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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Jun 08. 2024

불안과 이야기

기초로 작용하는 불안들


 불안은 대부분 창작의 원초. 처음 수업을 들으면 말하지. 갈등에 대해 생각해보라. 그러면 기초가 생길 것이다. 그럼 갈등은 왜 생길까? 당연하게 불안 때문에 생긴다. 닥쳐올 고통과 부조리가 견딜 수가 없어서 맞닥뜨린다.


 불안은 개인적이기도 하고 단체적이기도 하고 둘 다이기도 하다. 그만큼 층위는 복잡하고 다양하다. 그래서 해결이 어렵고 우리에게 언제나 난제로 나타난다. 그런 난제를 해결하려 노력 것들이 대부분의 이야기가 있는 창작물. 그 끝엔 해결이 되었을 수도 아닐 수도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언제나 시도가 있을 수밖에. 불안을 해소하려 시도하는 것 그게 이야기.    

 

 <인간 실격>

 요조는 상당히 괴물 같은 인물. 폭력적이거나 사회부적응 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보통의 인간과 너무 많이 다른 관념을 가지고 있을 뿐. 과히 양심적이면서 과히 피폐한 인물. 그 다름에서 오는 죄책감을 떠안고 항상 불안에 찌들어 산다. 세계에서 오는 불안이지만 요조는 자신을 괴물로 인식하고 있기에 상당히 개인적인 불안으로 묘사된다. 본인조차 바꿀 수 없는 그는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우습다.     


 요조는 엄습해오는 대부분 불안을 모른 척 미뤄두거나 회피하는 거로 일관한다. 미뤄둔 불안은 눈덩이처럼 커져서 요조를 덮치고 요조는 그럴 때마다 사는 곳을 옮긴다. 사는 곳은 점점 허름해지고 아는 사람들은 점점 줄며 사람들의 질은 점점 나빠진다.

      

 결국, 요조는 이리저리 떠돌다. 어느 시골 마을의 노파의 기둥서방으로 살게 된다. 요조의 회피성향은 요조의 모든 걸 잃게 했다. 물론 그게 당위성이 없는 건 아니란 건 알지만…. 도식화는 언제나 확정적이니까. 요조는 개인적 불안으로 인해 조용하게 개인적 파멸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의 수기를 읽는 화자라는 존재가 있으므로... 그건 일면 요조만이 가지고 있던 개인성을 세계로 퍼트리는 기능을 한다. 불안, 불안을 다루는 방식과 갈등, 불안의 결과 모두 개인적이지만 오히려 세계적인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 이번 민음사의 고전 명작 판매량 실적을 봤을 때 인간 실격이 1등을 찍은 걸 보면…. 상당히 유의미할지도.     

개인 - 돌연변이라는 불안

개인 – 회피

개인 – 나를 잃어버림

(액자식 구성 – 좁아지기만 한 걸 막음. 단순 비극이 아니야)     


<에반게리온> <진격의 거인> (세카이계)

 둘 다 수십 권이 넘는 초장수 만화라... 내용 요약은 좀 어려움. 그리고 둘의 내용도 아주 다르고. 하지만 부당한 세계와 그것에 저항하는 소년 소녀들이 등장하는 공통점이 있음. 주인공 내면의 성장과 변화가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여 세카이계.


 일단 말도 안 되게 부조리한 세계가 등장한다. 어린아이들이 괴물들을 죽이는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든지(후반 가면 더 부조리해짐;;) 외계인의 침공을 어린아이들이 막아내야 한다. 사실 없는 세계는 아니겠지만 일단 소년·소녀가 겪기에 합당한 세계는 아니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갈등을 겪는다. 자신의 부족함과 자신의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세계가 원망스럽다.     

 그곳에서 소년은 꾸역꾸역 죽을 것 같은 신체적 위기와 점점 이상한 사람이 되어 외톨이가 될 것 만 같은 극한의 정신 상태에 몰리지만. 결국, 세계를 바꾸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 바뀐 세계는 그전의 세계는 아니다. 소년들은 혁명에 가까운 일을 저질렀고 그전의 세계로는 전혀 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그 세게는…. 일면 아포칼립스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지막은 대부분 어찌어찌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결말이 난다. 마치 파멸이 언제나 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구원을 뜻하기도 하는 것처럼. 전혀 다른 세계에서 소년 혹은 소년이 없는 세계의 친구들이 어찌어찌 살아가게 된다. 세상은 오히려 제 모습을 찾은 듯하다. 최소한 부조리는 다 부서졌으니까,

 아담과 이브처럼 둘만 남더라도

 결국, 세상을 바꾼 소년이 죽고 세계가 다 부서졌더라도

 다시 살아가게 된다. 다른 인간들이.

 개인의 강한 불안이 원동력이지만 부조리한 세상 인식과 함께 세계적인 불안에 가깝다. 그들의 개인적 불안은 세계를 바꾸었고. 그 속의 사람들도 모두 바꾸어 놓았다.

