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현재에 몰입하는 것과 세계에 복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이슈다.
저항한다는 것은 쌈닭처럼 싸운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내가 정말 그것을 원하는지, 그것이 혹시 보이지 않는 압박은 아닌지, 그것이 혹시 인정욕구는 아닌지.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은 아닌지, 불안과 불편한 감정이 들기 때문은 아닌지, 세상이 내게 원하는 것을 나도 역시 원하는지. 늘 자기에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불안
불안.
<불편>은 그들 내면의 <불안> 때문이다.
여태껏 진리라 믿어왔던 것들에 균열을 일으키는 의견이나 방식은 <불안>을 불러온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은 사람을 불안하게 하고 익숙한 것에 회귀하고자 한다. 그것의 객관성보다는 일단 익숙한 것을 좋다고 느낀다. 나는 먼 누군가에게 강요를 하지 않았음에도 내 선택 자체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 내가 가진 의도는 어떤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함이다.
그런 선택을 하는 내게도 불안이 있다. 과연 괜찮은가? 모두가 가는 길을 가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끊임없는 유혹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동안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본다. 그리곤 이내, 세상이 말하는 가치를 따라 사는 게 전혀 기쁘고 즐겁지 않았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매 순간 남들과는다른 선택을 하고자 하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리고 내 방식을 밝힌다. 타인이 불편해할지라도 밝힌다. 동의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타인의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 잠시 고독해진다. 군중 속의 고독이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한다.
공부에 대한 가치관
공부의 본질과 목적에
대한 가치관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5학년인 우리 집의 아이들에게 말한다. 성적은 노력을 수치화해서 보여주는 것일 뿐 공부의 목적은 아니라고. 왜 공부를 하는지, 왜 공부를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고. 나는 아이들에게 공부의 목적에 대한 구체적인 가치관은 말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목적을 아이 스스로 찾기 바라며 나와는 무관한 독립적인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다만노예가 아니라 주인으로 살기를 바란다.
이런 나의 가치관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질문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걸 안다. 괜찮다. 그것은 그들것이므로. 다만 조금(?) 고독하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