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지구 반대편에 도착하다
집에서 공항 가는 길
제대로 챙겼는지 빠진 것은 없는지.. 이제 막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기 때문에 겨울용 스웨터를 입고 10킬로가 넘는 배낭을 메고, 집 앞 여행사에 가서 들까 말까 했던 여행자 보험을 들기로 했다. 3개월이 넘는 여행이라 보험료가 6만 원 가까이 나왔다. --; 사실 여행 중에 심하게 다치거나 아프면 귀국이고, 죽더라도 오천만 원이 나오는 보험인데 나는 나를 너무 믿은 걸까. 그냥 나왔다. 그리고는 달러를 환전하러 은행에 갔다.
은행 직원은 나의 큰 배낭에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여행 가시는 거예요? 와 너무 부러워요!"
백만 원을 환전하고 여행자보험을 물어보니 6천 몇 백 원... 3개월까지만 적용이 된다고 하니 그냥 나머지 10일 정도는 무사하기를 바라며 들었다. 값이 싸다고 조건이 너무 나쁘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공항에서 공황상태
공항은 늘 다양한 인종과 크고 작은 가방을 든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어서인지 설레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런 설렘은 곧 걱정으로 변해갔다. 이렇게 긴 여행은 처음이라 고추장을 살까 말까를 고민하며 공항에 도착해 면세점에서 튜브 2개를 샀다. 그게 그렇게 모자를 줄이야.. 내가 한식 파였다는 것도 여행을 하며 알게 되었다. 나중에 생각난 것이지만 다음 여행엔 고추장을 페트병에 담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면세점에서 이것저것 주문했던 것을 찾고, 시티카드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서 부랴부랴 들어간 대한항공 라운지에서는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을 프린트만 하고 나온 것이 못내 아쉬웠다. 조금 더 여유롭게 라운지 음식도 먹고 휴식도 하다가 비행기를 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조급함과 다급함이 생기면서 이 여행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상파울루의 민박집을 예약해 두었는데 확답이 없는 상태였으므로 무작정 찾아가야만 했다. 마일리지로 이용하는 항공권이고 상파울루까지 가는 여정이라 출발하는 날짜는 얼마든지 미룰 수가 있었다. 차라리 일주일만 더 있다가 여행을 시작할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겨우 1월, 2월 두 달 스페인어 공부에 회사 야근에 여행 준비를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고 남미를 혼자 가겠다던 나름 용감했던 마음이 갑자기 큰 불안함으로 변했다.
그렇지만 벌써 자리에 앉아 저녁으로 나온 기내식으로 비빔밥을 먹고, 유일하게 챙긴 에세이 "보통의 존재"를 읽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면서 LA공항에 도착했다.
기내 노숙자
비행기를 24시간 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12시간을 타고 LA에 도착해서 간단한 입국심사 같은 것을 한다. 다양한 인종이 엄청나게 긴 줄을 서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여기서 상파울루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하는데 2시간 정도 대기 시간이 있었다. 생각보다 허름한 2층 대기실로 올라가니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만 몇 명 있었다. 낮에 흘렸던 땀과 12시간 기내에서 썩은 내 몸은 점점 노숙자가 되어갔고, 드디어 기내로 들어가 또다시 비빔밥을 먹으며 이번엔 브라질 여행 책자를 들었다. 또 가야 한다. 12시간... 다리가 마비되는 것 같다. 이번엔 다행히 옆 자리가 비어서 누웠다가 앉았다가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다.
짐을 정리하려고 잠시 일어났는데 승무원이 다가와 여행 가는 거냐고 물었다. 혼자 다니는 게 용기도 대단하고 부럽다고 말해 주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도 나에게 부러움과 응원의 메시지를 많이 보내줬다. 덕분에 힘들기도 했던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었다. 여행보다 출장이 많은 상파울루는 국적기라서 한국인이 꽤 있었지만 대부분은 성인 남자에 검은색 캐리어를 든 30~40대로 대부분 출장을 온 것처럼 보였다.
기내 방송이 나온다.
이틀이 넘게 걸려 브라질 상파울루 과룰료스 국제공항 Aeroporto Internacional de Guarulhos에 도착했다. 결국 도착했구나. 지구 반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