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사회에 나와 보니 온갖 어려움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신기한 건, 그런 어려움들에는 정답이 없었다는 점이다. 시험에는 공통된 문제와 명확한 답이 있어서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답을 맞춰보고 몇 점이 나올지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생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은 그렇지 않았다. 답도 없고, 사람마다 문제의 유형이 다 달라 맞춰볼 수도 없었다. 누군가의 정답이 나에게는 정답이 아닐 수 있었고, 그에게 오답이 나에게는 오답이 아닐 수 있었다. 문제의 유형이 누군가와 비슷할지언정 결코 똑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비교하거나 대조하기도 어려웠다. 참고는 할 수 있지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문제들뿐이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 나는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인생은 시험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시험에는 명확한 규칙과 답이 있지만, 인생에는 규칙도 답도 없다. 살아가며 마주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예측 가능한 선형적 공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인생은 계산되지 않는 복잡한 연산과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안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모든 조건을 갖췄다고 생각해도, 그 결과는 우리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될 수 있다. 모든 조건을 갖췄다고 생각했는데 실패할 수 있고, 건강관리를 철저히 했는데도 병에 걸릴 수 있다. 교통질서를 잘 지켰는데도 사고를 당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적 없이 선량하게 살았는데도 사기를 당할 수 있다. 정직하게 장사했는데 손님이 없어 폐업할 수도 있고, 선한 의도로 한 일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즐겁게 떠난 여행길에서 큰 사고를 만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렇듯 인생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비선형적이다.
‘1 더하기 1은 2’나 ‘2 빼기 2는 0’ 같은 선형적인 문제들보다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이 훨씬 많다. 어릴 적엔 그걸 몰랐다. 열심히 하면 될 거라 믿었고, 선한 의도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고, 진심을 다해 살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 여겼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렇지 않았다. 선함이 언제나 승리하는 것도 아니었고, 진심이 언제나 가치로운 것도 아니었다. 삶에는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돌발성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 돌발성은 갑작스레 찾아와 나를 휘청거리게 했다. 따귀를 얻어맞은 듯 얼얼한 뺨을 문지르며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조난당한 사람처럼 막막한 질문을 했다.
삶을 살아오며 나는 선형성을 상실했다. 하지만 그 상실은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비선형성은 사람을 불안하게 하고 예측할 수 없게 만들지만, 그렇기에 현재의 가치에 몰입하게 만든다.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된 뒤로 조금 더 겸손해졌다. 삶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고, 멀리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존재도 단층적으로 보지 않게 되었고, 그들의 심층과 다층을 이해하려 노력하게 되었다.
선형성을 잃었던 순간은 좌절과 고뇌로 가득 찼지만, 결국 같은 문제는 없으며, 같은 해답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은 절대로 같은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나의 시각이 얼마나 협소했는지를 선형성은 나에게 보여주고 떠나갔다.
이제는 비선형적인 삶을 살아가며 매 순간 담담해지려 애쓴다. 삶의 불확실성과 불안을 껴안는 법을 배웠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나를 흔들어 놓더라도, 그 속에서 나 자신을 지탱하는 법을 터득해 가고 있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현재를 담담히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그 용기야말로 비선형적인 삶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