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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 하는 즐거움

by korean in the usa Mar 12. 2025


 손뜨개한 옷을 가만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예전엔 실이 폭닥하다느니 색깔이 어땠다느니 하고, 입으면 나한테 어울릴까 하는 것이 제일 먼저였다.

그런데 이제는 실이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 어떤 모양이 이렇게 예쁜 옷이 되었는지 가늠하고, 그 안에 어떤 정성이 들어가 있는지 가만히 공감해보고 싶어진다. 나도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뜨개질이 취미가 되고 나서부터 마음이 그렇게 바뀌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학교에서 대바늘과 아크릴실을 가지고 겉뜨기랑 안뜨기 하는 걸 가르쳐주기도 했다. 나는 당시에 전혀 이해를 못 했었다. 한 반에 50명이 넘던 시절이라 선생님께서 한 명 한 명 잡고 이해시켜 주긴 아마 어려우셨으리라. 그래도 대바늘이랑 실을 가지고 노는 촉감이 좋아서 그저 할 줄도 모르면서 뜨개질 비슷한 흉내를 내며 괜히 의자에 앉아 손장난을 치기도 했었다. 엄마랑 아빠의 오래 된 장농엔 그때 샀던 바늘과 실이 아직도 퀘퀘하게 들어 앉아 있을 것이다. 어릴 땐 장갑이나 스웨터 같은 걸 보면 꼭 마술 같아 보였다.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늘 궁금했고 뜨개질은 배우고 싶었던 것 중 하나였다.

일단 뜨개질하는 모습이 멋져 보이잖아. 나한텐 그런 게 중요했다.



 내가 제일 고대하는 순간은 어디든 들어갔을 때 뜨개질을 하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운을 심심찮게 만나기도 한다. 익숙한 손놀림을 발견하는 순간에 내색은 못해도 마음 속으로는 그렇게 친근할 수가 없다. 카페 같은 곳에서 손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들을 보며 나도 가방 속에 챙겨 온 뜨개거리를 꺼내 자랑스레 뜨기 시작한다. 대부분 서로 말을 걸진 않아도 서로가 서로의 파수꾼인 마냥 든든하다. 뜨개질을 취미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뜨개질을 좋아하는 이유를 서로가 공감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뜨개질을 해서 목도리니 장갑이니 스웨터니 하는 것이 생겨서 좋은 것이 아니라, 실을 내 손으로 고르고 무엇을 만들 것인가 고심하는 순간들과 실에 맞는 바늘을 잡고 시작하여 꾸준히 뜨는 그 순간들이 더 큰 즐거움을 준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다는 것은 고맙고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늘과 실이 서로 스쳐 지나가서 작은 매듭을 만들고 그 매듭이 결국 아름다운 무늬가 된다. 바늘과 실을 잇느라 내 손이 분주해질 때면 어수선한 잡념이 모두 사라진다. 아늑하고 포근한 공간만이 남는다. 아마도 그런 평화를 느낀 사람들은 뜨개질을 내내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그 거 들여다보고 있음 눈 아프지 않아? 똑같은 거 계속하면 지겹지 않아?"

뜨개질하고 있으면 그렇게 툭툭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 말이 영 틀린 건 아니다. 뜨개질하는 순간의 즐거움도 있지만 잘 풀리지 않거나 실수가 계속 나올 때는 지겨워서 한쪽으로 치워버리기도 하고 눈앞이 침침해져서 아차 싶어 내려놓기도 한다. 손으로 하는 것이 으레 속도가 느리고 기계가 하는 것만큼 정확하지도 않아서 고생스럽게 뜬 편물의 코가 내 마음에 안 들어서 그 자리에서 다 풀어버린 적도 참 많다. 나만 이렇게 시소 타듯 널뛰는 줄 알았는데 뜨개질할 때 무언가 마음에 안 들거나 잘못되어서 푸는 경우가 허다해서 '푸르시오'라고 이름 붙여서 따로 부르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니 이젠 그것도 그러려니, 하게 된다. 뜨개질은 손으로 하는 거라 완벽할 필요가 없다.



 워낙에 뭐든 금방 가능한 세상이다. 릴스니 뭐니 하는 것들은 보고 있으면 30초도 길게 느껴질 만큼 훽훽 지나가고 자극적인 것, 그다음 기다리고 있는 더 자극적인 것에 점점 익숙해져서 하루의 끝엔 공허함만이 무겁게 짓누를 때가 많다. 거기다 AI로 만든 이미지니 뭐니 이런 것까지 보태기 시작하면 피곤하기까지 하다. 그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고민일 것이다. 그만큼 편해진 세상에서 누리는 것도 많지만 그만큼 자신을 더 살펴주고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잘된 일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너무 빨라지기만 하는 것 같아 나는 되도록 아날로그적인 면모를 지키고 싶어진다. 스마트폰으로 온갖 것을 다 하다가도 뜨개거리를 손에 잡으면 그때부터 시계가 크게 숨 한 번 내쉬고 천천히 지나가는 느낌이랄까, 그런 기분이 든다.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 휴대폰이 있었어도 전화나 문자로만 연락하던 시절에 마음에 드는 책을 읽으면 시간이 영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고개를 들면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 있었던 그 충만한 기분은 아날로그적인 것들만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들. 내 손으로 하는 것들이 그럴 것이다. 뜨개질이 나에겐 그런 것들 중 하나다. 즐겁다고 느끼게 해 준다.



 한참 모르는 뜨개기법을 익히려고 여러 영상들을 참고할 때 한 뜨개작가님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봤다.

뜨개질이 코딩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무릎을 쳤다. 내가 어렴풋이 이해하던 뜨개질의 근본적인 원리를 단 번에 설명해 주는 명쾌한 정리였기 때문이다. 인류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해왔을 뿐만 아니라 컴퓨터는커녕 전기도 필요 없는 아날로그식 코딩이지 않은가. 취향대로 원하는 대로 패턴과 변수를 조절하며 끝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지만 무언가를 완성하는 기쁨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더 많은 동지를 만들기 위해 뜨개질에 대해 조금만 설명해드리고 싶다.

뜨개질을 막연히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으실 것이란 걸 알고 있다. 또는 귀찮게 그런 수고를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른다. 실과 손 사이를 유영하듯 왔다 갔다 하는 바늘을 보고 있자면 이해의 영역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전에는 뜨개질이 시작하기 조금 어려운 취미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요샌 배울 수 있는 수단이 많아서 시작하기 훨씬 간편해졌고 나도 그 덕을 봤다. 기본적인 기법들도 초등학교 때 배웠을 만큼 익히기 간단하고, 보통은 그런 기초적인 기법들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운동화 끈을 묶는 것과 비슷하다. 모를 땐 영영 해낼 수 없을 것 같지만 알고 나면 왜 내가 이걸 몰랐나 싶은 후련함이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에선 초보자들을 위해서 비교적 간편하고 짧게 끝나는 도안들도 많고 따로 고민할 필요 없이 그대로 따라 하긴 하면 되는 키트가 많아서 넉넉하게 시간을 들이면 누구든 해낼 수 있을 정도다. 



뜨개 하는 즐거움을 조금 더 많은 분들이 누리시길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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