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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백양 Feb 14. 2024

어디서 어딘가로 갈 때는 늘 뒤편을 볼 것



 내가 살았던 섬은 배 타고 2시간은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봄이면 멸치 말리는 냄새로 온 천지에 비린내가 들끓었고, 학교로 이어진 해안가 길을 따라 그물이며 부표 따위가 포말과 몸을 뒤섞곤 했다.


 나는 그 섬이 좋았다. 섬은 작고 안전했으며, 이따금 바람 때문에 기와가 떨어져 머리를 깨트렸지만, 깨진 머리를 보듬어주는 손들이 사방에 놓여 있었다. 섬에서 태어난 걸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섬을 나선 후로 어디서도 그 검붉은 손등과 갈라진 손금이 그득한, 그러나 무척 따뜻했던 손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섬 바깥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 또한 여기서 손을 먼저 내민 적 없으므로.

 초등학교 1학년 때 리코더를 잘 못 불어서 학교에 계속 남아 있었을 때가 있었다. 선생은 내 손가락을 리코더 아랫부분으로 두어 번 두드린 다음, 최선을 다해 구멍을 막으라고 했다. 나는 무척 작아서 손을 아무리 펼쳐도 리코더의 마지막 구멍까지 손이 닿질 않았다. 선생은 결국 내게 학교에 남아 연습하라고 했다. 계속 못해내면 맞는다고 겁을 주기도 했다. 나는 눈물이 나왔고, 그날 나는 밤이 될 때까지 학교에 남아, 포도나무 등걸 아래에서 리코더를 불었다. 어차피 섬이었으므로 따로 놀 곳이 없었던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나를 힐끔거렸지만, 그들 또한 노을이 만선을 이루어 섬으로 들이칠 때쯤 집으로 사라졌다. 서러웠다.

 가장 서러운 건 선생의 태도였다. 이 작은 섬의 작은 관계 속에서 유난히 작았던 나를 왜 그리 모질게 대했을까. 우리 집이 가난해서 선생에게 촌지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어린 나이에도 학교에서 근무하던 선생들의 태도가 옳지 못하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수업이 시작할 시간에도 그들에게선 술 냄새가 풍겼고, 수업이 끝나면 곧장 마을 회관으로 달려가 술을 퍼 마시는. 선생들에게 마을 사람들은 유독 약했다. 일이백 킬로가 넘는 그물도 금방 끌어올리는 양반들이 선생의 술주정 앞에서는 그저 네, 네, 만 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후로도 계속 리코더 때문에 학교에 남아야 했다. 편이 되어 줄 사람들도 없었거니와, 내 부모 또한 마을 사람들과 별 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연습해도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사실, 내게 소질이 없는 것과 별도로 나 또한 리코더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은 탓이었겠지. 어떤 날은 선생이 내 뺨을 때렸다. “못 된 자식! 어른을 이겨 먹으려고!” 나는 한 번도 그를 이길 생각이 없었는데, 내 두 배는 될 그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아픈 볼 위에 눈물을 얹은 채로 나는 내달렸다. 어디든 상관없었다. 학교만 아니면 어떻게든 괜찮아질 거였으니까.
 
 한참을 달리다가 섬 왼편의 소로(小路)에 접어들었다. 평소에는 길 끝의 절벽 때문에 어른들이 못 다니게 하는 곳이었는데, 그날따라 그냥 걸어가 보고 싶었다. 걷는 내내 선생의 매몰찬 태도와 내 짧고 뭉툭한 손가락에 대해서 생각했다. 손가락이 조금 더 길고 얇았다면 얻어맞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나는 앞으로 어른이 되어서도 리코더를 불어야 하는 걸까. 육지는 리코더가 중요한 세계인 걸까. 그렇다면 나는 육지로 가고 싶지 않은데. 발에 차인 돌이 절벽 가장자리를 벗어나 멋진 잠수를 해내기 전까지 생각은 좀처럼 멈추질 않았다. 물소리가 난 직후,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그것은 동백군락이었다. 마침 노을이 지는 중이었고, 바닷물에 반사된 햇볕이 이지러진 꽃잎과 뒤섞였던 것이리라. 그러나 그때의 나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키보다 작은 나무에 붉은 꽃봉오리들이 수북했다. 주변을 오가던 풀벌레들이 노란 꽁무니를 이 봉오리에서 저 봉오리로 옮겨댔고, 노을이 번지고 있던 바다에서 한 움큼씩 바람이 흩뿌려질 때마다 붉게 달아올랐던 내 볼과 꽃이 동시에 흔들렸다. 리코더며 선생에 대한 생각은 어느새 발 아래로 내던져졌다. 나는 사방의 덤불을 만져보고, 또 꽃을 따서 코에 갖다 대기도 했다. 노을이 짙어질수록 꽃들은 더욱 화려한 빛을 쏟아냈다. 빛이 꽃술이 있는 곳으로 스미는 걸 보면서 나는 오늘의 발견에 이미 대가를 치렀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뺨을 맞았구나. 이곳에 오기 위해. 이 장면을 영원히 지니기 위해서.
 
 이후로도 나는 리코더를 잘 못 불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남으라는 말을 들어도 더는 울지 않았다. 그냥 가방을 싸고 나와서 집에 가 버렸다. 더 좋은 걸 가졌으므로 악기쯤은 못 다뤄도 괜찮았다. 선생은 이후로도 몇 번 더 내 뺨을 때렸다. 몇 번 더 마을회관에서 술을 마셨고, 이듬해 봄이 되기 전에 섬을 나서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정도였다. 선생은.
 
 섬까지 여객선이 다닌다는 말을 들은 것도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지금은 여객선이 다닐지 알 수 없다. 이제는 거의 사람이 살지 않을 그 섬이 종종 떠오르는 것은 불쑥 치미는 뺨의 얼얼함 때문일까. 아니면 여전히 선연한 빛을 머금고 있을 그날의 그 동백군락이 날 기다릴 거란 생각 때문일까. 짬이 나면 한 번 들러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짬이 좀처럼 나질 않았다. 어느새 가족들 또한 그 섬에 대해서 말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섬이 그 황금색 물결 속으로 가라앉은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섬은 그대로였지만, 나는 그대로가 아니었다.

 섬은 이제 예전보다 훨씬 자주 생각난다. 한 번쯤 가서 리코더를 불자. 뺨을 얻어맞고 내달리자. 언젠가는 해야 하는, 하고 싶은 일이 우르르 비어져 나와서 나는 몇 번 분 리코더처럼 미지근한 물이 온몸에 배곤 한다. 섬을 벗어나 내가 무엇이 되었는지 생각하면 물은 순식간에 불어난다. 무엇이 되려는 건지 알 수 없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구나. 그러나 물의 뿌리에 바다가 있듯, 내 뿌리에 섬이 있다는 건 분명하다. 어린 시절의 손 또한 어디서부터 뻗어왔는지 생각하면 섬은 과연 그대로였다. 하지만 나는 왜 그대로가 아닐까. 동백꽃은 이제 아득히 멀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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