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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한 자유 Sep 29. 2024

내 직업이 자랑스러울 수 있게!!

“우리 막둥이가 관운이 있다 했으니 힘들어도 조금만 더 힘내자! ”     

늘 그 자리에서 위로가 되어 주시고 내 편이 되어 주셨던 엄마 덕에 긴 터널 같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학교 다닐 적 중간고사 기간에 집 근처 도서관 간다고 나가면 해 줄 것은 없고 같이 줄이라도 서 준다고 따라나서시던 어두컴컴한 새벽이 기억난다. 엄마는 평생 사주팔자를 맹신하신 분이셨고, 관운이 있다는 엄마의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공무원이 될 팔자려니 생각하고 시험 준비를 했다. 독서실에서 테이프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던 시절 책값, 독서실비라도 벌려고 알바를 병행하며 시험준비를 했었다. 일반행정직을 준비하다 교육학을 추가해서 시험을 는데 교육학이 정말 재미있고 적성에 맞았고 운 좋게 합격을 했다.   


 연말 합격 소식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지만 집 근처가 아닌 첫 발령지는 진돗개로 유명해서 들어보았지만 태어나서 처음 가 보는 곳,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 큰 섬 진도였다.

지금이야 고속도로가 뚫리고 길이 좋아졌지만 그 시절엔 광주 집에서 2시간 30분을 버스를 타고 진도읍에 도착해서 15분을 더 들어가야 하여야 해서 차가 없는 나는 시간을 죽일 수밖에 없는 방법으로 출근을 해야 했다. 광주에서 진도까지 버스비보다 진도읍에서 학교까지 가는 택시비가 더 비싸다는 게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고 주말이면 광주를 가기 위해 나서는 데 겨울엔 캄캄한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곤 했다. 월요일 아침만 되면 새벽 출발 때 못 일어날까 봐 전날 밤을 설치며 나서던 게 엊그제 같다.

겨울 방학  발령이라 학교 바로 뒤 관사에는 아무도 없어 혼자 살게 되었는데 시골의 저녁 시간은 심히 어둡고 학교 운동장을 걷던 사람들도 추운 날씨라 한 명도 없었다.  그때 하필 물품 관련 업무로 혼자 야근을 해야 하는 날이었는데 눈까지 펑펑 내려 관사까지 가는 것조차 힘들어서 학교 문단속을 서둘러 마치고  나왔다. 어둠 속에서 누가 나타날 것만 같은 착각에  빨리 가려고 뛰어가다 눈 밭의 주차장 스토퍼를 못 보고 구른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또 하루는 관사에 지네가 출몰했는데 평소 치킨을 좋아한 나를  공격하기 위해 왔다는 말에 부스럭 소리에도 밤새 무서움에 떨며 잤었다. 생전에 닭은 지네를 콕콕 쪼아 먹고 닭이 죽으면 닭뼈를 지네들이 좋아해 진액을 빨아먹는다고 서로 천적관계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몸도 마음도 멀고 외로웠고 업무 또한 수월한 게 하나도 없었지만 제일 힘이 많이 되어 준 사람들은 역시 발령동기였다.  남 셋, 여 셋 진도로 한 날 발령이 난 우리들은 난생처음 집에서 멀리 떨어진 외로움과 첫 직장이라 느낄 수밖에 없는 업무의 막막함을 말하지 않아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었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 주는 존재였다. 올해로 19년 차인 우리 여섯 명은 아직도 매해 동기 모임을 이어 고 있는데 이제는 배우자와 아이들까지 스무 명에 가까운 인원이 함께 모인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어느 순간 토요일에 근무하는 주는 집에 왔다 갔다 하는 시간과 새벽 출근에 잠을 설치는 체력고갈이 너무 아까워 주말 내내 진도에 있는 주가 늘어났다. 그러다 근무하던 내 자리의 티오가 바뀌면서 교육청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교육행정직의 장점은 유, 초, 중, 고등학교를 비롯해서 도서관 등의 직속기관, 지역교육지원청, 시도교육청을 모두 근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중 학교근무는 확실히 업무의 깊이보다는 가짓수가 많기에 멀티가 가능해야 적응하기 수월할 듯한데 초임에 학교 발령은 확실히 쉽지가 않다. 낮은 월급에도 워라벨이 유지되는 것을 최고 장점으로 알고 시험을 친 합격생 중 초창기에 못 버티고 그만두는 비중도 높은 직렬이라고 한다.


 학교 다닐 때 서무(행정) 실을 찾을 일은 수학여행비나 우유비를 내려고 가 본적이 다라서 행정실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막연히 자기 업무만 잘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육행정직은 학교예산을 수립하고, 공사를 위한 계약을 하고 추경을 진행하고, 교육에 필요한 물품을 사고 집행을 하고, 감사를 받는 등의 행정 일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다. 물론 본연의 행정 일은 눈을 감고 매일 진행하는 느낌으로 밥 먹듯이 숨 쉬듯이 시행하고 있다. 그 일에 추가로 더 잡다한 일들이 많았다. 늘 눈과 귀를 열고 학교시설에 대한 부분은 모든 행정실 직원이 내 일처럼 처리해야 한다. 막상 초임 때는 전화받고 교사 분들의 요구사항만 처리하다 정작 내 업무는 야근을 해서 처리를 해야 할 만큼 멀티플레이어가 아니면 학교 업무는 종류가 너무 많아 처리가 힘들었다.  공사를 할 때면 계약뿐 아니라 실제  공사기간 내내 감독까지 해야 해서 건축직이 되어야 하고, 인터넷, 전자칠판, 교실 TV, 전화 등이 고장 나면 교육에 지장이 없게끔 가장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 그리고 강제로 소방안전관리자가 되어야 하고, 전기, 수도, 가스도 이상이 생기면 빨리 고쳐줘야 한다. 행정직으로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시설업무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에 시설관리직인데 이 정도면 취업을 잘못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각종 안전관리자 관련 교육을 받고 급여와 보안과 민원 업무도 담당을 해야 한다.


