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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Aug 08. 2024

공벌레 2


손톱이 걸려 올이 나간 커튼 사이

구멍이 점점 벌어지고 있다

몸을 기대고 앉아 꺼진 소파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꾸만 몸의 모서리가 풍경을 긁는다

날이 선 손톱을 깎았다

몸통에서 뻗어 나온 팔과 다리에

부드러운 천을 여러 겹 감싼다

둔해진 몸으로 발자국을 찍자

바닥에 남은 자국이 희미했다

누군가 뒤에서 밀어주는 것처럼

힘차게 걷는다

이미 많은 걸음이 오간 뒤에

마침내 길이 되어버린 포장도로를 본다

길의 끝에서 반짝이는 것을 하나쯤 주울 수 있을까

새롭게 쓰인 길이 되고 싶었다

몸을 공처럼 웅크려 본다

연약한 이마부터 땅에 맞댄 채로

곳곳에서 고꾸라지는 연습을 했다

모서리가 전부 둥글어질 때까지

오래 밟히고 싶다


아프고 나면 잔뜩 부푸니까

앞으로 나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꺾인 허리가 아프지만

오랫동안 구르기를 해나간다

목을 안쪽으로 말아 넣으며

최선을 다해 햇빛에 휘감기고

나는 오래, 깊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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