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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린정 Feb 02. 2024

이유식 만들기 힘들어

나무늘보 엄마 이야기 4


아기를 낳고 한 달 정도 모유 수유를 하고 분유를 먹이게 되었다. 사실 모유를 더 오래 먹이고 싶었지만, 임신 8개월 때 떨어진 면역력으로 무좀이 생겨 고생이 심했다. 무좀이라고는 걸려본 적 없는데, 막상 걸려보니 살이 갈라지고 피가 터지는 고통은 참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이를 낳아도 좋아지지 않았다. 조리원에서도 양말을 벗고 다닐 수 없었다. 이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는 게 싫었으니깐.


하지만 모유를 먹이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아픔을 최대한 참으며 노력했고, 그 한계가 한 달까지였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발가락의 반란에 피부과를 가게 되었고, 독한 약 덕택에 아이에게 먹일 모유는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약이 좋긴 좋더라. 약을 며칠 먹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아주 깨끗하게 좋아졌다. 날아갈 듯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른 아기들보다 조금 작게 태어난 아이는 어쩔 수 없는 결정에 먹이게 된 분유를 참 맛있게도 잘 먹었다. 모유도 잘 먹더니 분유도 역시... 꿀꺽꿀꺽 잘 삼키는 아이는 오동통하게 건강하게 쑥쑥 잘 자라주었다.




이유식은 보통 5개월 전후로 시작한다. 아기가 앉을 수 있을 때쯤 시작하면 좋다고 했다. 나는 6개월 때쯤에 이유식을 시작했다. 조금은 늦게 시작하고 싶었다.

요즘은 인터넷 검색만 하면 뭐든지 다 해결이다. 이유식 책을 구입하는 엄마들도 있던데 나는 책은 구매하지 않고, 열심히 검색하며 이유식을 만들었다. 세상 참 편리하고 좋다.

처음에는 쌀미음부터 시작한다. 쌀을 믹서기에 갈기도 하지만 나는 쌀가루를 사서 만들었다. 쌀가루를 물에 풀어 은근한 불에 오래 저으며 끓인다. 양이 얼마 되지 않아도 꽤나 정성이 들어간다. 쌀미음이나 쌀죽은 아주 땡큐다. 이후에는 단계에 따라 야채, 고기 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 이유식을 만든다.

이유식도 만들어야 하고, 분유도 먹여야 하고, 놀아도 줘야 하고, 기저귀도 갈아줘야 하고, 집 정리도 해야 한다. 돌아서면 아기 먹이는 거 만들고 치우고, 설거지에 바쁘다. 게다가 청소, 빨래에... 젖병 소독까지 ㅎㅎ 멀티에 너무 정신이 없다. 어느 순간 판다가 친구 하자고 할 만큼 다크서클이 내려온다. 그때부터 서서히 정신줄을 놓기도 하는 듯하다.


그래서 이유식을 처음 시작한 초기가 육아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한다. 아기띠를 하고 **마을에 가서 유기농 제품을 구입하여 이유식을 만들고, 고기도 지방이 적은 안심으로 골랐다. 닭고기며 야채며, 과일이며 모두 유기농으로 구입해서 먹였다. 그런데 이유식 기간이 장기간으로 들어가니 몸과 마음이 서서히 지치게 되었다. 이러다가 몸 져 누울 것 같았다. 그래서 시판용 이유식도 사보았다. 생각보다 단가가 비쌌지만 그래도 내가 만든 것보다 더 괜찮겠지? 맛도 있겠지? 이유식 만드는 시간을 아껴 아이에게 더 놀아주고 집중하면 된다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시판용 이유식을 아이가 생각만큼 잘 먹어주지 않았다. 아이 입이 고급인가? 사실은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가 더 크다. 이유식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루나 이틀 치 분량으로만 만들어서 아이에게 먹였다. 시간이 지나니 힘들어도 그게 훨씬 마음이 더 편했다. 왠지 아이도 더 잘 먹는 것 같고 더 건강해진 느낌이랄까... 그렇게 위안받고 싶었던 가 보다.




육아휴직을 내거나, 일하는 엄마 대신 오로지 하루 종일 아이만 돌보는 아빠라면 그 마음을 알까? 아기를 키워주시는 할머니는 그 마음 아시겠지? 어린 아기를 키우는 게 그리 만만치 않다. 나는 아이가 한 명이어서 그나마 낫지, 둘 이상의 아이를 가진 엄마는 정말 매일이 혼쭐나는 일상일 것이다. 쌍둥이 엄마는 정말 전쟁 같은 하루 일 것이다. 하루 종일 아이를 케어하면서 온갖 집안일을 해내는 엄마들은 정말 울트라 슈퍼우먼이다.


혹시 퇴근 후 아내가 예쁜 모습으로 현관에 서서 아기를 앉고 환하게 웃으며 매일매일 맞이해 주는 모습을 기대하는가? 그건 조금은 욕심이 아닐까?

그래도 요즘 아빠들은 센스가 있다. 웬만하면 정시에 퇴근해서 곧장 집으로 달려가 하루 종일 육아에 지친 아내 대신 집안일을 도와주고, 아이도 잘 돌봐 준다.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하루 종일 고생한 아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나 문자를 건넬 줄 안다. 남편도 당시에는그런 성향이었다. 그것만큼 큰 위안이 있을까 싶다.  아내의 입장과 마음을 알아주는 아빠들이 많은 것 같아 참 다행이다.

© kellysikkema, 출처 Unsplash


내가 조금은 별나다고도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개인의 성향, 그것 또한 나의 모성일 뿐이다.


오래전 기억을 더듬으며 이유식 만들던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지나고 보니 아주 잠깐 스쳐가는 시간들 같은데, 그땐 그게 왜 그리 어렵고 힘들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 시절이 있었기에 이렇게 웃으며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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