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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한 자유 Sep 01. 2024

건강생각나이

당신은 몇 살인가요?

건강한 몸을 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다.

이루고 싶은 게 많은데 체력이 안된다고 느낄 때

'더 튼튼한 몸을 주세요.' 하며 약한 몸을 향해

정신력을 불어넣었다.


어릴 적 자궁암 수술로 아프신 엄마를 보아왔고

아빠까지 위암 수술의 가족력이 있어

몸 생각하는 나이는 이미 20대 때부터 55세였을 정도로 최강이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린이

몸에 좋다는 것 챙겨 먹기

걷기라도 꾸준히 운동하기

음주와 흡연 최대한 멀리하기

규칙적인 3끼 식사 챙겨 먹기 등등

그런데 수년간  꾸준히 무언가를 습관화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 아이를 낳고 나보다 아이들을 먼저 챙기게 되면서 나는 뒷전이 되었고 그 결과 몸이 여기저기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잠은 늘 부족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달달한 간식이 넘치는 시대이기에

아이들과 함께  먹은 과자, 빵, 아이스크림 등이 문제이기도 했다.

세상엔 왜 이리 맛있는 간식들이 많은 건지

어릴 적엔 나이가 들면 자동으로 과자가 맛이 없어지는 줄 알았는데 내 입맛은 아직도 초등학생처럼 과자의 유혹을 못 참는다.


하루의 피로를 풀어 주는 맥주 한 잔 역시 당장

끊어내얄 할 숙제였다.  한 번에 과음보다 안 좋은 것이 매일 먹는 술이 아니던가?


40대가 돼서 위내시경을 받는데 의사 선생님의

충격적인 발언에 소심한 나는 그 순간 위가 더 안 좋아진 것 같았다.

"이 말을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말을 하고 나면 화를 내시는 환자도 있어서..."

이러시면서 말 끝을 흐리시는 게 아닌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결과가 많이 안 좋은가요? 뭔지 말씀해 주세요."

40대 후반에 위암 판정을 받으셔서 암의 진행 속도가 빨랐던  아빠를 생각하며 이미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에  복잡해졌지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위 점막이 장처럼 변한 건데 위암 전단계이고요. 다시 좋아지진 않는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마치 위암 선고를 받은 것처럼

청천벽력 같은 느낌이었다.

다시 좋아지지 않는다는 말씀에 이미 의욕이

상실된 상태였고 제일 무서운 말이기도 했다.


장상피화생은 위 내에 염증반응이 오래 지속되면서

위 점막의 정상적인 구조물들이 파괴되고 그 자리에 소장이나 대장의 점막과 유사한 세포들로 바뀐 것을 말한다.

이 단계는 위암 전단계라며 엄청 압박을 주셨기에

가족력이 있는 나는 너무나 심한 충격을 받았다.


아직 아들들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인데  지킬 사람이 있어 엄마는 아프면 안 되기에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트레스는 위에 적인데  정말 위가 쥐어짜듯이 아픈 통증도 느껴졌다.

그래도 그 덕분에 지금은 나를 더 챙기는 내가

된 것 같다.


처방해 주신 약을 열심히 먹으며 매해마다 위내시경을 해야 한다는

숙제까지 안고 그 해 여름을 보내야 했다.


당장 위에 좋다는 양배추 즙을 먹고 식탐이 많은 나의 식습관에서 제일 고쳐야 할 건 빨리 먹는 습관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를 고치기 위해 노력했다.

최소 나이만큼은 씹고 삼켜야 하는 데 노화를 따르지 않고 여전히 나는 10~20대처럼 빨리빨리 먹고 있었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이..

천천히 먹기가 힘드니 정말 숫자를 속으로 세며 넘기기를 반복했다.

천천히 먹으니 확실히 먹는 양도 줄어 위에 부담이 덜 한 것이 느껴졌다.


제일 먼저 줄인 것은 커피였다.

