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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dos Paul Jan 20. 2024

「서평 쓰는 법」을 읽고 쓰는 서평

이원석

제목을 보고 정말 순수하게 서평을 '쓰는' 법 그 자체만을 기대하고 온 독자라면 적잖이 실망하리라. 이 책의 본문 내용 페이지 수는 128페이지인데(머리말, 에필로그와 여백 페이지를 제외한 숫자), 그중 정말로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하는 부분의 양은 17페이지에 불과하다. 비율로 따지면 약 13.28%이다. 그것도 책의 가장 마지막 장에 등장한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비율인 약 86.72%을 차지하는 부분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가?


    <서평 쓰는 법>은 책에 대한 책이다. 목차를 보면 '서평의 본질'과 '서평의 목적'이라는 챕터를 통해 서평이 무엇이고 왜 쓰는지에 대해 말한 뒤, '서평의 전제'와 '서평의 요소'를 통해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서평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서술한다. 그리고 그제야 '서평의 방법'을 통해 서평을 쓸 때 생각해야 할 것들을 언급한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서평을 어떻게 쓰는 것인지에 대해 무미건조하게 나열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독서라는 행위를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넘어, 안에 담긴 내용을 온전히 소화하고 거기서 얻은 사유와 영감들을 맥락화하여 말과 글로 언어화하는 데까지 확장시킨다. 거기까지가 독서라는 것이고 이는 책의 부제인 '독서의 완성'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책의 통시적, 공시적 맥락을 알고 읽을 때, 즉 책에 대한 전제 혹은 선이해가 있을 때 필히 더 폭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에 꾸준하고 많은 공부를 요구한다. 따라서 이 책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책을 읽을 때 어떤 자세와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다. 따라서 제목 <서평 쓰는 법>은 처음 보는 이들로 하여금 조금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제목이지 않을까. 물론 그것이 저자의 의도일 수도 있겠다.


    <서평 쓰는 법>은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서 무의식 중에 당연하다고 여겼던 내용들을 가시화해서 제시한다. 예를 들어 '온전히 매료되어야 제대로 비판할 수 있'다는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책에 매료되어 그 안에 흠뻑 빠지되, 냉철하게 거리를 두며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있다. 또한 '먼저 책 자체에 대한 기본 입장을 결정해야' 한다고 하며, 이는 찬성 혹은 반대의 입장을 책을 읽고 그 안의 내용과 대화하면서 토론의 결과로 자연스레 형성된다고 말한다. 그 외에도 요약하며 읽어야 한다거나, 적절한 질문과 문제제기를 하면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런 내용들을 한 번 더 저자의 수려한 문장으로 읽고 나니 책을 읽고 글을 쓸 때의 방향이 분명해지고 행위 하나하나에 당위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무작정 생각의 재료들을 투박하게 쏟아내기만 하였던 필자의 서평들을 복기하며, 좀 더 구조적으로 완결성 있고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떤 요소와 장치들이 첨가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들을 얻을 수 있었다.


    필자는 서평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목적에서 작성된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과 영감의 파편들을 정리해 맥락화하고 언어화하여 하나의 통찰과 주장을 얻게 하는, 일종의 자기만족과 지적성장의 도구로 서평을 여긴다. 물론 작성한 서평을 누군가가 읽어주고 함께 생각을 공유하길 바라는 마음 또한 있는 것은 사실이기에, 서평을 읽는 잠재적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문장을 다듬고 논리를 수정하는 작업 또한 수행한다. 그러나 근본적이고 일차적인 목표는 나 자신의 지적 성장에 있다. 정말로 순수하게 타인에 대한 지적 봉사로 서평을 작성할 수도 있겠으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평을 쓰는 목적은 글을 쓰고 소박하지만 자신만의 작품을 써 내려간다는 만족감과 책을 읽은 후 그 책을 더 깊이 이해하고 온전히 기억하려 하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책을 하나의 생명체로 여김으로써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책과 씨름하고 대화하며 토론할 것을 강조한다. 이는 각 개인은 결정을 내리는 주체라는 면에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 단위로, 각자의 해석과 통찰이 담긴 서평이 하나의 책과 읽는 독자 그 자신을 더욱 풍성하고 깊게 만들기 때문이다. 현재 고전으로서 인정받는 모든 글들도 이러한 과정을 반드시 거쳤으리라. 책은 하나의 육중한 종이 덩어리로써 결코 정체되어 있지 않는다. 그것을 집어 들어 읽고 나름의 해석과 가치, 의미 등을 부여하는 각 개인들의 참여로써 더욱 깊어져가고 끝없이 완성되어 간다. 따라서 저자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치열한 해석의 현장에 직접 참여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해석을 내놓을 것을 계속해서 주문한다. 그랬을 때, 그리고 오직 그러할 때만이 책은 하나의 생명체로써 진화해 간다.


    이러한 점에서 서평은 이타적이고 사회적 서비스로도 작용할 수 있다. 하나의 책을 읽고 이해할 때 다른 이들이 작성한 서평들로 인해서 그 책을 바라보는 시야와 관점이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서평 자체를 작성할 때에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목적만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일단 작성되고 다른 이들에게 읽힐 수 있게 되면 분명히 책 자체와 다른 이들을 더욱 깊어지게 만든다.