 어느 직장이고 편하고 쉬울 수야 없겠지만 십수 년 차 업무를 하면서 노하우도 쌓이고 멀티가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가 되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직업에 대한 만족도와 감사함이 조금은 늘어갔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학부모의 마음으로 늘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근무하게 된 듯하다.


 학교에서의 행정실의 업무는 적시에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행정 업무를 하면서 학교 교육이 이루는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히 모르는 분들은 방학 때 학생도 교사도 없는데 왜 근무하냐, 방학인데 쉬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하신다.  "방학에도 쉬고 좋겠어요, 부러워요! "라는 말을 듣고 학교에 근무한다고 하면 방학에 출근하지 않는다고 생각부터 하는 사람이 많다. 학생이 방학이니 할 일이 없어 보여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요즘은 방과 후 수업을 방학에도 하기에 오전엔 실제 학생들이 많이 등교한다. 사실 방학은 노후화된 학교 시설공사를 진행하고 그린스마트나, 공간혁신 사업, 석면 해체공사 등으로 두려울 정도로 일이 몰리는 시기이기다. 실제 공사가 많은 방학은 그것만 신경 쓰기에도 너무 바빠 쉴 틈이 없다. 특히 겨울 방학은 한 학년도를 마무리하는 정리 추경에 다음 연도 본예산 수립, 운영위원회, 각종 목적성 경비 정산까지 정신없이 방학이 지나간다. 적은 인원으로 정해진 양의 업무를 해 내야만 하기에 슈퍼능력자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작은 학교에도 업무의 종류나 해야 할 일들의 개수는 비슷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과 자랑스러움을 가지고 일하게 되기까지 실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비교는 독이 될 뿐임을 일찍 인지했다고나 할까, 참으로 많은 직종이 학교에서는 근무하기 때문이다.


 첫 발령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후배들에게 업무를 알려주는 연차의 선배의 자리에서 내가 겪었던 초임시절의 혼란을 후배들은 조금이라도 덜 겪게 해주고 싶고 나 역시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고 잘 쓰이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다. 신규 후배들이 과도한 업무에 낑낑대고 있을 때 자꾸 과거 초임시절 내 모습이 떠올랐다. 업무로 야근도 많이 해보고 부딪치며 깨닫고 전전긍긍하는 시간을 거쳐 해결해 냈던 업무들..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맞지만 그 시간 속의 나는 늘 애쓰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 순간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기 위한 그런 애씀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 둘을 낳고 아이 뒤에 숨어 겨우 숨만 쉬고 있는 것 같은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승진을 앞두고 정말 하루하루가 길다고 느낄 만큼 지친 적도 많다. 올해 12월이 되면 만 19년 차인데 아직 7급인 나는 마음을 비우고 비우며 오늘의 할 일을 해나가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잊고 살고 있다. 그러다 인사철이 되면 사실 주위에서 걱정과 염려로 한 마디씩 할 때마다 잔잔한 호수에 심한 물결이 일 듯 마음이 요동치면서 한없이 작아지고 지친다. 일명 "똥차"라서 나 혼자 느끼는 거겠지만 자기의 승진보다 내 승진을 더 염원했다는 후배의 말에 괜히 미안해졌다. 한 마디씩 던지는 위로의 말 앞에서 내 노력과 수고가 너무도 작아지는 것 같아 자꾸만 힘이 빠진다. 언젠가는 할 승진이라 생각했는데 회사원이 가진 몇 안 되는 즐거움이 승진 아니겠는가.


 내가 나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게 승진이 직장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해주는 즐거움이 뭘까를 오래 고민했다. 남편은 매일 야근에 계속되는 독박육아에 지칠 즈음 도교육청에 근무하는 동기는 이미 승진을 하는 상황에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사내 강사에 도전했다. 끊임없이 업무의 정보에 깨어 있어야 하고  업무 중에 많은 질문도 처리해줘야 하지만 그 또한 즐거움으로 여기고  나를 발전시키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교육행정직의 업무에 가치 부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일의 전문성, 효율성이 달라진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늘 깨어있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나를 퇴직 즈음의 나는 어떻게 되돌아볼까?

내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한 눈 팔지 않았음에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한 획까지는 아니어도 점이라도 찍었다고 잘 살아왔다고 회상할 수 있을까?

좌충우돌 부딪치고 깨지면서도 늘 배운다는 자세로 바쁘고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 주길.. 그러면서도 지쳐 쓰러지지 않기를..


그런 나는 나라서 자랑스러울 수 있게 힘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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