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 주말에 아무 일정도 없이 뒹굴거릴 수 있다니. 마음만 바쁜 채 새해를 보내기에 급급했다. 의욕만 앞선 2주. 그러자 몸이 내게 서서히 알림을 울려왔다. 몸살기가 올라오고 소화도 되지 않고 꿈도 많이 꾼 수일간의 불면과 컨디션 난조. 주말의 무계획은 어쩌면 꼭 필요했을 지도? 새해랍시고 포부를 가장한 망상에 가까운 목표들은 세워놓고 행동보다 생각만 많다 보니 역효과로 새벽까지 잠은 오지 않고 몸은 피곤하고 늘어져서 도저히 안 되겠단 결론을 내리고 늘어지게 늦잠을 자자 싶어 핸드폰도 끄고 잠이 들었었다. 아무 방해도 일정도 없이 완벽한 숙면! 그런데 출근하는 시간에 가깝게 눈이 떠지고 만다. 마치 ‘오늘이 월요일이야.’ 이렇게 속삭이는 것처럼 뇌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끔찍한 평일의 뇌 같으니… 주말에다가 아직 이른 아침이라고! 더 자고 싶다고… 그렇게 투정을 해 봐도 말을 듣지 않는 건, 바로 나 자신. 어쩔 수가 없다. 실패. 왜 따뜻하고 폭신하고 넓은 이 침대에서 나는 편히 잠을 잘 수 없는 것일까. 아무 일정도 없는, 그저 미뤄두었던 책들을 읽거나 보고 싶어서 위시리스트에 저장해 놓았던 영화들이나 볼 것이지.. 왜 이렇게 기력 없이 일어나 있는 건데? 따져봐야 소용없는 가끔은 도저히 알 수 없는 나란 사람. 배도 고프지 않다. 아침밥은 원래 먹지 않아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한 내 오전 일과에 아침밥은 없다. 남들은 미라클 모닝을 한다는데.. 난 도저히 할 수가 없다. 나처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뭔가를 한다는 것이 굉장히 이상한 사람들도 지구상에 꽤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오히려 모든 업무와 일정을 마친 밤 시간에 생각도 풍부해지고 모든 것이 활성화되는 느낌이다. 모든 것을 끝낸 후의 후련하고 느긋함 끝에 행복감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에너지의 차오름을 느낀다. 그 고요한 시간이 아침과 뭐가 다른가. 남들이 잠이 들기 시작하는 그 시간에 나는 만개한 꽃처럼 활짝 에너지를 피우고 마치 12시가 지나 막 시작된 하루를 누구보다 더 빨리 맞이하고 해치우고 낮잠을 자듯이 새벽잠을 자고 오후의 일과를 시작하곤 한다. 나의 아침은 자정 12시부터 3, 4시까지랄까. 뭐 이론적으로 새 날이 온 건-새 날이 밝은 건 아니지만!- 자정 00:00부터 아닌가. 이상 미라클 모닝이 태생적으로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변.
이런 사람이 이렇게 이른 아침, 심지어 토요일에 일어나 있다. 무슨 일인가 싶다. 일단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방을 둘러보고 거슬리는 어지러움의 원흉들은 조금씩 치우고 비워낸다. 책상의 먼지를 닦고 식탁의 미처 보지 못한 음식이 튄 자국들을 닦고 설거지를 하고 점심에 뭘 먹을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오늘 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이 뭐가 있을지 뇌에게 물어본다. 인공지능이 아닌 내 뇌는 아주 느리고 서툰 대답들을 출력해 낸다. 빨래. 안 돼, 아직 이른 시간이다. 독서. 아니, 그런 집중이 필요한 행위는 뭐 좀 먹고 해야겠어. 준비가 필요해. 청소기. 음.. 아까 이른 시간이라고 말했는데? 쇼핑. 오… 그럴까? 가장 시간이 잘 가는 마법 같은 달콤한 답이 나왔다. 하지만 신년 계획으로 진짜 제대로 된 절약을 해 보자는 항목을 꽤나 큰 비중으로 넣었고 아직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마음은 영 찜찜했다. 하지만 딱히 당장 할 게 생각이 안나다 보니 치팅데이의 느낌으로 내가 자주 가는 쇼핑 앱을 켜고 되뇐다. 보기만.. 음.. 보고 그냥... 장바구니에 넣기만. 차가운 실소가 났다. 나의 나약한 의지에게. 그렇게 오전을 날렸다.