    저자 또한 이러한 사회적 봉사, 혹은 서비스로서의 서평을 작중 계속해서 강조한다. 또한 아예 처음부터 독자를 상정해 염두에 두고 쓰라고 하고, 서평의 목적상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책을 읽은 후 서평을 작성하는 행위를 '독자의 작가화 현상'이라고 부르고, 이것이 '독자와 저자 사이의 위계를 무너뜨리고 대등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것'을 실현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좀 더 건강한 방향으로 견인해갈 것이라고 말한다. 머리말의 제목이 ''헬조선'의 중심에서 서평을 쓰다'라는 것에서부터 이러한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서평을 작성함으로 인해 궁극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건강한 의견교환이 이루어질 것으로 염원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도는 좋으나, 필자는 이를 전달하려는 책의 방식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저자의 의도는 책의 머리말에서 아주 잠깐 등장하고, 내용이 전개되면서 중간중간 한 번씩 튀어나온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또다시 이를 언급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차라리 이러한 사회적 서비스로서의 서평의 목적을 강조하는 이유, 즉 저자의 의도를 초반에 먼저 밝힌 다음 내용을 전개했으면 좀 더 파악이 쉬웠으리라 생각한다. '서평에 관한 법'이라는 큰 주제에 이러한 인문학적 가치를 담은 내용이 조금씩 튀어나오는 것은 좋은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서평의 이러한 목적과 역할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나, 앞서 설명했듯 필자는 서평을 어디까지나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도구로 바라본다. 그렇게 작성된 서평을 가지고 자신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서평을 읽는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책과 '나'의 대화가 우선이고, '나'와 '너'의 대화는 그 이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저자는 '나'와 '너'와의 대화를 더 중시함으로써 저자와 독자라는, 어찌 보면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관계를 넘어서 평등한 관계로 대화하고 소통하여 부드럽게 의견을 교환함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한국 공동체를 염원한 것이다.


    저자는 서로 다른 이 두 가지 포인트-책과 '나', 그리고 '나'와 '너'-를 번갈아가면서 강조하고 사용한다.


서평 쓰기의 일차 가치는 독자 자신의 내면 성찰에 있습니다.
(44p.)


자아 성찰이 서평 쓰기의 결론은 아닙니다. 진정한 종결은 어디까지나 삶을 통한 해석이고 실천입니다.
(47p.)


서평 쓰기의 귀결은 독서를 통해 획득한 자아와 타자에 대한 깨달음을 더 넓은 지평으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앎과 삶의 일치, 즉 인격의 통합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49p.)


이처럼 저자 또한 어찌 됐든 책에서 자기중심적인 서평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서부터 타자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차근차근 흘러갔어야 자연스러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고, 순서를 구분하지 않은 채 조금은 번잡하다고 느끼게 내용을 구성한다. 인용한 위 내용들이 40페이지 부근에서 등장하는 반면, 아래 인용된 문장은 이보다 앞선 24페이지에 등장한다.


서평의 일차 목적은 서평을 읽는 독자를 자기의 주장으로 끌어들이고, 독자에게 서평자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습니다.
(24p.)


    따라서 사회적 서비스로서의 서평을 강조하는 내용을 아예 덜어내던지, 아니면 초장부터 그러한 의도를 여실히 드러내고 서평에 관련된 내용과 충실히 혼합하였으면 더 깔끔하게 읽히지 않았을까 싶다. 저자는 충분한 설명이 없이 처음부터 서평은 '독자를 자기의 주장으로 끌어들이고, 독자에게 서평자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며, 또한 독자가 '그 책을 집어 들거나 그와 반대로 그 책을 멀리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누군가가 서평을 읽고 난 전후의 감정의 변화로 서평의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책에 있는 대부분의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을 때 많은 이들이 주로 수동적인 태도를 취할 때가 많은데, <서평 읽는 법>은 책을 읽는 행위 자체를 메타적으로 바라보게 만듦으로써 책과 나 자신을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만든다. 단순히 글자를 읽는 일차원적인 수준을 뛰어넘어서 책의 내용을 스스로 재구성해보고, 능동적이고 비판적으로 책을 읽는 태도를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맥락화해서 언어로 엮어내는 일련의 행위를 여러 장에 걸쳐서 잘 설명한다. 그러한 점에서 얻어갈 게 정말 많은 책이다. 또한 문장 자체가 수려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릴스, 쇼츠 같은 가볍고 짧은 시간 내에 내용을 전달하고 자극을 주는 숏폼의 미디어가 만연한 현 디지털 세대에서 독서라는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이 무거운 행위는 점점 외면받고 있다. 이러한 세태에서 어떻게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서평 쓰는 법>과 같은 책이야말로 시류를 거스르는 (좋은 의미에서의) 문제작이 아닐까. 책의 내용을 온전히 기억하고 싶으신 분들, 책을 읽고 글을 써보고 싶으신 분들, 책을 더 깊게 이해하고 싶으신 분들, 나아가 독서 자체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신 분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여담으로, 이 책에서는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고 인용하는데 개인적으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책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서평으로서는 성공한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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