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순간'이라고 박제된 장면
언제가 행복한가?
'행복한 순간'이라고 박제된 글자에 떠오르는 장면은 분명하게 있다.
1.
밥을 다 먹은 주말 저녁에.
엄마 옆에 앉아서.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러나 엄마는 종종 보던 주말 연속극을 틀어놓고.
이건 무슨 장면이야, 저 사람은 누구야? 왜 저런 말을 해?
뭐 이런 시시콜콜한, 미주알고주알 질문, 대답들을 주고받으면서.
티비를 보던 엄마를 슬쩍 보던 장면.
2.
일주일 동안 밀린 잠을 자듯 낮잠도 한숨 잔 어느 토요일 밤에
대략 하루를 다 보내고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서
하나의 모니터는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주고 있고,
하나의 모니터는 일기를 쓰자고 보채고 있고,
또 손에 든 하나의 모니터로는 소소한 글을 읽고 있는 장면.
그런데 이런 사소한 행복한 순간의 특징은.
비상상황이 생기면 제일 먼저 걷어차여질 순간들이고,
(연속극 / 잠 이런 것들은 중요도에서 가장 최하위에 있는 일상의 사소한 일이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사소한, 저 평온한 상황은.
모든 것이 거의 완벽히 갖춰져야만 가질 수가 있는 장면이다.
우선 가족들이 아프지 않은 건강한 상태여야 하며.
주변에 매우 큰 걱정거리가 없어서 마음이 시끄럽지 않은 상태여야 한다.
회사에 불려 나가지 않아서 가족들과 혹은 홀로 온전히 보낼 수 있는 주말이었어야 하고.
한주를 살고도 다른 것에 눈을 돌릴 만큼의 여유분의 체력도 남아있어야 한다.
결국.
남는 자본이 문화를 만들어내듯이.
남는 여유가 행복한 장면을 찍어낸다.
그럼 과연 그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