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조기유학의 결심 : 프롤로그
"런던으로 가겠다구?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서?"
처음부터 남편이 단번에 찬성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나의 의견을 듣고 난 남편의 반응은 '반대'라기보다는 '놀라움(이라고 쓰고 당황스러움이라고 읽겠다)'에 가까웠다. 일단, 엄마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나라의 도시로 가겠다는 나의 선언이, 마치 세상 물정 모르는 사춘기 아이의 치기 어린 선언처럼 당혹스러웠던 걸까. 게다가, 우리가 런던으로 가겠다고 결정한 작년 3월은, 영국의 입학 시즌이 9월임을 생각해 보면 남은 기간이 다소 촉박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 보라며 대화를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남편의 뒤에서 대화의 꼬리를 물고 버티긴 싫었다. 언쟁(?)의 새싹이 보일 것 같으면, 잠시 침묵할 것, 그리고 그 순간을 다독여줘야 한다.
며칠 뒤, 남편과 다시 대화 테이블(사실은 저녁 밥상 ^^)에서 마주한 대화의 결론 역시 아이들을 데리고 런던으로 가는 방향으로 모아졌다. 남편은 적극적이진 않아도, 그렇게 하자며 동의해 주었다. 남편이 두 팔 걷어붙이고 마냥 적극적일 수 없었던 이유는, 이 시기에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나와 아이들이 생활할 다른 나라에서의 생활 기반을 함께 준비해 줄 여유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즉, 모든 것은 내가(엄마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것.
이제 남은 것은, 내가 과연 9월 입학 시즌까지 약 5개월 동안, 학교 등록 + 영국 비자 발급 + 런던 집 구하기, 이 3단 콤보를 잘 진행하여 9월이 되면 런던으로 무사 입성할 수 있도록 할 수 있겠는지,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것만 남았다... 생각이 많아지면, 생각 가지가 많이 뻗어 나오고, 수많은 가지 끝에 가려져 원래 나의 플랜이 뭐였는지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늘 그렇듯이, 고민은 많이 하지 말자. 일단 해보자, 진심이 닿으면 일은 이뤄지게 되어 있어. 단,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해 보는 것!
영국행을 결정하게 된 건 그리 갑작스러운 건 아니었다. 이미 외국 생활 중이었던 아이들은 영국계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식 커리큘럼에도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큰 아이의 경우는 초등 저학년 연령 때도 다른 나라의 국제학교(미국식 커리큘럼)에 다닌 경험이 있는데, 그래서 두 나라의 커리큘럼(최소한 해당 국제학교에서 진행하던)을 모두 경험해 본 나와 아이들은 모두 우리에겐 영국식 교육 환경이 더 잘 맞는다는 의견이었다.
작년 초, 남편의 회사 발령으로 우리는 한국으로 복귀해야 할지, 아니면 외국에 더 머물러야 할지 정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때부터 고민은 시작되었다. 아이들 둘 다 아주 어린 연령이라면 한국으로 돌아오는 건 전혀 고민할 문제도 아니지만, 큰 아이는 이제 중학생, 작은 아이는 초저였으니 한국으로 돌아가면 하나 분명한 것은 학교와 학원 수업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 생활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대치동 라이드는 플러스. 한국에 비하면 표면상으로는 좁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깊이는 더 깊은 외국식 수업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한국의 무시무시한 선행 진도에 따라가게 하기 위해서, 나 역시 벌써부터 집에서든 어디서든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한국 문제집들을 쥐어주며 풀게 해야 할지 난감해질 뿐이었다.
재작년까지 한국에서 아이들을 대치동 학원으로 라이딩해보니, 그 비용과 시간도 만만치 않았던 터 ㅜㅠ 아이들도 가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외국에서 학교 생활을 조금 더 이어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조금 무리가 될 순 있겠지만(하지만, 이것이 막상 영국에 와보니 훨씬 더 많은 절약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 때는 몰랐었음...ㅜㅠ), 대학 입학을 위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해도, 여러 조건들이 가능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을 때, 대치동이 아닌 외국에서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좀 더 도와주고 싶었다.
학원으로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도 숙제를 하고 있어야 할 만큼 버거운 과제를 이고 지고 사는 아이들이 아닌, 크고 작은 뮤지엄과 동네 어딜 가나 있는 정원들의 공기를 느끼며 지내게 해주고 싶었다. 아직 그릇이 다 커지지도, 완성되지도 않은 아이들이 이미 정해진 정답과 싸우느라 예민해지는 걸 지켜보는 건, 몇 년을 한다 해도 아직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그 나이대에 느낄 수 있는 감성과 감정들을 오롯이 품어낼 수 있는 풍경들을 더 많이 접하게 해주고 싶기도 했다. 설령, 몇 년 더 오래 유학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외국에서 공부했던 유년기의 기억과 경험들이 훗날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더 단단해지도록 도와주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면 나의 고생은 그걸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쯤되면 대부분은 아이들만 유학 보내는 조기 유학을 떠올리기 쉽겠지만, 최소한 나와 남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생각이 평소에도 늘 있었으므로, 아이들만 따로 유학을 보내는 것은 나도 남편도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갑자기 보딩스쿨에 넣어놓고 혼자 덩그러니 지낸다는 건 나조차 마음의 준비도 안 되었을뿐더러, 평소에도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아이들과 엄마가 함께 영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 단순한 나는(사실 나는 꽤 많이 단순한 사람이다 ㅎㅎ), 엄마인 내가 학위 과정을 공부하고 아이들을 동반비자로 데려가는 모양새만 처음엔 계획했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을 현실화하면서 만난 그림은, 과연 남편도 없이 엄마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연고도 지인도 없는 남의 나라 도시로 가면서 논문과 육아+아이들 학업까지 잘 해낼 수 있겠냐는 물음표로 돌아왔다. 또다시 고민에 빠져 있을 즈음, 아이들이 사립학교에 입학하면 부모에게 보호자 비자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또한, 아이들이 학생이면 무한정 발급해 주는 것은 아니고, 아이의 나이가 보호자가 필요한 만큼 어린 나이여야 하는데, 둘째 아이의 나이가 여기에 해당되는 것!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입학가능한 사립학교들을 먼저 알아보는 일이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영국은 새 학년이 9월에 시작하는데, 입학과 관련해서 필요한 여러 행정업무들과 그에 소요되는 시간들을 고려해 보면, 가능한 한 빨리 학교를 알아봐야 했다.
이렇게 '엄마 혼자 아이들 데리고 영국에서 살아보기'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