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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Dec 28. 2021

화의 나비효과

내 속을 거쳐 나온, 생각과 말에도 간혹 이 것들이 곡해되지 않은 내 진실이었을까 하는 반증과

의심이 들 때가 있다.

하물며, 내가 아닌 타인일 적에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으면서 본심을 알아봐준다는게 가능할리가

있겠는가.


이런 이런 것들을 원해,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어라고 콕 집어 말해도

서로에게 가 닿는 표현의 수단과 방법이 달라, 불충분한 찜찜함은 해소되지 않을 터인데,

명확한 요구 없이 멋대로 기대하고, 실망하다 볼멘소리를 하는건 정말 꼴불견이었다.


도통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일생의 집중과 의미를 잃어가며 마른 잔가지 처럼 살아가고 있을적에,

활기를 꺾는 몇마디의 말로 , 나비효과처럼 퍼쳐간 화가 만인에게 뻗쳐 당혹스러운 날이었다.


엄마와 호두와 함께 충남 당진쪽으로 크리스마스 여행을 계획한 날. 당일 엄마가 몸이 좋지 않았다.

아프고 싶어 아픈 사람은 없고, 인력으로 좌지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엄마가 아픈것이 더 속상했다.


이미 준비를 모두 끝마친 호두에게, 미안하게 됐다고 상황을 전했고 집에서 엄마의 몸조리를 챙겨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병원에 데려가려고 했으나 싫다고 했고, 집에서 그냥 쉬고 싶다고 하셔, 잔기침을 할 적마다 속으로 어떡한담, 많이 아프신거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곁을 지켜주는것 외엔 할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방에서 나와 너는 엄마가 이렇게 아픈데 아무런 걱정도 안한다고 타박을 하는 것이다.

마침 설거지를 하고, 쌀을 앉혀 밥을 지으려고 하고 있는데 자신이 이렇게 아픈데 밥도 안해준다고 몸은 괜찮냐고 왜 물어봐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 어머니를 걱정하고 있습니다라고 실시간 라디오 방송처럼 고해바치는게 더 이상하지 않나?

병원에 데려가려던 나의 권유는 ?

밥을 만들려고 하는 나의 시도는 ?


갖가지 서운한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표현 낭만주의자 어머니의 관례에선 말에 울음기를 잔뜩 물고 글썽글썽하듯이 괜찮냐고 물었어야 성에 차셨던걸까 라는 빈정거림과 반항심이 차올라


" 적당히 좀 해 !! " 결국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상처가 될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사람마다 자기가 받고 싶은 위로와 감정 공감의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에, 알만한 상대의 기본 소양으로서는 자신의 심중을 읽지 못한다는 판단이 설때는, 아니 그런 판단을 떠나서라도 구체적으로 원하는 바를 말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다만, 그 자신도 제 마음을 헤아릴 여유나 기운이 없을땐, 입력 수치가 미비 했으니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받는다는건 욕심이지 않을까.


아픈 어머니의 투정에 날이 섰던 숨겨진 또다른 이유는, 나는 딸이니까 엄마의 건강을 최전방으로 아무렇게나 약속을 미루고 당겨도 아무 상관이 없지만 제 3자의 호두에게는 그래도, 상황이 이렇게 되서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일언의 표현의 없었다.


여름쯤에, 호두가 백신을 맞고 심하게 아파 엄마와의 약속을 못지키게 됐을 적에도

어른과의 약속은 가볍게 여기면 안되는건데 하면서 결국 부담을 줘, 어쨌든 아픈 사람을 이끌고 장소에 불러 낸 꼴을 만들었었다.


그땐, 나랑 다툰 문제도 있었지만 어쨌든 호두도 한발자국도 못 움직일만큼 아픈정도는 아니였기 때문에 엄마와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말았으면 해서, 내가 사정하다시피 끌고 갔고 그런 과정이 너무 속상하고 힘이 들었다.

하지만 반대로 엄마가 아팠을때 일방적으로 약속파기를 당한 호두가 존중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공평하지못한 처사라는 생각에 속이 또 상했다


엄마도 호두도 나로 연결된 소중한 사람들이지만 내 뒤로 숨어,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인사를 생략하는게, 나를 통해 전해달라는 말이 없다는게, 나는 서글펐고 그 둘이 슬프고 미웠다.


월요일 아침, 출근을 해서 고객 문의건을 수집하니 20-22건 정도의 평균적인 월요일 문의가 83건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상품이 많이 팔렸으니, 처리해야할 접수건수가 비례하는건 당연하다.

하지만, 회사내 " 잡부 "인 나의 포지션은 지칠때 한번씩 쉬어 간다는 연차를 쓸 타이밍을 찾기도 불가했고, 연차를 쓴다고 해도 일을 쉬었다 다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쌓여버리는 일일 고정업무가 왜 이 회사는 나만 예외가 없는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합리성과, 효율, 공정성을 가지고 일을 하고 싶은데 낡고 익숙한 것을 버리지 못하면서 트렌드는 따라가고 싶다며 어설프게 전산 몇개를 도입해서 그것도 해야하고 , 원래 하던것도 해야하는 이중 삼중고의 고통을 떠안고 산다.


발주 업무를 사이트를 정해 나눠서 했을때 내 발주서들에 품절이 걸려 있지 않은 문제, 그에 따른 후속처리가 매번 힘들고 짜증났었기 때문에 시스템 도입 후 다른 한명이 발주를 하게되면서 사그라들지 않은 동일 문제들을 좀 줄여주고 싶어서 MD들에게 업무 협조를 구했다.


사실 이것도, 내가 왜 오지랖을 부렸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동안 군말없이 품절걸고, 출고 불가한 주문건들을 처리했고 조용히 넘어갔으니까 지금 한명의 발주 담당자는 얼마만큼의 짜증이 쌓이는지 아직은 견딜만 했을텐데 말이다 ?

무능하고 게으른 MD에 대한 고발 ? 이것도 오지랖이다.


1차선에서 일을 잘 처리했으면 2차 3차까지 내려올 일이 없는데 1차선에 있는 인간들은 2차 3차를 믿고 할 마음이 없다.

그들을 움직이려 하는게 이 회사는 매번 오산이었고, 실망에 실망을 거듭함을 알았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개선점을 도출시켜 보려 했다는게 허망해졌다.


생각해보니까 그 발주 담당자도, 주어진 하루의 일 외에 별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파일 하나 바꾸지 않고 계속 사용하는걸 보면.


다른 사람이 두번 일하게 될거 같아 번거로움을 줄여주면, 모두 나의 일이 된다.

실적도, 고맙다는 평판도 못얻을 그런 자질구레 한 잡무 같은 것들만 한 짐 싸들고 살면서, 우습게도 남 걱정을 하며 열을 올렸다는게 화끈거렸다.


문득 아빠 생각이 났다.

우리 아빠는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늘 받고 살았으면서도, 사회생활에서, 또 사교활동에서 늘 인간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이직이 잦았고, 또 용케도 금방 다른 직장을 찾았다.

아빠는 기술직이었으니까 그렇다 치자, 만년 사무 보조 직군인 나는 이제 쉽게 이직을 생각할 수도 없고, 일머리는 커질만큼 커져 있어 누가 멍청인지, 한량인지 뻔히 보여 눈감고 다니기도 쉽지가 않다.


정갈한 언어를 쓰지못하는 아빠가 부끄러웠다.

욕과 술을 달고 살았고, 사장에게 그 새끼는 개새끼라고 저급하게 비방을 하기도 했다.

아빠의 비사교적인 사교성을 닮아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가슴의 분노는 아빠못지 않으면서, 나는 다행히 비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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