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실존의 시간.

메이저가 아니라 마이너로 살겠습니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살아남는다는 것


살아남는다는 것


우리는 태어나서 생존하기 위한 많은 교육들을 받는다. 먹고 자고 씻는 것 같은 기본적인 생활습관, 그리고 부모와 애착을 맺는 경험을 하고 나면 사회적 관계 교육을 받는다. 친구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지, 다양한 상황들 속에서 이럴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 습득되면 지식을 습득한다.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이다. 역사를 비롯해 수학 과학 등 다양한 과목들이 있다. 그런 과목들의 점수와 성실성을 평가받고 대학을 진학하는 사람들도 있고, 일찍 직업을 갖는 사람도 있다. 직업이 아주 일찍부터 부모에 의해 정해지는 아이도 있고 커가면서 스스로 정하는 아이도 있다.


대부분 교육의 핵심은 적응과 생존에 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종의 보존을 위해서 인류가 선택해 온 최선의 방식일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오랜 시간 최상위 포식자로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점에 있어 그 방식은 인간에게 적절한 방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종의 역사 속에서 많은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 질문을 해왔다. 그것 역시 다양한 목소리로 인간들에게 영향을 주어왔다. 그러나 인간에게 더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안타깝게도 철학보다는 자본주의다.






실존보다 생존


실존보다 생존


그래서 자본주의는 열심히 살지 않는 것을 패배로 정의했고 사람들은 더 많은 자본을 차지하기 위해 부의 가치에 집중했다. 그 결과 삶은 윤택해졌다.

생존에 몰두하며 최선을 다 해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윤택해졌음에도 현대인들이 공허한 이유는 무엇일까?


살아남았으니, 굶어 죽지 않았으니, 세계에 잘 적응하고 있으니 된 것 아닐까? 어떤 종교는 그렇게 말한다. 감사하지 못해서 그러는 거라고. 그래서 감사일기를 쓰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작은 일상들을 감사하지 않아서 공허한 것일까? 매 순간 감사하며 살면 공허하지 않을까?


현대인들이 공허한 이유는 삶의 관점이 실존보다 생존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한 상태인 생존과 자기 존재 자체로 살아 있는 실존은 방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인간은 생존에 포커스가 맞춰진 채 성장하지 실존에 포커스가 맞춰져 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돈이 많아도 뭔가가 부족하고 아무리 명예가 높아도 외롭다. 왜 그런지도 잘 모르는 채로 감사일기를 쓰고, 기부도 해보고, 봉사활동도 해본다. 좋은 곳에서 비싼 음식도 먹어보고 남들이 가질 수 없는 것도 구해서 걸쳐본다. 그 모든 행동들이 생존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생존을 잘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 중 특히 외적으로 멋있는 삶을 꾸려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멋지다. 사람들도 그들을 가리켜 멋지다고, 완벽하다고 도대체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고 한다.

그들도 그런 평가들에 맞게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그늘이 한 점도 없다. 너무나 밝고 맑다. 나 역시 그의 살아남는 능력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매력적이지는 않다.






아름다움과 매력


아름다움과 매력


아름다운 것과 매력은 엄연히 다르다. 아름다운 것 은 외부에 있지만 매력적인 것은 가슴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아버려서 막을 수가 없다. 실존과 생존의 차이는 거기에 있다. 아름다움과 매력의 차이, 생존하려는 인간은 아름답다. 그 누가 살아남기 위한 생존을 아름답다 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러나 그것은 실존만큼 매력적이지는 않다.



나는 철학자들 중에서
관조적인 사람
자기 자신 안에서 휴식하는 사람,
행복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형성하는 힘과
정직성의 세련됨이
결여되어 있다.

-니체-



상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고 다양한 삶의 방식들이 있다. 그러나 다양한 삶의 모습만큼 다양한 삶의 실존은 숨은 그림 찾기 만큼이나 찾기가 어렵다. 실존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실존은 독립성이다. 누구의 아래에도 또 누구의 위에도 서지 않는 것, 누구를 위해서도, 무엇을 위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 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것,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비난하지 않는 것, 자기의 소신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유연함을 갖고 있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실존이다.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을 때, 온전히 혼자 남겨졌을 때, 버려지고 버리는 고통을 견딘 후에야 인간은 비로소 실존하게 된다. 관계 속에 있는 인간은 타인이 원하는 인간으로 기능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삶은 생존이지 실존은 아니다. 현대인에게 이제 생존은 주요 과제가 아니라 부차과제다. 이제 우리에게는 실존의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