습니다. 아침 열 시에 깡소주를 병나발로 불며 서성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서울서는 보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많은 시골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일이 있으면 늘 술이 곁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식장 근처 음식점 주변에는 대낮부터 불콰한 사람들로 가득한 것이 우리 지방의 읍 소재지 주말 풍경입니다. 이 아저씨의 병소주는 말하자면 흥분되고 들뜬 기분의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흐뭇하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아내와 자식을 바라보는 아저씨의 눈길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생전 처음의 별미를 맛본다는 표정과 행동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뜯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건 쥐포였습니다. 그것도 짐작이 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를 삶거나 쪄서 간식으로 주는 것 이외에는 무얼 사 주거나 용돈을 주는 일이 전혀 없는 가난한 시골 어머니들도, 도회지로 외출을 할 때면 이상하게 과자나 사이다를 잘 사 주곤 하는 법입니다. 그런 기미를 알고 아이들이 대합실 같은 데서 어머니를 조르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분명 그렇게 너그러워진 아이의 엄마가, 아이에게는 생전 처음일는지도 모를 간식거리를 사 준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의 호사가 행복한 엄마는, 시집올 때 입었을 빨간 저고리와 초록 치마의 낡은 한복을 입고, 나도 한 번 맛은 보아야 한다는 듯이 아이의 손에서 가끔 쥐포를 뺏어서는 조금씩 뜯어 입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행복하고 즐겁고 들뜬 모습이었습니다. 


  이 가족의 가난한 행복은,  김소운의 수필에서, 쌀이 없어 고구마를 아침으로 내어놓은 어떤 아내가 

  "우리 작은 아버님이 장관이셔요. 어디를 가면 쌀 한 가마가 없겠어요? 하지만, 긴긴 인생에 이런 일도 있어야 얘깃거리가 되잖아요." 

했던, 그런 유의 작위적(作爲的) 행복과는 분명 다릅니다. 안분지족(安分知足). 분수를 편안히 여기고 만족한 줄 안다는 고인의 경지에 가장 가까운 모습입니다. 그런데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정경이 잔잔한 페이소스와 함께 내 가슴속에 남아 있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일반적 삶의 평균으로 보아 영 미치지 못할 수준인 줄도 모른 채, 마냥 행복에 젖어 있던 그들에 대한 동정일까요? 

  그들에 비해 훨씬 많은 것을 누리면서도, 분수와 만족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일까요?

  혹 내가 그들을 바라보던 그 시각으로, 누군가가 또 지금의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그런 소외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오는 비애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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