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홈스쿨링을 하고 있을 당시 내 머릿속에무엇인가(감성,영혼,예술,영감 무엇이든 그 어떤풍요로움)를 가득 채워 넣고 싶은 욕구에 인터넷을 뒤져 동양화 전시회를 알아봤고, 엄마와 함께 서울로 향했다. 벚꽃이 만개해 바람이 불면 꽃비가 흩날리는 봄날이었다. 전시회는 안국역 근처였는데, 그 날이 얼마나 행복한 하루였던지 가는 버스안에서부터 돌아오는 버스 안까지 생생히 기억이 난다. 서울남부터미널에 도착해 인사동까지 엄마와 팔짱을 낀 채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고 전시회에 도착해서 난생처음 내 의지로 동양화(한국화)를 감상했다.
전시회 출품작 중 단원 김홍도_타작도(출처_공아트스페이스)
동양화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어서. 그때의 난 집안사정으로 인해 우울보다는 불안에 온 정신이 쇠약해져 있던 때였는데,왠지 저 색바랗고 화려하지 않은 선들이 내 마음을 달래줄 것 같았다. 장터에서 웃고 떠들고 싸우고 담배피우고 그런 자연스러운 민초의 삶이 그려진 그 그림들이갈 곳 잃어 안정을 찾지 못한 내 마음에 안락한 집이 되어줄 것 같았다. 나도 마치 그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웃으며 살아가는 것 처럼 그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다.
시골향이 나는 것만 같은 그 낯설고도 익숙하고 포근한, 검은색과 누렇게 바래진 색. 화려하지 않고 여백이 많지만 어느 그림보다도 꽉 차있는 듯 한 생명력이 동양화에는 담겨져있다. 때로는 흑백밖에 없는 그림에는 묵의 향이 있다. 그 묵향이 미친듯이 흐뜨러진 정신을 진정시킨다. 가만히 그 검은 선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 묵과 내 몸이 하나가 된 것 같은 고요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신기한 기운이다.
요즘도 가끔 공허해지거나 집을 느끼고 싶을 때면 마음이 동양화를 찾는다. 정말 아쉬운 건, 요근래 동양화 전시회를 찾기가 전보다 많이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10년전만해도 서울 포함 수도권에 한 두곳이 있었던 것 같은데, 며칠 전 동양화 전시회를 검색해보니 퓨전 동양화 전시회를 제외하고는 단 한 곳도 검색되지 않았다. 그만큼 수요가 없어서일까? 동양화도 이렇게 점점 잊혀져 가는거겠지.
지나가던 길 우연히 들린 길가 카페 테라스에서 마신 커피와 신문을 읽고 계시던 할아버지. 서울 할아버지는 다들 카페에서 신문을 읽으시는구나 뭔가 다르다 싶어서 혼자 신기해 힐끔힐끔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가게 앞에서 호스에서 나온 물과 햇살을 맞으며 물놀이를 하고 있던 골든 리트리버. 과장 없이 정말 영화같은 장면이었다. 개나리빛으로 차르르 떨어지던 봄볕 아래 물을 맞은 리트리버가 몸을 털면 햇빛 입자 하나하나가 팝핑캔디가 터지듯 반짝거리며 빛이 났다. 고등학교 골목 사이 벚꽃비가 내리는 돌담길. 양쪽으로 학생들이 문을 열고 벚꽃을 구경하고 그 아래로는 분홍빛 꽃들이 바람에 날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하늘색 하늘에서 내리는 분홍색 봄비 그렇게 짧은 서울 나들이를 끝나고 손에는 전시회 팜플렛을 소중하게 쥔 채로 잔뜩 풍족해진 마음과 정신으로 뿌듯하게 돌아오던 버스 안 그 날따라 너무 맑고 화창했던 날씨와 따뜻한듯 시원한 봄바람 포근한 엄마 팔
이상하게 오랜시간이 지나도 그 날의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봄 냄새와 피부에 스친 바람의 온도까지 생생히 내 뇌에 각인되었다.
너무 개인적이기도 하고 별 특별한 내용이랄게 없어 올릴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생각해보니 벌써 봄이다. 별 것아닌 내용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봄맞이 짧은 이야깃거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글을 올려본다. 곧 다가올 따뜻한 이번 봄에도,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산뜻한 기억하나쯤 모두에게 새겨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