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매 순간 저항하는 삶(1)

메이저가 아니라 마이너로 살겠습니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실용과 본질


실용과 본질


지금 당장 봉착한 문제를 잘 해결하며 사는 것만도 벅찰 때가 있다. 먹고사는 일, 문제가 발생한 자녀와의 관계, 다툼이 발생한 배우자와의 문제, 불편한 직장 동료와의 문제, 매달 갚아나가야 하는 대출금과 대출이자, 그동안 모은 적금을 탈탈 털어 올려줘야 할 전세금, 오르지 않는 성적을 위해 취해야 할 행동 등등등... 살아가는 이상 해결해야 할 일들은 계속 발생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발전적인 삶을 살기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간다. 대부분 눈에 보이는 것들이고 단기적인 것들이다. 그런 단기들이 모여 장기를 이루고 그 장기들이 인생을 채워간다.


이 방식은 실용적이고 빠른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보편적인 방식이다. 특히 지배와 전쟁의 폐허를 겪은 한국인들의 집단 무의식에는 빠른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실용적인 방식에 대한 선호가 있고 그것은 "빨리빨리" 문화로서 드러난다. 우리는 늘 빨리 해내려고 노력해 왔고 그래서 어떤 민족보다 빠른 발전을 이루었다.


그런 국민적 욕구들은 사회 전반에 퍼져있어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교육분야는 말할 것도 없이 뜨겁고 열렬하며 경제분야 역시 그렇다.

사회적으로 깔려있는 인식, 그것은 부유에 대한 선망이며 빈곤을 개인의 문제로만 보는 인식의 문제가 있다. 교육은 각자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회에 필요한 우수한 인재를 선별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굴러간다. 나는 그래서 다른 나라는 극찬하는 이 교육제도에 동의가 되지 않고 그러므로 나의 아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기가 힘들다.


이런 나의 가치관을 말해야 할 때마다 충돌을 경험한다. 대부분 내 또래의 학부모들은 이런 나를 이해하기 어려워하고 어떻게든 내가 생각을 바꾸기를 바란다. 그러다가 어쩌려고 하느냐, 당장 거기서 나와라 등등 감사하게도 아낌없는 조언을 보낸다.


나는 언제나 본질을 생각하고 본질에 대한 고민들을 하는데 그럴 때면 주위의 실용주의자들은 내게 배가 불렀다, 혹은 지금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데 그런 게 무슨 소용이냐는 말들을 하고는 한다. 아오며 런 질문과 가르침들을 암암리에 무수히 강요받아왔다.


나는 그들에게 나처럼 살라거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강요를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을 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게 아니라며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들은 나의 가치관을 들었을 때 대부분 불편해한다.







과열 과열 과열


과열, 과열, 과열


전화기 너머 아이가 다니는 학원 선생님의 상기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가 개념이 정립되어있지 않아서 어려워하는 것이며 개념을 정립하고 문제를 많이 풀어서 어떤 문제든 두려움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이 선생님의 목표라고 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속에 떠올랐지만 하지 못한 질문은 '아이도 그 목표에 동의할까요?..'였다. 수학시간에 답답함과 소외감을 경험한 아이가 원해서 다니기 시작한 학원들이 제시하는 목표는 모두 실용적이었고 단기적인 목표들이었다. 어느 누구도 아이에게 "너는 어떻게 공부하고 싶니?"라고 묻지 않았다. 모든 가르침들은 표준적인 방법으로 준비되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선생님께 말했다. "저는 아이가 모든 문제를 맞히는 것을 바라기보다 포기하지 않기를 더 바랍니다. 그렇게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몇 초간 정적이 흘렀고 선생님은 잠시 말이 없으셨다. 이런 대답이 처음이신지 아니면 당황하신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잠시 말을 하지 않으셨다.


실용성과 효율성의 관점에서 보면 나의 방식은 실행가능성이 없는 이상적인 이야기로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본질이 잊힌 목표는 수단으로만 채워질 위험성이 있다. 세상은 어차피 불공평하니 그런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세상이 원하는 자격을 보유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은 불공평하니 불공평한 제도들에 저항하고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가야 하는 걸까?






당신이라면?


당신이라면?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후자다. 나는 본질을 쫓기 때문이다. 본질을 쫓는다는 건 지금 당장의 성과나 효과로 확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미련해 보이기도 또 가까운 미래에는 그것이 어쩌면 실패로 보일 수도 있다. 외롭고도 어려운 싸움이 될지 모른다. 세계에 저항한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항하는 쪽보다 순종하는 쪽을 택한다. 그게 편하니까.


부모는 자식이, 교사는 학생이, 기득권자는 국민이, 나이가 많은 이는 나이가 적은 이가, 선배는 후배가,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힘이 센 자는 약한 자가 복종하고 순종하기를 바란다.


나는 모든 종류의 복종과 순종에 대해 거부감이 든다. 그래서 다른 방식을 선택하려고 노력하고 설령 강요되는 어떤 방식을 이행해야 할 때도 그 일로부터 감정적인 거리를 유지한다. 나의 이런 방식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불편해한다. 그리고 때로는 비난이나 비판이 날아오기도 한다. 넌 뭐가 그렇게 잘났냐는 말이나, 그런 방식을 원한다면 학교를 보내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 나는 결코 웅변톤으로 "여러분! 이런 낡아빠진 방식을 버려야 합니다!!!!!"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그렇다. 나는 그저 내가 어떻다.라고만 밝혔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불편해한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