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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뻥쟁이글쟁이 Apr 02. 2024

웃음이 저절로 실 실 나오더라!

얼마나  좋으면...

늦은 나이에 결혼해  맞이한  첫 아이는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 심한 입덧 탓에  빼짝  말라 시름시름 러지기 일보직전의  단계를 거친 후 라  더 소중하고 귀한 존재였다.

먹는 게 취미였던 것이 무색하게 입맛이  단체로. 싸그리

가출을 했다 . 삶의 의욕도 없어질 뿐 아니라 우울감

마저 생기기 직전이었다. 먹은 것도 없이 꾸엑거리는 것도 모자라  애새끼고 뭐고 난민처럼  골골거리다  내가 먼저 죽을 판국이었다.

티비를 보다 갑자기 좋아하지도 않는 뼈다귀 감자탕에

꽂히는 동시에 자다 깬 남편이 새벽바람 가르고 영등포까지 가 사들고 오는 수고를 했지만  순식간에 입맛이 달아났다;

임신 중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으면 평생 원망 한다느니

아이 눈이  짝짝이로 태어난다느니  하면서 지극정성으로 수발을 했다.

워낙 사 들고 다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귀찮은 내색  하나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날아다녔다.

1월에 임신해  4월  초 인가 ,1호언니네  마당 한 귀퉁이에 에 묻혔던  총각김치를 계기로 입맛이 살아나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바닥에  조금 남아  거의 찌꺼기 수준의 , 줘두 안 먹을 정도로 허연  곰팡이가 잔뜩 끼어 있던  무늬만 김치였다.

항아리를  씻을 때 버릴 것이라 마냥 방치 해 둔 김치 같지 않은  쓰레기 수준 급 이었다.

군둥내 폴폴 나던 무 한 조각을 먹고서야 입덧이 끝난 듯 그 다음부터 순조로웠다.

순식간에 미식거리던 것이 사라지더니  몇 달 못 먹은 것을 보충하는 태세로 전환했다.

초반 고생시키던 뱃속 무럭이는  세상 돌아가는 게 궁금했던지 예정일보다 일주일이나 빨리 나오려는 신호를 보냈다.

그날이 10월 9일 한글날.

3~4일 전부터  느낌이 싸~한 게 남 집 생일 밥 먹고 와

된통  체한 줄만 알았다. 병원에 문의하니 바로 입원을 하라 해  드디어 내 첫 아이와의 상봉을 기다리는 대기조였다;  엄마, 남편, 1호언니가  덩달아 대기 상태였고 그 날 산모는 딸랑 나 혼자였다.

배가 꼬이는 느낌도 들고 심하게 아파 속이 다  뒤집어질 것만 같고  암튼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었다. 남편과, 엄마는 집으로 왔다 갔다 잠깐 볼 일 보러 간 사이 1호 언니랑  둘이만 남았다.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해 1호는 옆 침대에 누워  뒹굴거렸고  아침 댓바람부터 배가 뒤집히는 과정을

겪는  입장이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간격이 좁아질수록 미치고 팔짝 뛸 것만 같아 수술 하게 의사 좀 불러달라니 1호가 알았다며 나갔다 왔다.

아무리 기다려도 의사는커녕 간호사 그림자도 안 보여 다시 불러 달라 하니  알았다며 또 나갔다  왔다. 막판에는 뱃속에 있는 아이  얼른 꺼내 놓고 도망가 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어  수술이라도 해야겠어 , 얼른 의사 좀 불러 와...하니 혼자 여유 부리며  소화가 안되는지 방구만 펑 펑 뀌면서 옆 침대에 누워있었다. 입으로는 온갖 잡소리 다 내며 끄으윽, 끄윽. 트림을 해 대지 않나, 초 단위로 방귀를 껴 대지 않나. 우 씨, 비상사태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1호였다;

7시에 짐 싸들고 가 저녁 7시 12분에  죽기 살기로, 악으로 깡으로 내  첫 번째 보물과  상봉을 했다

간호사의  첫마디가  "아빠 닮아 잘 생겼네요.. 였고 복도에 대기 중이던  남편은 아기 울음소리와 동시에 눈물 그렁그렁해서는 처형을  얼싸안고 고맙다고 했더란다. 옆에서 트림에 방귀만 뀌어댄 줄도 모르고..

 뱃속이 가뿐해져 한숨 돌리려니 1호가 이실직고를 했다. "너 내가 의사 부르러 간 줄 알았지.?

이 바보야 수술하면 나종에 더 고생하는데 뭔 수술타령.

신생아실 한 바퀴 휙 돌다  온 것도 모르고 이제나 저제나  목 빼고, 배 움커. 잡고  의사만 기다리던 꼴이었다;, 본인이 수술로 두 아일  낳았으니 후유증을 알기에   더 만류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고 며칠을  병원에  상주하다 시피 들락거리며 틈만 나면  쪼르르 가  아기면회를 했다.

