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어떠한 영광도 결국엔 과거가 된다.

메이저가 아니라 마이너로 살겠습니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진흙탕 같은 환경


진흙탕 같은 환경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물건들, 명예, 건강, 좋은 직업, 세상에서 최고라고 말하는 것들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너무 가난해서 하루하루 그 가난을 헤치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으니까. 하늘 높이 솟은 고층 아파트들을 보면서 세상에 집들이 저렇게나 많은데 왜 내 집은 없는지, 하루하루 열심히 살지 않은 날이 없는데 왜 내 가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지에 대한 깊은 의문과 좌절을 느꼈다.


나의 젊은 날들은 열등감과 분노와 좌절과 슬픔의 연속이었다. 스무 살, 내 한 몸 만으로도 버거운데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었고 열심히 일했음에도 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살던 곳은 좀도둑과 쥐가 들끓는 곳이었고 낮에도 햇볕이 들지 않는 곳이었다.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어 집집마다 빨간 낚서가 되어있는 곳이었다. 집에는 3년째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할머니와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이모가 있었으며 나의 십 대는 그들의 대소변 냄새와 함께 지나갔다. 엄마는 퇴근하다 계란을 배달하는 트럭의 백미러에 얼굴을 부딪혀 입원한 적도 있었고 일을 지 못해 각종 관절 질환들을 달고 살았다.






죽음의 지근거리


죽음의 지근거리



그리고 이상하게도 많은 죽음을 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시작으로 함께 살던 할머니, 같은 반 친구, 가까운 친구, 일했던 복지시설의 호스피스에서 보던 많은 죽음들. 결혼을 하고도 친척들의 죽음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노환이든 지병이든 많은 장례식을 참석했다. 병원에서도 일을 한 적이 있어서 죽음을 종종 보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죽음의 지근거리에서 살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가 불명의 고열로 여러 날 입원해 골수검사까지 했을 때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억만금이 있어도 어쩌면 사랑하는 아이를 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과 인간이란 아주 무기력한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나는 자나 분자처럼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사십 대 초반이 되어 지난날을 돌이켜보고는 전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많은 일들을 겪고 나니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에 서서히 흥미가 떨어졌다. 재미가 없었다.

돈이 많은 게 부러운 것은 쾌적함이나 편리함에 있지, 계층에 대한 부러움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가진 명예도 잠깐은 부러울지 모르나 금방 흥미가 없어졌다. 사람들이 타는 좋은 차나 비싼 물건들에도 잠깐 눈길이 갔으나 역시 금방 재미가 없어졌다. 비싼 음식을 먹어봐도 딱 그때만 기분이 좋금세 재미가 없어졌다. 최근 시작한 공부에 몰입했고 좋은 결과가 나왔으나 그 기쁨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영원한 것은 플라스틱 뿐.


영원한 것은 플라스틱 밖에 없다.



왜 그랬을까? 왜 나는 많은 부분에서 금방 흥미가 식었던 걸까? 우울하거나 무기력해서? 희망이 없거나 비관적이어서?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경험해 버렸기 때문이다. 행복이나 기쁨 같은 감정,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 역시 그렇다는 걸 알아버렸다.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고 명예를 얻을 때에 그 현상들의 뒤에는 개인들 각자의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뿌듯함, 기쁨, 인정받는 느낌, 사랑받고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 그동안의 고생에 대해 보상받는 느낌 또 앞으로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함에서 공포까지..


명예나 돈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감정 역시 영원하지 않고 항상 변한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다. 영원한 것은 딱딱한 플라스틱 밖에 없다. 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상하고 누군가의 배설물이 되듯 어떠한 영광도 그 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숱하게 경험하고 나니 욕심을 부리지도 절박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리고 결과에 연연하지도 않게 되었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오래도록 경험하면 무기력하거나 비관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담담해진다.

크게 기쁘지도 크게 슬프지도 않아 진다. 그렇다고 감정을 아예 못 느끼는 것은 아니다. 감정을 느끼지만 그 감정의 온도가 전처럼 뜨겁거나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냉소적이 되는 것도 아니고 비관적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무조건 모든 것에 순응하는 것 또한 아니다. 다급할 일도, 절박할 일도 없다. 지금 해야 하는 일을 몰입해서 할 뿐이다. '잘 해내야지. ' 가 아니라 '할 일을 해야지.'가 된다. 경험에 비추어볼 때, '잘 해내야지'라고 생각하며 일을 추진했을 때보다, ' 할 일을 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일을 추진할 때가 더 편했고 비교적 쓸모없는 자책이나 집착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의 원인이 반드시 노력부족이나 능력부족 때문만은 아니라는 앎도 지난날 살아온 경험들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빛나는 성과 역시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삶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정반합이다. 그 정반합 안에 어떤 고통과 영광이 있을지라도 살아있는 한 정반합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일은 과거가 다. 그러므로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잔잔한 호수처럼 지금을 흐르는 일뿐이다. 담담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