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어질다, 자애롭다, 인자하다, 감각이 있다, 민감하다, 사랑하다, 불쌍히 여기다.
<말의 품격>에서 저자 이기주는 공감이나 연민은 측은지심보다 인仁 과 가깝다고 말한다. 인은 사람 人에 두 二를 더해 만든 한자인데 이 인仁에는 '마음 씀씀이가 야박하지 않고 인자하다' 라는 뜻만 있는것이 아닌, '천지만물을 한 몸으로 여기는 마음가짐 혹은 그러한 행위까지 내포한다' 고.
천지만물을 한 몸으로 여긴다.천지만물을 내 몸과같이 여긴다는 뜻일까? 나를 포함한 천지만물이라는 온 우주를 하나로 본다는 뜻일까?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결국 물아일체의 의미로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뜻의 일맥상통하는 식이 아닐지 조심히 추측해본다. 금수강산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미 마음가짐은 인자한 자연과 같지 않을까?
여기서 과연 자연은 인자한가 어떤부분에서, 왜 인자한가 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오래 살아본 것도 아니거니와 때문에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라 '자연은 인자하다'라는 말을 튼튼하게 뒷받침할 근거를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말로써 풀어낼 수가 없다. 대신어렴풋한 감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오늘을 버텨내기 힘이 들다가도 산 근처에 가거나 바다를 보면 기를 얻는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내 몸은 느낀다. 전신이 이완되고 턱 끝까지 차던 숨은 어느새 고요히 진정되어 있다. 우리는 산/바다와 같이 살고싶다 혹은 산/바다같은 마음을 가지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자연은 사람이 그에 가까이 하면 할수록 생명을 연장시켜준다.
자연은 물질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인간에게 아낌없이 준다.어쩌면 우리가 허락없이 빼앗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그럼에도 자연은 늘 그 자리를 지키며 변함없이 스스로를 정화시키려 노력하고 또 내어준다.
그 순수하고도 에너지넘치고 늘 변하지 않는. 배신하지 않는 그 성질이 우리로 하여금 자연을 인자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난 자연과 인은 같은 성질이라 생각한다. (물론 자연이 결코 인자하지 않을 때도 있긴 하지만..)
출처_텐트밖은유럽
저녁을 먹다가 유럽에서 캠핑하는 예능 프로그램 <텐트 밖은 유럽 노르웨이편>을 보았다. 모두가 알 듯 노르웨이의 북유럽 산맥과 그 풍경은 길 가다가도 멈춰서서 어떻게든 내 눈에 다 담고싶을 만큼 광활하고 심장이 떨릴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가보진 못해서 증명할 수는 없지만..) 텐트 밖은 유럽 출연진들도 차를 타고 가다 기가 막힌 풍경을 발견하곤 차를 잠시 세우고 사진을 남기며 감상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던 중 출연진 중 한명인 배우 유해진(님이라고 붙여야 하겠지만 편의상 생략하겠다)은 가만히 스텝들을 바라보다 어서빨리 당신들도 사진을 남기라며 등을 떠민다.
출처_텐트밖은유럽
그 아름다운 광경을 보며 스텝들이라고 사진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 하지만 시간관계상, 빨리 이동해야 하는 타이밍이었고 그 와중에 스텝들 자신들까지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는 애매하기도 눈치가 보이기도 했을텐데 먼저 그 마음을 알고스텝들이 민망하지 않게 자연스레 상황을 만들어 준것이다. 그의 仁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또 한번은 캠핑 멤버들이 오르막길을 걷고 있었는데 카메라맨들이 카메라를 들고 뒤로 걷는 모습을 지켜보다 그는 스텝들에게 우리(출연진)와 번갈아가며 뒤로 걷자며 제안을 한다. 진지하지도 무겁지도 않게 유쾌하게 상황을 유도한다. 이로서 카메라맨들은 아주 잠깐이라도 조금이라도 편하게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어쩌면 그의 배려에 잠시 고맙고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이 역시, 유해진 그의 仁을 엿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 후로도 방송을 보며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출연진은 출연하는 것이 그들의 일. 카메라맨은 카메라로 방송분을 담는 것이 그들의 일. 당연한 일이지만 그 속에서 서로의 곤경과 마음을 헤아리며 상대를 위하는 마음을 갖기란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마음은 아니다. 당연한 일 같지만 주변에서 인을 찾아보기가 요즘 세상에는 보기보다 힘들다. (유해진 님은 등산을 좋아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역시 산(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인을 더 소중히 여기는 걸까?)
인을 베풀면 오히려 바보가 되거나 때로는 아주 운이 나쁘면 되려 피해를 입을수도 있는 세상이다. 우선 내가 상처를 받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내가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나 스스로를 책임지기에도 벅찬 세상이라 상대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보는 여유를 현대인들은 가지기가 쉽지가 않다. 우리가 인성이 되지 못해서일까? 아니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아마도 우린, 오늘 내일 살아남기에도 벅차기 때문에. 세상이 우릴 겁 먹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사실이지만,인을 베풀기에도 겁이 나게 하는 세상이라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며 어떠한 운명같은 순간의 상황을 맞닥뜨리면, 몸은 이미 인을 베풀 준비를 마치고 마음은 약간의 빨라진 심장박동 속에서 갈등을 한다. 인의 마음가짐을 하고서 행할지 말지 고민을 하는 것이다.또는 인을 목격하면 행복해진다. 마음이 편해진다.우리 인간의 본 성질은 이미 인과 상생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존재라는 의미가 아닐까? 인간의 안에는 이미 인이 있어 그것에 가까워지면 마음이 먼저 알고서 편안해하고 행복해하는 것이다.
당연한 것 같은 일상 속에서도 인을 베푸는 그런 작은 모습들은 우리로 하여금 정을 느끼게 한다. 사람냄새가 난다고나 할까. 살맛이 난다고나 할까. 사람 냄새. 그래. 인은 사람냄새다. 갈수록 팽배하는 개인주의, 이기주의의 세상이지만, 어쩌면 앞으로도 악순환이 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사람냄새가 나는 모습들이 우리의 삶에 조금 더 보였으면 하는 바램을 간절히 가져본다. 하루에 한번일지라도.그저 仁이라는 이념이 우리의 삶 속에서 없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 참 살맛 나지 않을까.
살아가며 인을 베풀며 한껏 살맛을 느끼다 때가 되면 쿨 퇴장! 하는 것.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