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야단맞은 후 늘 하던 말이라는데...? -감자이야기 1
'이마가 튀어나온 사람이 고집이 세다'라고 하는데 아마 내가 그에 해당될지 모르겠다.
나는 어릴 적에 꽤나 고집이 있었나 보다.
강원도 춘천 외곽의 산골에서 가난한 농부의 7녀 1남 중 셋째 딸로 태어난 나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도 세서 맘에 들지 않는 것은 좀체 하지 않으려 했던 듯싶다. 옷을 갈아입히려고 해도 이유는 잘 모르지만 싫다고 버텨서 결국 엉덩이를 몇 대 맞고서야 갈아입힐 수 있었다고 한다. 결혼하여 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고 보니 나를 키우시느라 부모님의 어려움이 크셨겠다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고집을 부리다 야단을 맞은 후면 입이 삐죽 나와 늘 하던 말이 "감자나 먹을까 부다!!"였다고 한다.
엄마는 " 먹으려무나" 하고 답하셨다. 나는 아궁이에 불을 때서 가마솥에 밥을 짓던 부엌으로 가서 솥뚜껑을 낑낑대며 옆으로 밀어 열고는 밥 속에 묻혀있던 감자를 골라내서 먹었던 기억이 많이 난다.
그때 왜 감자를 먹고 싶어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혼나고 나면 그 말이 같이 나왔던 거 같다.
2년 전 돌아가신 엄마는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여전히 너무 우스워서 눈물이 날 정도로 웃음을 참지 못하셨고, 구순을 바라보시는 아버지 또한 지금도 이 이야기를 하시면 마찬가지로 웃음을 참지 못하신다. 같이 듣는 가족들도 마찬가지 반응이라 언제까지 이걸로 나를 놀리려나 싶으면서도 나 또한 괜히 웃음이 나온다.
이 일화를 알고 있는 딸아이가 몇 년 전 엄마가 떠오르는 시라며 나에게 시 한 편을 보내왔다.
시를 읽으면서 어린 마음에 야단맞은 후에 이런 심정으로 감자를 먹고 싶어 했을까 싶었다.
감자의 맛 - 이해인
통째로 삶은
하얀 감자를
한 개만 먹어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럽고
넉넉해지네
고구마처럼
달지도 않고
호박이나 가지처럼
무르지도 않으면서
싱겁지는 않은
담담하고 차분한
중용의 맛
화가 날 때는
감자를 먹으면서
모난 마음을 달래야겠다
딸아이가 이 시를 보면서 엄마의 "감자나 먹을까 부다" 일화가 떠오른 것은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아마 어린 나이에 나는 자신도 이유는 잘 몰랐지만
화가 날 때는
감자를 먹으면서
모난 마음을 달래야겠다
라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었나 싶다.
이 시를 쓰신 이해인 시인 덕분에 어릴 적 나의 행동을 이렇게 이해해 본다.
그리고 고집 센 딸을 키우시느라 고생하신 부모님,
나는 커서도 부모님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들어와서 광주항쟁 대자보를 보며 시작한 학생운동을 멈추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 중이다.
지금도 답답하고 화가 날 때는 "감자나 먹을까 부다"의 효과가 있을는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