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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다 Aug 16. 2024

5. 걱정이 되겠지만 걱정하지 마

최대한 빨리 수술일정을 잡아주겠다는 교수의 말을 듣고, 우린 진료실을 나왔다.

이젠 암이 현실이 되었다는 인정과 함께.





정말 긴급한 상황인 건지, 교수가 시간을 별도로 뺀 건지 수술일정이 생각보다 더 빨리 잡혔다.

수술 전날 입원하러 오라는 말과 입원 수속 절차를 들은 뒤 우린 집으로 왔다.



아내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이 입원하는 날까지 이 병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불안과 걱정의 말들이 마구 쏟아질까 두려워서였을까? 그저 겁이 나서 피했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대신 우리는 그 기간 동안 각자의 상황을 정리하는 일에 에너지를 썼다.


수술과 입원기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일단 간병할 수 있는 보호자가 필요했다.

코로나 파티가 한창일 때라 보호자는 지정된 1인만 가능하고, 교대할 수 없다고 간호사로부터 누차 설명을 들은 터였다.


난 한 치의 고민도 않고 선뜻 내가 간병하겠다고 선언했다. 평소 못했던 남편 노릇을 이럴 때라도 제대로 해야겠다 싶었다.

아내는 고맙긴 하지만 우리 두 아들은 누가 볼 것이냐고... 그리고 당신 회사는 어떻게 할 거냐고 되묻는다.



회사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걱정 말라고 일단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얘들은 지방계신 우리 부모님께 맡기자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반대한다. 


애들 학교도 마냥 빠질 수 없는 문제가 있고 시부모님도 걱정하신다고, 특히 아들, 며느리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이시는 어머니는 크게 충격받으실 거라며 꼭 비밀로 하고 싶다고 한다.

나중에 낫게 되면 그때 말씀 드리는 게 좋겠다고 한다.


'나으면'이 아니라 '낫게 되면?'....

'나으면'과 '낫게 되면'의 어감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아닌 척하고 있지만 지금 아내도 내심 불안한 것이 틀림없다.


'낫게 되면이 아니라 무조건 낫는다라고 해야지.'라며 아내가 쓴 말을 바로 잡아주려다 꾹 눌러 삼켰다.

그 말을 뱉는 순간 우리는 이 병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해야 할 것만 같으니까.



아내는 정 당신이 병원에 들어오겠다면 애들은 장모님이나 처제에게 부탁해 보겠다고 한다. 



"장인, 장모님도 충격받으실 텐데?"

"괜찮아. 우리 엄마, 아빠는 열심히 기도하면서 이겨 내실 거야. 그리고 엄마 아빠가 기도해 주셔야 해."라며 싱긋 웃는다.


그렇다. 우리 장인, 장모님 두 분은 목사다. 공직에 계시던 장인과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셨던 장모는 일 하면서도 틈틈이 신학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늦깎이 목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장기간 해 오셨다.

몇 년 전, 퇴직 즈음 결국 목사 안수를 받으시고, 지금은 충청도 깡촌 마을로 가셔서 작은 목회를 하고 계신다.


웃고 있지만, 아내는 지금 목사님의 기도부모님의 기도 둘 다가 간절히 필요한 것 같다.



애들은 장인, 장모님께 맡기기로 합의하고, 나는 회사에 사정을 말하고, 일단 여름휴가와 연차를 모조리 당겨 쓰기로 했다. (나중에 더 필요하면 그때 가서 내년 연차도 당겨 쓸 심산으로)


일반 직장인이 이런 장기간의 휴가에 회사 눈치를 보지 않을 재간은 없다. 그렇다고 내가 낯짝이 남달리 두꺼워 눈치를 안 보는 인간도 아니다. 하지만 이 때는 시간적 특수성이 작용했다. 회사에서 우연한 기회에 고속 승진 한 내가 7년 넘게 구름 같은 자리에 앉았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두 단계 하위 직책으로 낙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기 때문에 회사도 어느 정도 내 눈치를 보고 있을 때였다.


내가 이 과정을 겪으며 심란해했을 때, 아내는 개의치 말라고, 그동안 힘든 자리에서 마음고생 많았다고 오히려 자리 옮겨서 너무 좋다고 끊임없이 나를 위로하고 응원했었다.

아내의 위로와 응원은 내 시선이 회사에서 가족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부끄럽지만 고백건대, 그때부터 아내가 보였고, 애들이 보였다.


만일 그런 일이 없었다면 나는 이 순간에 아내를 간병할 사람을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런 연유로 나는 큰 눈치 보지 않고 회사에 장기 휴가를 요청했고, 별다른 잡음 없이 휴가를 득했다. 




아내도 아내 회사에 상황을 설명하고 병가 기간을 조율했다. 아내 회사는 외국계 제약회사로 백혈병이나 암치료약을 주력으로 다룬다. 때문에 암환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일반 회사보다 비교적 우호적이다. 회사 걱정 말고 치료에 전념하라는 격려를 받으며 충분한 기간을 보장받았다고 했다.


게다가, 제약 회사 정보력을 이용해 회사 차원에서 아내의 담당 교수님도 면밀히 조사(?) 했다고 했다.

'서 00 교수님 육종암 분야 권위자고, 병원 내 평판도 좋고, 수술도 잘하시는 분'이라며 안심되는 말도 들었다 했다. 다행이었다. 다른 병원과 교수님을 알아봐야 할 수고를 덜었다.


아내는 처갓집 식구들에게 현재의 상황을 알리고, 애들을 부탁했다. 장인, 장모는 울지 않으셨다.

예상한 대로 주님이 도와주실 거라 했다. 많이 기도하겠다고만 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2학년인 우리 두 아들들을 앉혀놓고 진지하게 얘기했다.

엄마가 좋지 않은 암에 걸렸다. 하지만 수술하면 괜찮아질 수 있다.

엄마는 수술받으러, 아빠는 엄마를 간병하러 둘 다 병원으로 가니 엄마, 아빠 없는 동안 잘 지내라고 했다.

큰 놈에게는 엄마, 아빠 없는 동안 네가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고 넌지시 부담을 줬다.


단순하지만 사내다운 면모가 있는 우리 큰 아들은 걱정 말라며 이제는 자기가 가장이라며 씩씩하게 큰소리쳤다. 

섬세하고 보드라운 성향의 우리 둘째 아들은 엄마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나지막이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두 아들들에게 걱정이 되겠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안 되는 말로 마무리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열흘이 지났다. 입원 전에 정리할 것들은 이제 얼추 정리가 되었다. 



자. 이제 입원하러 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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