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게 겨울동안 열심히 힘겹게 준비를 해왔구나 꽃몽우리를 맺고 잎을 처음으로 살짝 열었을 때까지 미처 몰랐는데 언제 그렇게 피어서 사람들에게 찰나의 평안과 황홀감을 안겨주나 대단하고 기특하다 언제고 그렇듯 피고 지고 또 피겠지 경이롭다 기특하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에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산수유_자전거여행/김훈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꽃잎을 아직 오므리고 있을 때가 목련의 절정이다. 목련은 자의식에 가득 차 있다. 그 꽃은 존재의 중량감을 과시하면서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올린다. 꽃이 질 때,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꽃잎은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서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목련 꽃 은 냉큼 죽지 않고 한꺼번에 통째로 툭 떨어지지도 않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꽃잎 조각들은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 목련 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 펄썩, 소리를 내면서 무겁게 떨어진다. 그 무거운 소리로 목련은 살아 있는 동안의 중량감을 마감한다.
목련_자전거여행/김훈
김훈 작가님의 목련은 처음 읽었을 때, 이렇게 목련을 정확히 표현할수가 있나 싶어 감탄만 싶었는데 다시 곱씹어보니 목련의 죽음은 처절하고도 애처로워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