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ecure Overachiever”
한국의 지나친 공부경쟁이 싫어 영국으로 어린 나이 도망온 나는 요새 들어 내가 그 정신적인 굴레에서 아직도 탈출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깊이 하고 있다.
금융 쪽 컨설팅에 몸 닿고 영국 공인 회계사로 일한 지 20년. 1년 전 나는 소희 말하는 “번아웃”을 경험했다. 나는 정작 자각하지 못했었는데 나를 가까이서 지켜보던 가족과 친한 친구들은 걱정이 깊었다고 한다. 지금은 “회복(?)“을 한 것도 같지만 아직도 일과 커리어에 목매여 사는 나의 모습을 보면 이건 평생 가는 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면 나뿐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영국에서는 유명한 로펌의 워킹맘 파트너가 슬프게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금융/ 법률계등 클라이언트를 모시는 서비스업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다시 한번 이슈화되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그다지 새로운 문제도 아닌데, 그리고 업무 스트레스와 끊임없는 치열한 경쟁이 있는 곳이 잘 알려져 있는데도 변함이 없는 구조는 근본적으로 공급과 수요의 문제. 힘든 일이지만서도 돈과 명예와 지위를 꿈꾸는 이 직업들을 원하는 이들은 항상 충분히 있기 때문에.
그럼 그러한 삶을 꿈꾸는, 나도 20년 그러한 삶을 꾸었고 지금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 구조는 “Insecure Overachiever” 들에게는 완벽한 환경이기 때문. 어쩌면 한국에서 끊임없이 숨 막히는 경쟁을 어려서부터 배워온 나 같은 이들에게는 가장 친숙한 환경이 아닐까 싶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그 시작을 잘 알고 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시절 나는 공부를 그다지 잘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반에서 2-3등은 놓치지 않았지만 항상 전교 1등을 하고 천재소리 듣던 언니에 비해서 나는 우리 집 “꼴통”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엄마 아빠는 나를 보고 게으르고 주위가 산만해서 “커서 뭐가 될래 “ 하는 소리를 자주 하시곤 했다.
그런데 중학교 반배치고사 시험을 웬일인지 잘 본 것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전체 4등으로 입학을 하자 나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어린 마음에 갑자기 엄마 아빠한테 인정을 받고 이쁨을 받다 보니 공부에 욕심이 생겨 중학교를 시작하면서 나는 미친 듯이 공부를 했다. 전교 1등을 하기 시작했고, 1점 차이로 2등을 하기도 했고. 그런데 문제는 그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나의 어린 시절을 완전히 포기했어야 했다는 점.
12시까지 학원에서 수업과 자율학습을 하고 집에 와서 새벽 2-3시까지 숙제, 그리고 또 공부를 하는 삶이 이어졌는데 내가 3시 전에 잠을 청하면 다음 날 엄마는 “어제 일찍 잤더라고?” 하고 아침을 열곤 하셨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는 견디기 힘든 일상을 계속하다 보니 중학교 2학년이 시작되면서 나는 숨쉬기가 힘든, 지금 생각해 보면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오는 공황장애가 아니었나 싶은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래서 결심하게 된 유학길.
유학을 오면서 그 생활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공부 = 인정 = 사랑“이라는 공식이 내 머릿속에 너무나도 확고히 자리 잡고 있었기에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회사의 인정, 승진, 이렇게 남이 주는 “평가점 “ 이 없으면 내 자존감을 잃게 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스스로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하나 쉬운 변화는 아니다.
아이들에게 사랑의 조건을 공부로 두고 있는 부모들이 있을까 봐 조심히 내 마음속 가장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알고 그렇게 하는 부모는 없겠지만 마음이 그렇지 않더라도 아이에게 성적을 요구하는 부모라면 아이는 그것을 조건적 사랑이라 느끼며 크는 불행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