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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다 Aug 26. 2024

7. 계획은 그냥 계획일 뿐,

이것이 정녕 특실의 힘, 돈의 힘인 것인가?






특실의 감상에 그리 오래 젖어 있을 수는 없었다. 

저녁 회진 시간인지 서 00 교수님이 전공의 선생님들을 두 세명 대동한 채 병실을 찾았기 때문이다.


"기분 어때요?" 교수님이 묻는다.


"기분 좋아요. 야경이 예뻐서요~" 아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마인드가 아주 좋네요~ 허허"


아직 특실의 감상에서 못 벗어났는지 교수님의 질문에 야경이 이쁘다고 대답하는 아내를 보며 교수도 웃는다.


이번 수술의 주연 격인 그 둘은 웃었지만, 조연 격인 전공의 선생들과 나는 웃지 않았다.


"내일 아침 일찍 수술할 거예요. 수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 이 선생님이(치프 선생님인 듯) 이따 다시 와서 설명해 줄 거예요. 마음 편히 내일 수술 잘 받읍시다." 교수의 말을 남긴 채 그들은 우르르 나갔다.


너무 짧다. 순식간에 왔다가 가버렸다. 무얼 묻고 싶었는지, 어떤 대답이 듣고 싶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로서는 뭔가 아쉬웠다. 궁금한 게 많은 것 같았는데 딱히 뭘 물어야 할지 모르는. 보호자로서 역할을 못하고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던 내가 좀 바보 같다 느꼈다. 앞으로 궁금한 것들을 미리 적어놨다가 회진 올 때마다 물어봐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님이 가리켰던 치프 선생님(?)이 한 뭉치의 서류를 들고 다시 우리 병실을 찾았다.

서른 중반쯤 되었을까? 키에 안경을 쓴 수더분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 선생. 


치프 선생은 두터운 서류더미를 내민다.

"환자분, 이건 환자분 케이스가 워낙 희귀한 케이스라서 수술 과정 기록과 수술 후 종양 조직들을 연구에 사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동의서입니다. 물론, 동의하지 않으셔도 되지만 동의해 주시면 이 연구를 통해 향후 다른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드라마에서 봤다. 이 비슷한 장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슬의생'에서는 장기 기증에 대한 설득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장면만큼 극적이고 슬픈 상황은 아니지만 약간 고심하는 척 한 뒤 자신 있게 대답했다. "기꺼이 동의하겠습니다." 


"...... 환자분, 동의하세요?" 치프 선생은 아내를 바라보며 다시 묻는다.


음. 그렇다. 그는 보호자인 내 동의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드라마랑 잠깐 착각했다. 민망했다.


"네. 동의해요" 아내가 이 어색함을 종결지었다. 





십 수장의 동의서 서명이 끝이 나자 숫기 없어 보이는 치프 선생이 본격적으로 수술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한다. 하얀 종이에 다리 근육 그림까지 그려가며 정성스레 수술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요약하면 '내일 정형외과와 성형외과가 함께 수술을 한다. 먼저 정형외과 수술진이 수술 부위인 왼쪽다리를 광범위로 절제하고, 그 이후에 성형외과 수술진이 들어와서 오른쪽 다리 혹은 등에서 근육과 신경을 떼서 왼쪽다리로 연결하고 피부까지 이식한다.' 뭐 이런 끔찍한 내용을 조곤조곤 설명했다. 


내 인생에서 수술이라곤 초등학교 때 고래 잡은 거와 스물한 살 때 라식한 것이 전부였기에 이런 대수술은 옆에서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그래도 보호자로서 역할을 뭐라도 해야지 싶었다. 머릿속 질문을 몇 개 긁어서 풀어놓았다.



"선생님, 수술은 몇 시부터 하나요?"

"8시 좀 넘어서 시작할 것 같은데 수술방 준비상황에 따라 시간은 조금 차이 날 수 있어요."


"선생님, 수술은 얼마나 걸릴까요?"

"변수 없이 잘 끝나면 5시간 보고 있는데, 늦어져도 7시간은 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단순한 질문이다.

아는 게 없으니 더 물어볼 것도 없다. 고작 두 개로 내 질문은 바닥났다.


"선생님, 음.....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네. 쉬세요." 치프선생이 나갔다.






저녁을 지나 밤이 되었다. 입원 첫날의 일정은 모두 소화한 것 같다. 


나는 이제 집으로 가야 한다. 수술 앞둔 아내를 홀로 두고 집에 간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는 아내에게 '잘 자'라는 따뜻한 말을 건네고 태평양 같은 특실 보호자 침대에서 첫날밤(?)을 맞이했어야 했다. 하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고 계획은 늘 빗나가기 마련이다. 


애들을 봐주시기로 했던 장모님이 우리가 입원하기 직전에 코로나 확진을 받고 자가 격리 되셨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사람 여럿 잡던 시절)

 

만삭인 처제가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되었다. 처제는 우리가 입원하는 사이 안양에서 서울 우리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산달이라 아기가 언제든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서 동서도 처제를 따라왔다. 당분간 우리집에서 출퇴근을 할 요량으로. 다시 생각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첫 아이라 많이 불안했을텐데.


때문에 아내는 나더러 오늘은 집에 가서 처제 내외에게 우리 집 사용법(?)과 더불어 우리 애들 조련법(?)등을 교육하고 내일 아침 애들 등교 준비과정까지 한번은 보여주고 나서 다시 병원으로 오라 했다.


병실에 혼자 남겨 놓고 가는 것이 영 마음 편치 않았지만 별 수 없었다. 내일 아침 최대한 빨리 오겠노라 얘기하고 나는 그렇게 병실을 나섰다.


반드시 내일 아침 일찍 다시 병실로 오고자 마음먹었다.

아내가 수술방 들어갈 때는 함께 있어줘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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