유리 너머로 보고 온  꼬물이 모습을 실제상황 처럼

생생하게 중계방송 해 주었다.

본 판은 아빠 닮았는데 생김은 엄마 닮았다는 요상야릇한 표현을 했다;

본 판은 뭐고, 생김은 또 뭐여?

누구 닮았냐는 실랑이를 보던 엄마가  솔로몬의

지혜를  내주었다;

오늘 다르고, 낼 다르게  수시로 변하는 게 신생아라며

누구 닮은 게 뭐가 중요해, 지 에미 애비 닮았지

세탁소 아저씨 닮았을라구


아들만 셋 키우신 시어머니는 그래도 아들 손주가

좋은지 목 뒷덜미까지 애비 닮았다며 입이 귀에 걸렸다. 옆에 방에는  방금 딸을 낳았는데 그것도 수술로 낳았다더라, 은근 비교하며 혼자 좋아하셧다.

1호, 2호에 비해 늦은  나이다 보니 조카들하고도 나이 차아가  많았고 , 늦둥이 조카에 대한 애면글면 사랑이

고도  넘쳤다.

하루종일 그림같이 코~자던 녀석이 어스름해질 무렵이면 쌩쌩해져서는 밤이 깊어질수록 칭얼대며

 날밤 까기가 일쑤였다.

둘이 번갈아가며 흔들 침대를 흔들다, 자다 깨다,

잠결에는 발로 흔들어가며 교대를  했다.

자식이 뭐라고, 잠을 못 자니 눈은 십리로 들어가고 현기증까지 동반하며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밤새 홀랑 뒤집은 떼쟁이는 날이 밝음과 동시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뽀샤시한 순둥이로 변신을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벙긋거리며  저 하나만 보이는 콩깍지 두 바보를  들었다, 놨다 약을 올렸다.

밤 낮이 바뀌어 백일이나 지나야 잘 시간에 잔다는데 언제 백일이 오려나  깝깝한 심정이었다.

한 달이 딱 지나니 낮엔 벙긋벙긋,  밤이면 잘 시간이란 걸 알았는지 우유 한통 거뜬히 때려 먹고는 밤 새 잘 먹고 잘 자는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순하고 이쁜 내  첫 아들!

밤 귀신 아빠가 칼퇴근 해 안고는  입 찢어지도록

좋아하던 모습이며  이모들이 물고 빠느라 손에서 놓질  않았다. 이쁘다고  깨물어  울려도 눈물 글썽이며  "이모 하자마.. 하며 참아 주던 녀석이었다.

그 쉬운  하지마... 소리가 안됐던지 몬 파자마도

아니고  늘 하 자 마 였다.

한 창  말 배울 땐 아이스크림 소리를  안신도..라길래

아.이.스.크.림.   한 글자씩  불러  주면 고대로 따라 하다가도 한 번에 아이스크림.. 하면 다시 또 안신도

하는 통에  뒷 목 까지 닮았다는 아빠  뒷목 여러번

  잡는 효자였다.


5세 때 고르고 골라 유치원 다닐 무렵의.  캠프를 떠나던 날,  처음 혼자  떨어져 멀리 가는 것이다 보니 차창 밖에서  손 흔들며 눈물 훔치게  만들었던 내 보물단지였다. 헤어지기 아쉬워 눈물바람 나는

이별의  인천 정거장 이었다.

잘 갔다 올 수 있으려나, 아이의  1박 2일 부제가 기다리는 간절함에  더해져  일각이 여삼추였다.

그 당시의 어린이 프로에 나가느라 옷 가방 바리바리

 싸 들고 새벽에 출발할 때도 찡찡거리는 게 없었다.

맑고 밝은 아이는 매 순간을 긍정적으로 순화시켰다.

일주일 분량을  이틀에 걸쳐 녹화하느라  새벽부터 밤중까지 이어져도  싫은 내색은 커녕, 백만 불짜리 미소를 아낌없이 날려주었다.

노래도 율동도 생김도, 화면빨 클로즈업  최고였다.

등학교  1학년 시절,, 혼자  운전해 가는  첫 등교 날

몰래 뒤를 밟았다. 공원에 자전거를 세우고 화단  난간에 자물쇠를  연결해 잘  채워 주차하라는  연습까지 시켰는데  아니나 다를까, 자전거  바퀴에만 채우고 눈누난나 교실로 향하는 아이를 보며  곧장 자전거를 훔쳐왔다  하교시간이 되어 조카라면 죽는시늉도 불사하는  5호와 숨어서 보는 재미에 둘이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다.

"ㅇㅇ. 이 나오면 어떤 표정일까?

생각만 해도 써스펜스  스릴러 급  생생 파노라마였다.

