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유 Aug 07. 2024

빈 얼굴


 깨어지기 쉬운 이름. 이름이 사라진다. 이름 없이는 이야기를 지어낼 수 없다. 빈자리가 생긴다. 빈자리가 겹쳐 빈 방이 된다. 눈꺼풀이 깜빡일 때마다 헛것이었거나 혹은 죽은 아이가 되고 만다.

문드러진 얼굴이 심연 아래 파묻힐 때였다. 그림자를 가지지 못하고 흩어진 팔다리들. 새롭게 세상에 나는 것들을 바라보며 얼룩진 공중. 휩쓸리는 앙상은 곧 공기에 스며든다.

물 밑에 누워있다. 풀 밑에도 나무의 구멍 안에도 조금씩 풀어놓는 일.

안녕. 안녕.

메아리만 울렸다. 여백 앞에 쏟아지는 미아들.

영영 사라지기를 원했다. 돌출하는 것도 더 이상 소리가 아니게 될 때까지.

증발하는 호수. 치지 않는 파도. 뿌리 없는 새싹.

기억한다. 모르는 이름들을.

매거진의 이전글 되새김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