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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지도를 건너다

2장- 도쿄, 빛과 그림자

by 서 온 결

하네다 공항 문이 열리자 바다 냄새가 잔잔히 밀려왔다.

일본은 배를 타고 갔을때, 비행기를 타고 갔을때 그 모습이 참으로 다르다.

몸이 지치고 여유가 없을 때 나는 배에 몸을 싣고 파도의 움직임이 마사지 기계라도 되는듯 몸을 맡긴다

그러나 이렇게 정신이 말짱할 땐 비행기를 타고 모든것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마치 신이라도 되는듯이 말이다.

공항 바닥엔 빛이 얇게 한 겹, 다시 한 겹 겹쳐지고 있었다. 오후 비행기를 탄 덕분에 이런 눈호강도 하는구나 생각했다.


일본에서 프랑스 친구를 사귀었다.

이곳에서는 그도 나도 이방인이었다.

일본어 학원 긴 복도에서 그는 불쑥 말을 걸었다.

"bonjour."

낯선 인사가 닟익게 울렸다.

"프랑스...에서요?"

"네. 음악 프로듀서예요. 케이팝 곡도 만듭니다."

"정말요? 전... 광고 카피라이터였어요. 말의 살갗을 다듬는 일을 했죠."

그가 웃었다.

"그럼 우리는 둘 다 리듬을 만지는 사람이네요. 단어의 박자, 소리의 박자."


우리는 골목 어귀의 라멘집에 마주 앉았다.

국물 위에 기름방울이 금가루처럼 반짝였다.

"참... 가을 저녁 같네요."

내가 말하자, 줄리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맛은 겨울 같아요. 깊고 뜨겁고, 오래남죠."

면발이 그릇에서 사뿐이 들렸다가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후후룩 소리를 냈다. 라멘집 문이 열릴 따마다 바깥 네온이 국물 위로 번졌다.

붉은 글자, 푸른 선, 흰 눈발 같은 점들.

도쿄의 밤은 빛으로 말을 걸었다.


거리로 나오자, 전광판이 골목을 낯처럼 밝히고 바람이 머리칼을 쓸듯 지나갔다.

"민서, 네 눈빛에 두 색이 보여요."

"두 색?"

"하나는 따뜻한 호박빛, 하나는 차가운 강물빛. 둘이 비딪히지 않고 나란히 흐르네요."

"그게... 나인 것 같아요."

우리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말의 끝에 침묵을 달아 여운을 만들고, 그 여운이 다시 말을 낳았다.


며칠 뒤, 우리는 신주쿠의 작은 라이브하우스에 갔다.

케이팝 커버 무대가 끝나고 줄리앙의 노트북에서 비트가 흘렀다.

"이건 한국에서 느낀 색이에요. 이명. 낯과 밤이 붙어 있는 색."

나는 무대 아래, 관객의 숨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금성라인이란 , 사람과 사람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인지도 몰라.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었다.

우리의 말은 때때로 어긋났다.

그가 "괜찮다"고말할 때, 나는 "그만하자"로 들었고,

내가 "조금만"이라고 말할 때, 그는 "곧 끝"으로 이해했다.

언어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의 사이는 도리어 멀어졌다.


"민서, 난 네 이야기의 원문을 알고 싶어."

"원문은 한국어야."

"그럼 한국어로 들려줘."

나는 잠시 입술을 깨물다, 결국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내 안에서 번역 중이야."

그날 밤, 네온이 유난히 차게 번졌다.

붉은색은 나를 유혹했고, 푸른색은 나를 붙잡았다.

나는 사이에 서서, 방황하는 손을 어디에 얹어야 할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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