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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산실 금속공예가 Apr 06. 2024

5. 불행한 별일 있던 시절 2 (20대)

취업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감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편입, 재수… 모두 생각해 봤지만, 시간과 돈이라는 현실적인 벽이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목표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과로 가야 할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바로 졸업이었다.


고민 속에 수강 신청을 했고, 여러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중 한 과목은 실패한 이야기만 나오는 수업이었다. 실패 사례를 보여주면서 "너희는 이렇게 하지 마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학비를 내면서 이런 내용을 들어야 하는가, 난 여기서 뭘 하는 거지라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수업 커리큘럼에 장사나 마케팅 교과목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를 짜서 온라인 샵에서 물건을 파는 수업이 있었다면 재미있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손쉽게 온라인 샵을 만드는 플랫폼이 없는 시절이었다.


어떤 수업은 유학파 교수님의 금속공예 수업인 줄 알고 수강했는데, 갑자기 목공을 알려주겠다는 말에 당황했다. 재료비를 어디서 마련해야 할지 걱정이 컸다. 결국 학생들끼리 단체로 나무를 구매했고, 어쩔 수 없이 비싼 체리목을 선택하게 되었다. 의자 만드는 수업이었는데, 가장 단순하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디자인으로 설계해서 빨리 끝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비싼 체리목을 사는 대신 공사장 각목을 주워다가 만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톱으로 체리목을 작업하면서 계속 비용을 생각하니 작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나의 과제는 퀄리티가 떨어졌고,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학기 중간쯤 각목을 들고 수업에 들어가서 시위라도 했었어야 했는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3학년 1학기를 마치며 깊이 생각해 보았다. 우선 나는 디자인 분야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뛰어난 사람들이 하는 분야임을 인정하고, 빠르게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빠르게 포기하고 계획을 변경하는 능력은 뛰어나 주식에서도 손절을 잘하게 되었다.)


나는 전공 수업 대신 취업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과 시각디자인 관련 수업을 듣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잠깐 온라인 교육 분야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웹 에이전시 또는 온라인 교육 분야의 포트폴리오에 도움이 되는 다른 학과의 전공 수업을 듣는 것이 답이라고 판단했다.


사실 다른 학과 수업을 듣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전공 수업의 비싼 재료비 때문이기도 하였다. 졸업만 가능하도록 최소한의 전공 수업만 듣고, 내가 취업하고 싶은 분야의 수업을 집중적으로 듣기로 마음먹었다. 동시에 웹 분야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계획에 없던 지출을 고려했을 때,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웹 분야 취업을 목표로 전공 수업 대신 시각 디자인 수업을 들으며 2개의 홈페이지를 개발했다. 또한 온라인 교육 업체에서 프로그래머와의 소통 경험을 통해 컴퓨터 공학과의 JAVA 수업을 2학기부터 수강하게 되었다. 졸업 시 전공은 B였지만 타과 수업은 A를 받았다.


시각 디자인과와 타과 수업을 통해 디자이너들의 실력과 열정을 직접 경험하며 값진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들과 경쟁하여 취업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른 선택으로서 Java, JavaScript, ActionScript를 추가적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디자인 실력은 부족했지만, 프로그램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애매한 포지션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당시 시각 디자인과 학생들 중 프로그램까지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의 개념으로 보면 프런트엔드 분야였다. 이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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