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아들의 엄마 경험..
나는 가족소개를 할 때 늘 딸을 먼저 말한다.
나는 7녀 1남 중 셋째 딸, 나의 자녀는 딸과 아들 이런 식이다.
그냥 태어난 순서대로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의식적인 행동이기도 한 거 같다.
부모님은 내리 7명의 딸을 낳은 후에 8번째로 아들을 낳았다.
내 이름이 '제남(弟男)'이인 것도 '후남(後男)'이와 같은 뜻이다.
부모님이 아들을 바라던 마음이 고스란히, 너무나 솔직하게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는 이름이다.
학교에 다닐 때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늘 이름으로는 남자로 분류되곤 했다.
학창 시절, 선생님들은 늘 '여학생이네? 딸이 몇 명이니?'라고 물으셨는데 그때는 너무 싫었었다.
교사가 되어 전근을 가면 늘 나는 남자교사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리고 3월이면 남교사회에서 늘 이런 메시지가 날아왔고 나는 답메시지를 보냈다.
남교사회: 홍제남 선생님, 전입을 환영합니다.
저희 남교사회에서 환영 모임이 있으니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 환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는 남교사가 아니라 여교사랍니다.
남교사회: 어이쿠~죄송합니다. 그래도 이름에 '남'자도 들어있으니 같이 가시지요?
29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큰 아이가 딸이었다.
부모가 바랐던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나서 겪었던 여러 우여곡절은, 1992년~1993년 방영된 mbc 드라마 '아들과 딸'의 상황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고 느꼈다. 이 드라마는 극 중 아들과 딸인 귀남이(최수종)와 후남이(김희애)에 대한 부모의 차별이야기로 당시 인기가 엄청났었다.
딸아이를 낳고 나서 마음이 매우 복잡했었다.
우리는 당연히 차별은 안 하겠지만 내가 겪은 경험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가 여전히 여성들에게 더 불리한 사회라고 생각되어서인지 왠지 마음이 짠했었다.
2년 반 뒤에 둘째로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아들을 낳았을 때도 다른 관점에서 마음이 복잡했었다.
남성이라 권위적이고 군림? 하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텐데... 이런 마음과 비슷한 심정이었나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두 아이 모두 나의 삶의 서사가 투영되어 생겨난 걱정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엄청 많은 인간적인 성장과 성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된다.
남편은 회사일로 바쁜 탓에 맞벌이를 하며 거의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결혼해서 가장 잘 좋았던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두 아이를 낳아서 기른 것'이라고 답한다. 살면서 남편과 이런저런 갈등으로 싸운 적도 많았지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것은 결혼 덕분이었다. 아이들이 태어난 90년대에는 결혼하면 둘 정도 아이를 낳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엄마인 내가 아이들을 길렀지만, 아이들도 엄마인 나를 성장시켰다.
어린 시절, 엄마는 원하던 아들이 아닌 딸이 태어나는 것이 너무 원망스러웠는지 딸들에게 '쓸데없는 기집애'라는 말을 달고 사셨다. 이 말은 꽤 오랜 시간 나의 마음에 상처로 남아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인지 성장하면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 나에게 두 아이를 낳아 기르는 과정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사랑이 필요한지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교사인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볼 때마다 한 학생 한 학생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더욱 절실하게 공감되었고, 우리 아이의 부족함을 보면서 학생들의 현재 수준에 대한 이해를 더 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엄마 경험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