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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Oct 02. 2024

7. 순수성

사라져 버린 것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우리에게 해주셨던 말들이 거짓임을 알게 될 때가 있다.


유년 시절에는:

이 주사 하나도 안 아픈 거야.

이 약 안 쓴 거야.

싫어하는 음식을 먹으면 키가 쑥쑥 자란다.



학창 시절에는:

대학만 가면 공부는 끝이야.

대학에 가면 살 다 빠져.

대학만 가면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



결혼 적령기나 결혼을 하면:

결혼은 좋은 거야.

애는 우리가 봐줄게.

나는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해.

생일 같은 거 신경 쓰지 마라.

우리는 너희만 잘 살면 바랄 게 없다.



부모님들은 다양한 거짓말을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다. 주사는 언제 맞아도 아프고, 안 다던 약은 쓰며, 키 크는 건 싫어하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유전적인 요인이 더 크다는 걸 알게 된다. 대학에 가도 공부는 끝나지 않고, 살이 빠지는 건 사람에 따라 다르며, 대학에 간다고 해서 무한한 가능성의 문이 열리는 것도 아니다.


결혼을 해보니 이 제도가 전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애를 봐주신다던 부모님은 건강상태가 따라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한다던 시어머니는 진짜 딸처럼 굴면 정색하신다는 것도 알게 된다. 생일을 신경 쓰지 말라던 부모님이 진짜로 신경 쓰지 않으면 서운해하신다는 것도 깨닫게 되고, '너희만 잘 살면 된다'는 말은 너희끼리만 잘 살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님보다 더 큰 세상을 만나며, 부모님이 하나의 작은 세계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어릴 때 여성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옷은 몸을 드러내지 않게 단정히 입어야 하며, 사랑받고 싶으면 노력을 해야 하고, 여자는 결국 결혼을 통해서만 행복할 수 있으며, 결혼한 여자는 아이를 출산해야 그 집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학교에서는 나에게 오직 지식만을 가르쳤다. 나는 그들의 가르침대로 살면서 늘 불행했다.


내가 만난 책들 속에서는 인간이 그 자체로 존엄하며, 파괴되어서는 안 될 고유의 권리를 가진다고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가정과 학교에서는 반드시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만 수용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는 권리와 존엄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받은 가정과 학교의 교육은 세상을 위해 필요한 인간이 되기 위한 교육이었지, 나 자신을 위한 내가 되기 위한 교육이 아니었다.


그들에게서 받은 가르침은 하나의 작은 세계일 뿐이었다. 그들만의 진리와 진실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순수성을 잃었다. 순수하게 믿어왔던 시간들이 왠지 속아왔던 시간들처럼 느껴졌다.


순수성을 잃는다는 증거가 있다. 그게 무엇일까? 바로 '질문'이다. 그동안 받아왔던 가르침에 물음표를 품는 것은 순수성을 잃는다는 증거다. 그래서 질문을 품은 아담과 이브도 몸을 가리기 시작했다. 성경에서는 그들의 질문을 '뱀의 유혹' 때문이라고 정의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에 대해 '저게 뭐지?'라는 질문을 품지 않았다면, 그들은 계속 신의 품에서만 살았을 것이다. 그들은 불행이나 슬픔을 경험하지 못하고 영원히 의존 속에서 사랑만 받으며 살았을 것이다. 자유의지는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내가 인간을 사랑하는 신이라면, 자유의지를 가지지 못한 채 살게 하기보다는 자유의지를 경험하게 하겠다. 그게 바로 신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닐까?


나는 순수성을 잃었지만 성숙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질문을 통한 성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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