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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논제

나는 행복한 요양보호사입니다

by 황인갑

『나는 행복한 요양보호사입니다』


2025.10.3 이양순 꿈과 희망, 2024


자유 논제


1. “내 가족, 내 이웃의 자화상을 담다” 나는 행복한 요양보호사입니다를 읽은 소감을 말해 보세요.

치매로 모든 것을 잃고 과거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저마다 가슴속에 줄무늬처럼 층층이 새겨진 남모르는 과거의 고통과 아픔을 달래는 사람들, 가족과의 생이별의 아픔을 소리 없이 달래는 사람들,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가눌 수 없는 병약한 사람들, 재활의지를 불태우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길 꿈꾸는 환자들이 요양보호사의 케어를 받으며 오늘을 살아간다.(프롤로그)



2. 책 속에 인상 깊은 문장이나 내용을 소개해 주세요.


3. 요양원과 요양보호사는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시간의 바다에 떠다니는 그들의 지워진 과거와 추억은 바람 따라 흔들리는 일엽편주나 다름없다. 지금 어느 공간에 누구와 함께 있는지, 가족들의 얼굴까지도 몰라보는 그들과 삶을 함께 하는 요양보호사!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공단에서 비용을 지원하지만 생의 마지막 끝에선 그들에게 제공된 복지 혜택을 실행하는 곳은 요양원이고 요양보호사는 요양대상자들과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사람들이다. 비바람 부는 날 그들을 가려주는 우산 역할을 한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우산도 낡아지겠지만 그래도 찢어지지 않는 튼튼한 우산이 될 것이다.(p.18)



4. 요양원에서 치매에 걸린 노인의 상태가 여러 증상으로 나타나며 심각하다. 치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치매에 걸린 노인들의 특징은 10분 전의 일도 포맷된 컴퓨터처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식사하고도 왜 밥 안 나오느냐며 투정을 부리는 건 예삿일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옛날 일은 거의 다 기억해 낸다.(p.20)



5. 젊어서 위안부로 끌려가 치욕스러운 삶을 살다가 온 지선할머니의 삶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나요?

일본식민통치 시대를 살아온 이 땅의 어른들이 겪은 나라 잃은 설움은 어느 개인이라고 비켜가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신의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원치 않은 운명의 쓰나미에 휩쓸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게 됐다. 젊은 청춘을 이국땅에서 휘어지고 굴곡진 형벌의 세월 속에 갇혀 있었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영역에서 벗어나 살아지는 나날이었다. 모진 성적 학대와 구타 속에서 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사는 삶이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어서 죽으려고 해도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아. 일본 패망 직전 미국폭격기가 비행하면 나도 모르게 죽지 않으려고 몸을 숨겼어. 그때 삶에 대한 본능이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지. 이제 남은 것은 빈 껍데기 같은 병든 육신뿐인데 지워버리고 싶은 치욕스러운 과거가 내 발목을 잡고 있어서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내가 살아온 과거는 지옥의 세월이었어.”(p.22)



6. 요양보호사와 환자와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돈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 기쁜 마음으로 일한다면 환자에게 정성과 사랑이 실리겠지만 사무적으로 하는 일이라면 환자의 중심에 돈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불편할 수도 있다. 환자와 요양보호사는 돈으로만 계산된 자리는 아니다. 돈이 인간의 존엄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 요양보호사가 비록 자기들의 수준에 못 미치더라도 한 집에서 생활하는 이상 서로 마음의 상처를 입힐 필요까지는 없어야 한다. 돈의 가치로 사람을 대한다면 요양사도 환자를 돈의 가치로만 판단하고 돌볼 것이다. 인정은 메마르고 인성은 실종되고 사람 사는 세상이 돈의 가치로 매겨지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p.35)



7. 요양원은 세상의 축소판 같다. 서로 싸우고 높은 고위직도 똑같이 취급받는다는 말에 무슨 느낌이 드나요?

