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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다 Aug 08. 2024

1. 찝찝함이 찝찝함으로 끝나는 법은 없다.



행복과 불행이라는 감정에 무뎌진 40대 직장인, 공감 능력 제로에 가까운 완전한 T형 인간, 권태를 느끼기 시작한 11년차 남편,  종교를 부정하던 무신론자. 이런 사람의 아내에게 "육종암"이라는 희귀병이 찾아왔습니다.

불행을 수용하고, 아픔을 공감하고, 신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어설픈 남자의 초보 간병일지입니다.

재미있지도, 슬프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습니다.

평범한 한 가족이 병을 받아들이고, 병과 함께 살아가게 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얘기하고 싶을 뿐입니다.

불행이 행복으로, 권태가 희망으로, 이성이 영성으로. 저의 삶이 조금이나마 변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써 봅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어느 저녁.


재택근무를 하던 아내가 요즘 왼쪽 허벅지가 자꾸 아프다고 한다.

멍울 같은 것이 잡히는 것 같다고 한다.

요란스럽지 않은 성격을 가진 아내가 이런 말을 할 때는 진지하게 반응해야 하거늘

다정치 못한 나는 "병원 가봐" 한마디 말로 무심코 흘러 넘겼다.


며칠이 지났다.


"00 씨, 나 오늘 근처 정형외과 다녀왔어. 다리에 종양이 생겼대. 다행히 양성으로 보인대. 의사가 바로 수술일정 잡자고 해서 일단 잡고 오긴 했어"


"양성이면 괜찮은 거야?"


"응 그냥 동그란 일반 종양, 혹이 생긴 것 같대. 떼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수술이래"


"그래도 종양이라는데 큰 병원 가보는 게 낫지 않아? 뭔가 찝찝한데.."


"음.. 근데 큰 병원 외래 예약하려면 몇 달은 대기해야 할 거야. 그전에 빨리 해결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통증도 있으니까"


(여기서 나는 설득당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음, 가 본 병원 어디야? 규모는 좀 있어?"


"응. 역 사거리에 있는 00 병원. 정형 전문이고 그래도 제법 규모가 커 보이던데?"


뭔가 좀 찜찜하긴 했지만, 아내 말대로 큰 병원 외래는 몇 달을 기다려야 될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게다가 의사가 너무나 자신 있게 양성일 거라 확신했다길래 우리는 초진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일주일 뒤,


코로나로 세상이 시끌하던 2022년 2월의 어느 날.

아내는 1박 2일 입원 일정으로 집 근처 00 병원에 허벅지 종양 제거 수술을 받으로 갔다.








"00 씨 나 오늘 병원 다녀올게. 오늘 수술하고 퇴원은 내일 하니까 돌아올 때까지 애들 좀 잘 부탁해"


출근하는 나를 붙잡고, 아내는 담담하고 차분하게 말한다.


아내는 작은 체구지만 평소에도 담이 크고 차분하다.

어지간한 상황과 사건 앞에서도 평정심을 잘 잃지 않는다.

(그녀의 실제 마음엔 어떤 동요가 이는지는 모르지만 아내는 잘 내색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아내의 성격을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부러워한다.

아내와 함께 있다 보면 조급한 내가 보일 때가 있다. 같은 사안을 마주해도 나만 조바심을 낸다.

지나고 보면 내가 낸 조바심은 대부분 쓸데없는 것들이었다.



이런 아내의 성품은 종교 차이를 극복하고 우리가 결혼하게 된 주요한 이유가 되었다.

(아내를 비롯한 처갓집 식구들은 모두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목사님도 여럿 계신다. 난 기독교에 반감이 강한 무신론자였고... 종교 갈등 문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얘기해 보겠다.)


"응. 수술 잘 받고, 이따 카톡 하자."


차분한 아내의 말에 나도 담백하게 대응하고 출근했다.


딱히 걱정이 되진 않았다. 양성 종양(혹)을 떼내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으니까.




그날 저녁 7시.

퇴근하고 애들 식사를 챙기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윙윙윙.......


"여보세요. 00 씨 미안한데 병원에 나 좀 데리러 올 수 있어요?"


"응? 무슨 말이야? 내일 퇴원 아냐?"


"응. 실은 어제 입원 전에 코로나 검사하라고 해서 검사는 했는데 결과가 오늘 오후에 나온다고 했그든요. 근데 수술 시간까지 결과 문자가 안 나와서 병원에 말했었는데 병원에서는 수술 일정 때문인지 별일 있겠냐며 그냥 진행하자 해서 했어요. 근데 수술받고 나오니 코로나 확진 문자가 와있어서....  말씀드렸더니 병원도 난리 났어. 자기들이 확인 안 하고 진행한 거 너무너무 죄송한데 확진 결과 나온 이상 지금 바로 퇴원해 주셔야겠다고.... 원칙이 그렇다고..."


(입원할 당시 아내는 코로나를 겪고 3주 정도 지난 상태였다. 때문에 병원서도 또 확진 반응이 나올 리 없다고 판단하고 수술을 진행시킨 것 같다. 후에 코로나 증상도 전혀 없었던 걸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세하게 남은 게 검사 때 반응한 아주 운이 나쁜 케이스였던 것 같다.)



"아니, 수술하고 바로 퇴원하라는 게 말이 되는 거야? 그 병원은 뭔 일을 그따위로 한대? 입원시킬 때는 원칙을 안 지키고 퇴원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게 말이 돼?"


부아가 났다. 병원의 허술한 일처리 때문인지, 수술하고 회복도 못한 상태로 퇴원을 당하는 아내에 대한 걱정 때문이지, 둘 다 인지.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요. 나 내일 걸어서 퇴원할 수 있을 줄 알고 차를 가져왔는데 지금 상태로는 운전을 못할 것 같아서.... 미안한데 좀 데리러 와주면 안 될까?..."


아내는 그 와중에 화가 나 있는 내 감정을 달래 보려 목소리를 한껏 낮춘다. 본인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올라온 마음을 누르면서 말한다.


"그럼 치료는?"


"아. 응.. 그건 드레싱 할 것들 다 챙겨주신대. 드레싱 하는 방법도 알려주셨고.. "


"하.. 참.. 어이가 없구먼. 일단 알겠어. 애들 밥만 주고 바로 갈게."


"응.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


뭐가 자꾸 미안하대.

본인 잘못도 아닌데 연거푸 미안하다고 하는 아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꾸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 정도로 나는 어려운 남편이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병원으로 간 나는 애써 화난 표정을 누르고(병원에 확 지르고 싶은 걸 꾹꾹 참아가며)

쩔뚝거리는 아내를 부축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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