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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다 Aug 09. 2024

2. 진짜가 나타났다.


병원으로 간 나는 애써 화난 표정을 지우고(병원에 확 지르고 싶은 걸 꾹꾹 참아가며)

절뚝거리는 아내를 부축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다행히 아내는 코로나 증상도 없었고, 수술 부위에 별다른 염증도 생기지 않았다.


'다리에 생긴 조금 큰 혹을 말끔히 떼어냈다'는 사실만 남긴 채, 우린 일상으로 돌아왔고, 열흘쯤 지났을까?



회사에 있던 내 전화기가 아내 이름을 띄운 채 윙윙 대고 있다.


아이들 학교에서 애들 아프다고 빨리 데려가라고 연락받는 정도의 급한 일이 아니면 우리는 대체로 전화보다 카톡을 한다. 서로 일하는 환경에 대한 배려 차원이다. (회의 중 전화가 오면 마음이 불안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전화가 온다. 싸하다. 


"00 씨 통화돼요?"


"응. 지금 통화 괜찮아. 말해도 돼"


"놀라진 말고 들어요. 병원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나 그때 뗐던 혹 있잖아요. 양성이라던.. 병원에서 그 뗀 조직을 아산병원으로 검사 보냈었는데,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대요. 근데 그게 악성종양이라네요.

음... 그것도 젤 높은 그레이드의...


의사말론 본인도 많이 당혹스러운 상황이라고, 모양상으론 완전히 양성(혹)인 모양이었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올 줄 몰랐다고. 고위험 악성이라 빨리 큰 병원 가야 할 것 같아서 의사가 직접 큰 병원들 연락 취해서 긴급 전원을 요청했대. 지금 제일 빨리 진료 볼 수 있는 병원이 삼성서울병원이고, 그다음이 아산병원인데 하루라도 빠른 쪽으로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다음 주예요.."


내가 그 말을 듣고 놀랐는지 놀라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다.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해 헤맸던 것만 기억난다.


"악성이라면 암이라는 얘기야?"


"그런 거 같아요. 큰 병원 가서 다시 조직검사를 해봐야 하겠지만"


아내의 목소리는 이 순간도 담담하다.

차분한 목소리 때문인지 나도 큰 일 아닐 거라고, 진짜 별 일 아닐 거라고 일단은 나 자신을 달랜다.


"너무 걱정하지 마. 별 거 아닐 거야. 같이 병원 가보자."


전화를 끊고 나니 참았던 걱정이 밀려온다.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신문기사에서나 보던, 다른 세상의 얘기 같았던 ''이라는 단어가 불쑥 내 옆에 다가와 있다.


나는 전형적인 T형 인간이다. 뉴스에 나오는 불운한 사건, 사고에 대해 그다지 감정의 동요를 느끼지 않는다.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한 타인의 아픔에 대해 의식적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은 하지만, 가슴 깊은 슬픔은 잘 느끼지 못한다. 세상엔 예기치 못한 숱한 불행한 사고가 있고, 특정 사건들만 매스컴을 탄다. 그렇게 세상밖으로 알려진 불행에 대해 어떤 이는 자신의 슬픔을 격하게 표하고, 더한 어떤 이는 극도로 몰입한다. 

하지만 나는 사실 별 생각이 없다. 


왜?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니까. 나와 연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나는 때때로 슬픈 표정을 짓는다. 기계적으로 몹시 안타깝다는 말을 뱉는다. 


'왜 그리 냉혈한입니까? 어떻게 슬퍼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라고 따져 묻는 과격한 사람들로부터 시비에 걸리지 않기 위함이다.


이처럼 난 공감과 슬픔에 박한 인간이다. (혹시 진짜 냉혈한인가 라는 생각을 지금 잠깐 했다.)



회사 책상에 앉아 '암'에 대해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의학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요즘 못 고치는 암은 거의 없다.

게다가 아직 정확한 진단을 받지도 않았다.

괜찮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가슴 한 곳이 묵직하면서 울렁거린다. 



어쩌면 이게 슬픔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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