요양원은 그들 스스로 선택한 곳이 아니다. 다만 현실과 과거를 구분하지 못하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 함께 사는 공동체에서 잉여 부분의 삶을 이어가는 요양원이라는 시설에서 벌어진 일들의 한 단면이다. 그들은 별나라에서 온 것도 아니고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수용소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가장 원초적인 생각과 꾸밈없는 모습으로 거침없이 살아간다. 누구를 속이지도 않고 포장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p.114)



8. 요양원에 가기를 싫어하는 노인들이 있다. 그리고 집을 기다린다. 요양원은 가족으로부터 버려진 곳인가?

집을 두고 요양원에 와 있는 대상자들은 집으로 갈 날을 기다린다. 치매로 판단을 못 해도 집으로 돌아간다는 회귀본능의 신념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과거 히브리민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서 조국 이스라엘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것처럼 그들은 집으로 돌아갈 날을 애타게 기다리는 슬픈 현실이 오늘날 요양원에서 벌어지고 있다. 비단 바벨론에서 포로로 잡혀있던 히브리민족만 이산의 아픔을 겪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새로운 풍속도가 생겨나고 있다. 요양원에서 가족의 품을 그리워하며 집으로 갈 날만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가족과 집을 그리워하는 그들이 영원한 안식처를 찾을 때까지는 고향과 집을 그리워하는 일상이 반복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들은 영원한 본향을 기다리는 새로운 공동체 난민이다. 경호 할아버지는 메모지 위에 비뚤거리는 글씨로 옛집 주소를 써 주며 그 주소로 자신을 데려다 달라며 내 손을 잡는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 요양원에서 본 코리안 디아스포라이 현실이다.(p.197)


9. 요양원에 입원한 환자의 부부사랑을 보면서 부부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서로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부부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부부란 무엇으로 사는가. 돈? 그들에게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사랑과 신뢰였다. 돈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들의 사랑은 부부간의 사랑이 아닌 연인 간의 사랑처럼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연인을 떠나보낸 서글픈 마음을 노래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그녀를 위해 부르는 노래 같았다.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서해안의 낙조처럼 사랑의 여운을 남기고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그녀는 그들이 생전에 주고받은 아름다운 사랑은 에로스가 아닌 아가페 사랑이었다.(p.283)


선택 논제


1. 요양보호사는 대상자와의 관계 속에 갑질도 당하고 여러 가지 애환이 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나올 때 내가 돌보던 어르신들에게 일일이 손을 잡고 인사하며 작별인사를 나눴다. 마치 가족을 떠나보낸 것처럼 언제 다시 볼 수 있느냐며 손을 붙잡고 눈물을 주르르 흘린 어르신들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그들에게 이별이 상처를 준 것 같아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떠오른다.(p.50)


분노한다

이해한다


2. 죽음이라는 것을 고통에서 벗어난 자유라고 생각하는 의견에 동의하나요?


삶의 끝자락에서 그토록 고달픈 생이 끈을 쥐고 있던 옥자 할머니도 육신을 벗고 본향을 행했다. 아들의 두 어깨 위에 놓인 무거운 짐을 덜어주기 위해선지 구원이 되지 못한 세상이 미련을 뒤로하고 드디어 세상 짐을 벗었다.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당신의 영원한 나라를 향해 먼 길을 편안히 떠난 할머니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p.157)


3.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가 정신연령이 아이처럼 되었다는 정신과 의사의 말에 대해 공감하나요?

정신과 의사는 부친이 정상적인 사고가 아니라 아이 같은 상태에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성욕만 남아 있기 때문에 환자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으니 크게 상심하지 말라고 했다. 그제야 냉정을 되찾고 환자인 아버지와 정상인 아버지의 사이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p.162)


여자는 그 후로 도덕적 관점에서 바라보던 아버지를 환자의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며느리에게 뽀뽀를 해달라고 조른 것도, 딸을 여자로 본 것도, 조카에게 안기고 싶어 한 것도 관심을 받고 싶은 사랑에 목마른 환자였다는 사실에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여자는 아버지가 아닌 환자와 동거 중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p.164)


공감한다

공감하지 않는다.


※ 토론하고 느낀 소감을 나누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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