스스로 운전해  등교했던 설렘에 발걸음도 가볍게 공원에 들어선  아이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동시에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뭐가 잘못 되었을까....바짝 긴장한 게 느껴졌다.

원을  이 잡듯 뒤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엄마와 이모란 작자는  숨어 키득거리기 바빴고 울음 터지기 직전이 되어서야 짜~ 잔 나타났다.

체험 삶의 현장을  터득하고 나서야  자물쇠도 야무지게 채우는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었다 .

 자리를 바꾸며 짝꿍이 정해지던 날. 요 나잇대가 남자 아이들이 넘치던 시기라  남, 남 짝꿍이 대부분이었다.

몬  사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까무잡잡  생김도 이쁜 여자 짝꿍이 되었는데 이느 날인가  길 에서 만난 짝꿍의 엄마가 특급비밀을 폭로했다.

"ㅇㅇ가 집에만 오면 ㅇㅇ이 얘기를 하느라  

정신을 쏙 빼 놔요.,할머니 집 가서도 ㅇㅇ얘기만 해요.

얼굴도 하얗고 너무 잘 생겨서 누워있으면  천장에

우리 아들 얼굴이 뭉게뭉게 보인다는 소리를 하길래

그 애 엄마랑 둘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요새 1학년 코 찔찔이들 맞어.?

그러면서 속으로 혼자 우쭐하던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장장 6년을  발렌타인데이만 되면  현관 앞 우유주머니에 초콜릿이 배달되었다.

누가 넣어 놨는지는 관심이라곤 없는 녀석이  입에 꺼멓게 초콜릿 묻혀가며 까먹기만 바빴다.  

출처를 모르긴 나도  매 한 가지였고  인기폭발 아들놈에게  누군가가 넣어두고 가나 보다...라는 단순한  생각만 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6학년 때  발렌타인 d~dsy.  수수께끼가 풀리던 날이었다.

이제부터 너 안 좋아하기로 했어 ,이게 마지막 널 향한

내 마음이야...잘 먹고 잘 살아라..  ..

두둥~~

범인은 바로오...1학년 때 짝꿍이었던  까무잡잡 ㅇㅇ였던  것 이었던 것 이었다.  철부지 아들 놈은  긴 긴 시간 짝사랑 소녀의 포기단계 편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잘  먹고  잘 살라던 내용처럼  쵸콜렛만 열심히  까먹었다.


어려서부터 남의 눈치 같은 건 전혀 안 보고  저  할 말 다 하는 소신파였던 내 아들.

",언니가 너무 오냐오냐 눈치를 안 주고 키워서 그래.

밝아도 너~무 밝어..  그러거나 말거나 한낮의 포근한 햇살 같은  내  해바라기였다.

비록 아이스크림을 안신도라 우기며 엉뚱 발랄한 발언을 했지만  커 갈수록  고급진 언어를  적재적소에 잘 배치해  별명이 변호사였던 훈남 1호 보물단지 내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던 때였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흔하지 않았을 때이기도 하고

핸폰 요금제에 대한 광고 모델들이 주 소비층인  청소년을 겨냥해 아예 교복을 입고 광고하던 시기였다.

초등 고학년이 되어서도 어쩌다  하나, 둘 가뭄에 콩

나듯 핸드폰을  소지하던 때라 귀하신 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입학선물로 뭘 해 줄까 나름 고민을 하다가  전날 저녁

매장으로 냅다  뛰었다.

학생 요금제에 맞춰 개통을 하고  옵션을 추가해 꽁꽁 숨겨 모시고 왔다;  입학식 당일 , 어엿한 중학생이 되어  처음 교복을 입고 나가는 아들 녀석의 주머니에 핸드폰을 몰래 넣어두었다.  내려 가 저만치 가는 모습을 보며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쌔삥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나름대로의 비밀작전을

실행에 옮기느라 기대만발이었다.

두 눈은 밑에  걸어가는  내 보물단지의 모습을 예의 주시하면서..3..2..1..0

혼자 화들짝 놀라며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주머니의 핸드폰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자전거  찾을 때의  불안해하며 두리번거리던  모습과는

천지차이였다.

기대 이상의 것을 발견했을 때의 흥분과 설레임이

꼭데기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내게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굿모닝!..워뗘?  기분 나이쑤지?

수화기 너머에서 감동 백 배, 천배의 대답이 돌아왔다

".너무 좋아서  참으려 해도  웃음이 저절로 실 실

나오려고 해.."

그 자리에 멈춰 서서는 손 흔들며  입에다 손 쪽 쪽

거리는 뽀뽀를 날리는 동시에 어려서나 했었던 배꼽인사까지 추가해  지각할 기세였다.

" 늦는다, 어여 잘 다녀온나 이쁜 내 새끼...


입학식 날 , 깜짝쇼로  중딩아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오래 전의  버라이어티한 아침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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