세계 –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불안

개인 – 나를 바꾸어 세계와 대적 

세계 – 파멸 (세계를 변화 시킴)                    


<파이트 클럽>

  시대는 1990년대 미국. 빈부 격차와 세대 갈등이 심해지던 때. 나레이터(이렇게밖에 불리지 않는다)는 보험 회사에서 보험 처리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심각한 불면증을 앓으며 삶의 신물을 느끼는데 그때 타일러 더든이라는 파괴적인 혁명가를 만난다.      

 

  둘은 ‘파이트 클럽’이라는 발리투도를 크루를 만들어 세력을 넓힌다. 남성성이 거세되어가는 그 시대의 젊은이들을 불러 모아 테러 조직을 만든다. 완벽한 위계질서와 파괴적인 발리투도 의식을 토대로 파이트 클럽은 전 세계에 진출하고. 거물을 납치하고 건물을 무너뜨리고 상당히 아나키적인 폭동을 일으킨다.

 그러던 어느 날 더든과 나레이터는 조직 방향성으로 인해 갈등하다 크게 다치고. 더든은 떠나간다.     


 하지만 나중에 더든은 불면증을 겪던 나레이터의 다른 인격임이 드러나고. 이미 자신이 통제할 수 없게 되어버린 파이트 클럽은 도심 한가운데서 수많은 건물에 폭탄을 설치했다. 거기서 이중인격의 지시에 따르는 클럽원들에게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마녀의 도움을 받아(나레이터에게 수많은 상처를 입은….) 문제를 해결한다. 결국, 이중인격과 마지막 혈투를 버리지만. 결국, 자기 자신임을 인정하고 자신의 볼에 총을 쏴 그를 죽인다. 그리고는 마녀의 손을 잡고 무너지는 빌딩들을 보며 팬티만 입었지만 나름의 로맨틱한 결말을 맞이한다.

 그는 부조리한 세계를 바꾸기 위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였으나 그건 자신을 속이는 일이었고 결국 모든 걸 다 무너뜨리면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세계 – 부조리한 시대 세계

세계 – 사람들을 조직해서 테러를 저지름

개인 – 결국 자신을 인정하게 됨.     


쏜애플 <이상기후> <계몽> <동물>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노래도 가사가 있으면 (사실은 없더라도) 나름의 이야기 중 하나라고 생각. 분명 내러티브가 있으니까.

 그리고 이건 하나의 곡으로 나타난다기보단…. 앨범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음. 물론 다 하나를 관통하진 않지만. 그 큰 흐름은 분명 있지.

쏜애플은 대체로 외로움을 이야기함. 정확히는 외톨이가 되어버릴 것만 같은 불안이 노래의 주요 원동력. 

근데 신기하게도 불안의 기저는 같은데 앨범마다 다루는 방식과 결과가 달라지는 느낌이 있음.

특히 <이상기후>에서 <계몽>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도드라지는데. 아마도 창작자 개인 나름의 성장이 있었을 거라 생각. 더 나아졌다는 것이 아니라…. 더 성숙해 졌다는 개념으로.     

노래를 다 듣기는 어려우니…. 앨범당 대표 적인 거 하나를 뽑자면.     

<아지랑이> -이상기후

‘오늘도 지구는 나를 제쳐 두고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

‘나는 얼마나 더 달아날 수 있을까? 너덜너덜 해진 몸뚱일 가누네’

‘나는 지금 여기에 살아있어. 차는 숨을 내쉬며 살아있어 어지러워요, 날 찾아내 줘요.꺼지지 않는 나의 두려움’     

<은하> -계몽

‘아무리 걸어도 밤은 끝이 안 보이고 여전히 사람들은 달이 어렵기만 해’

‘바라지 않으면 아무것도 잃지 않아. 믿지 않으면 미움은 싹이 트지 않아’

‘누군가 울음을 참는 소릴 들을 때. 잠시나마 혼자가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멸종>

‘우리 머리 위로 운석이 떨어져 세상은 이미 불타버리고 있는데도’

‘만약 우리 마지막으로 할 일이 없다면 그땐 둘이서 춤을 출 거야’

‘아, 우리들은 어딘가의 별들이 되어 원히 외롭지 않을 것을 다짐했었지. 우린 아무것도 될 수 없었네’     


나름의 이야기적 구조가 있다고 생각함.          




 불안과 이야기는 떼어놓을 수 없음. 단지 불안이 중요 소재가 아닐 때가 가끔 있을 뿐. 모두 기저에서 시작된다. 모두 내 취향의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지만. 불안도 그걸 대하는 방식도 결론도 모두 다름. 그만큼 다양하고 다층적이며 개인적이며 세계적일 수 있음. 사랑 용기 우정과 같은 어려운 말. 그렇기에 더 재밌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네. 남의 불안을 알면 사람이 보인다. 그 사람을 알면 불안도 보이는 것처럼.      

 우리는 말을 하며 이야기를 만든다. 그건 짧든 길든 완결성이 있든 말든 항상 성립하는 법칙. 그렇기에 불안을 알아보는 건 이야기를 알게 되는 거고…. 그것에 대한 깊은 곳까지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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