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웹툰 <열무와 알타리>의 유영 작가님이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작가님이 어떤 출산과 어떤 육아를 하고 어떻게 삶을 헤쳐나갔는데... 마음이 아프다. 열무, 알타리 그리고 토토님이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원자는 영원하고 만물은 원래 죽어있다는 말이 무슨 소용인가. 남겨진 누군가에게는 물 위의 기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다른 세상 말에 불과할 것이다. 공정하지 않다는 느낌에 화 같은 것이 마음속에서 피어난다. 사실은 두려움이다. 따질 대상도 없고, 내 말이 맞지 않냐고 조목조목 짚어낼 근거도 없다. 죽음에는 윤리도 법칙도 없으니까. 작년 말 친구가 떠났을 때도 그랬다. 유영 작가님을 향한 슬픔, 친구를 향한 슬픔과 함께, 분명히 자리 잡고 있는 이 감정은 두려움이다.
마이클 싱어의 책 “상처받지 않는 영혼”을 다시 꺼냈다. 17장의 제목은 ‘죽음이 주는 의미’이다. 깨어있는 사람들은 죽음이 한 달 후에 찾아온다고 하든, 지금 찾아온다고 하든, 살던 모습 그대로 산다고 한다. 순간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서 자신의 삶을 이미 온전히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온전히 산다는 게 무엇인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있는 것이다. 삶을 충실히 경험하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경험을 하겠다는 욕망에 충실하라는 것이 아니다. 뭔가를 얻어내려고 하면 진짜 경험을 놓친다.
죽음을 겁내는 이유는 뭔가? 삶에서 아직 경험하지 못한 뭔가를 얻어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삶을 낭비한다. 바삐 다니지만 아무것에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죽음으로부터 삶을 온전히 경험할 용기를 얻어라. 하지만 기억하라. 그것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 당신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삶을 경험하는 것이지, 일어나기를 바라는 삶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일이 일어나게 하려고 애쓰느라고 삶의 한 순간도 허비하지 말라. 당신에게 주어진 순간을 감사하고 음미하라.
쉽지 않다. 단 5분 명상하기로 마음먹은 시간에도 갖가지 생각이 드는 것을. 나는 생각과 욕망의 노예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변한 것이 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일주일이라고 가정(?)하고 매일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보통은 잊고 있지만 가끔 내가 세운 가정을 의식하는 어느 순간, 사랑하는 사람에게 순간의 부정적인 감정을 내비치지 않을 수 있다. 시간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아무튼,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지금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