공부할 때부터 커피는 카페인 복용의 일환으로 잠 깨기에 효과가 너무 좋았기에 끊지 못하고 입에 달고 살았던 것이다.

하루 3잔에서 점심 후 한잔으로 그러다 어느 순간

졸리면 졸자라는 마음으로 주 중 커피를 뚝 끊게 되었다.

몸에 좋은 것으로 채워 넣어도 부족할 나이에

커피를 마시면 바닥에 깔린 체력을 퍼서 쓰면서

번쩍 하는 느낌이 들었기에  끊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됐다.

내 경우는 맛으로 커피를 마시기보단 잠 깨는 용도여서 그게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커피를 많이 마시며 속이 쓰린 것도 끊게 된 계기였다.

주말엔 아들 둘과 에너지 쓸 일이 아직은 많아서 피곤해서 그런지 가끔 아메리카노를 마시곤 한다.


스트레스 줄이기는 생각보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지'를 마음속으로 외치고

너무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이것이 죽고 사는 문제인가' 떠올린다. 다  내 이름이 걸린 일에 대한 책임감이었고 욕먹는 게 싫어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욕 좀 먹어도 안 죽지'라는 생각을 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순간에는 전부 같던 그런 문제들도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경우가 살다 보면 많다는 것을 느끼기에..

소심한 내가 진짜 안 고쳐질 때 '다음 생엔 더 대범해질 수 있을 거야'라며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한다.


매 해 위내시경을 여름마다 숙제처럼 하는데 

이제 동안 수면이 아닌 일반 내시경

을 제법 잘 참아내는 베테랑이 되어 있었다.

다들 수면 내시경을 하기에 일반 내시경을 잘하시는 선생님을 따로 불러와야 할 정도긴 하지만.

호스가 넘어갈 때 꿀꺽 한 번만 잘 참으면

내시경 내내 내 뱃속을 들여다볼 수 있고

마취가 없으니 1~2분이면 끝나서 혼자서도 무리 없이 아이들끼리 두고도 슝 다녀올 수 있으니 이제는 당연히 일반내시경만 하게 된다.


올여름에도 아이들 방학이 시작하는 첫날 위 내시경 및 종합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

올해는 검진 항목이 많은 해여서 기다리는 게

싫어 7시 반에 집을 나섰고 오전 9시대에 집에 돌아올 정도로 빨리 일을 보고 왔다.


일주일 이상이 지나 잊고 있을 정도에 건강검진 결과표를 우편으로 받아볼 수 있었는데 위는 여전히 만성 위축성 위염과 식도염이 관찰

되었지만 건강에 더 신경 쓰라는 계시기에 "먹는 것이 곧 나다"라는 생각으로  먹을거리를

오늘도 더 신경 써 본다. 다행히 장상피화생이

더 진행이 되지 않았음에도 감사하다.


코로나 이후  외식을 줄이고 귀찮아도 집밥을

고집하면서  신랑도 나도 요리를 조금씩 더 하게

되었다.

요리하는 건 먹어주는 사람이 있어 그나마

즐거운 일인데 요리 후 치우는 건 여전히 제일

하기 싫은 일인 것 같다.

주말에는 서로 한 끼 이상의 요리를 책임지고

나면 치우는 일은 상대방이 말 안 해도 하고 있다.

요리해 주는 이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이니까.


집에서 할 수 있는 요리가 늘면서 외식이 아깝기

시작했다.  오늘 밥을 먹다 뜬금없이 신랑이 "우리 오랫동안 집에서 살다가 가자."라고 말하기에 무슨 말인가 했더니 요양 병원 말고 집에서 나이 들어도 거동할 수 있게  건강을 챙기자는 말이었다.


건강은 누구도 자신하고 장담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오늘도 잘 먹고 잘 쉬었다에 한 표!!


오늘도 가족과 나를 위해 요리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음 편히 덜 아프고

오래 사는 걸 테니까..


몇 년만에 정상을 되찾은 건강검진결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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