몸이 영 좋지 않다고 스스로 걱정을 하며 간단한 식사 후 다시 누운 침대. 결국 나는 그냥 이른 점심만 먹은, 아무것도 안 한 사람보다 더 나쁜 쇼핑 중독자의 상태로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내 침대 바로 맞은편엔 통창문이 있다. 이 작은 집의 장점 중에 가장 큰 장점은 도시에 살지만 창문 너머로는 작은 공원을 품은 낮은 산이 보인다는 것. 마치 내가 아주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시골에 있는 느낌을 주어서 나의 메마른 일상에 꽤나 지속적으로 위안을 주는 요소이다. 오늘 눈에 들어온 동산의 나무들은 겨울에 걸맞게 깡마른 나뭇가지들만 하늘로 바짝 세우고 멈춰있다. 삭막하다. 마치 죽음, 멈춤을 형상화한 것 같다…이런 생각을 하며 계속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제 오전을 벗어나서 그런 걸까. 아니면 하루 종일 흐린 날씨라 저녁 같은 기분이 들어 나의 뇌가 이제는 깨어날 시간이라고 착각을 한 걸까. 갑자기 내가 뱉은 나무에 대한 생각에 내 스스로 반론을 펴기 시작했다.
정말 저 나무들은 보고 느낀 게 단순하게 그것뿐이야? 이 봐. 그 나무들은 지금 온 힘을 다해 살아내고 있는 중이라고. 온 힘을 다해 뿌리에서 차가운 땅에서 얼마 없는 양분과 수분을 빨아들이며 봄을 고대하며 숨 쉬고 있는 거라고. 모두에겐 힘든 시기가 오지. 그렇다고 삶이 무너지고 끝장나는 건 아닌데 많은 사람들은 마치 단언하듯 쉽게 누군가의 소식에 잔인한 선고 같은 걸 내려. 그런데 말이야. 그건 그저 남들이 생각하는 거야. 저 사람은 인생에서 큰일을 겪었으니 이제 회생되기 힘들겠다. 좋은 시절 다 갔구나. 뿌리가 살아 있다면-인간에게는 그게 아마도 의지와 자기 신뢰일까- 우리는 살아남은 것이다. 아무것도 없어도 시작할 의지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또다시 시작해 보면 우리는 다시 봄이 와서 싹을 틔우듯 살아나는 것이다. 무성한 여름의 잎은 아직 멀었을지라도. 창 밖의 나무들은 죽은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홀로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겨울을 ‘준비의 시간’으로 보내고 있는 중이다. 어떤 계절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격렬하게. 죽은 숲처럼 보이지만 그건 정말 말 그대로 ‘그렇게 보이는 것’이란 걸 알고 있다. 봄이 오면 아름다운 연녹색 싹들을 뽐내며 우리를 설레게 한다는 것을. 매년 그래 왔고 앞으로도 산이 없어지지 않은 한 오랫동안 그 과정을 지치고 않고 반복할 것이다. 지금의 나보다 더 멋진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겨울나무의 순간이다. 내일의 생각지 못한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다해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처럼 사고하지 않는다고 죽어 있는 것도 아니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고 삭막하지 않음을 나는 몇 년째 보아오던 그 숲의 그 나무들의 절규하듯 뻗은 가지들의 끝을 보고 비로소 올바른 시각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그 어떤 책의 강렬한 한 줄보다 생각의 전환을 가져온 순간이었다. 알고 있었겠지만 그저 자연의 위대함 정도로 다큐적인 감동으로 느꼈고 내게 투영할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몸을 틀어 꼿꼿하게 앉으면서도 계속 나무들을 응시하며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천천히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결심이 섰다. 망설임 없이 곧장 책상으로 가 앉아 노트북을 켜고 글을 써 나가기 시작했다. 내게 그들이 준 메시지를 그냥 흘려보낼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나무가 될 필요는 없다. 나무들에게도 나에게도 그런 건 삶의 이유가 아니다. 온전히 살아남아 일련의 과정을 거쳐 성장하는 것. 그러다 보면 어떤 날, 어떤 순간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나무로 평가되는 날이 온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나의 무료한 주말은 한겨울 따스한 하루처럼 바쁜 마음속 놓치고 있던 ‘나의 이유’에 대해 깨닫는 기회를 준 듯했다. 오늘 본 창 밖의 깡마른 나무들은 거실 액자 속 소중한 사진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