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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JI Nov 28. 2024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말하는) 가난의 이유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애쓰모글루는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지를 ‘제도’의 차이, 구체적으로 정치 제도와 경제 제도의 차이에서 찾았다. 제도는 그 성격에 따라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로 구분되는데, 저자에 따르면 포용적 제도 하에서만 혁신의 인센티브가 작동해서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고 나라가 장기적으로 번영할 수 있다고 한다.


포용적인 제도를 가진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정치적으로는 권력이 여러 계층에 분산되어 있으면서도 중앙집권화된 정부를 갖고 있다. 경제 제도 면에서는 법치주의, 사유재산권 보호, 공정한 공공 서비스 제공,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거래가 보장되어 있다.


반대로 착취적인 제도를 가진 사회는? 정치적으로는 소수 엘리트에 의해 정치권력이 독점된다. 경제적으로는 사유재산권을 보호받지 못하거나, 정부가 적절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실패했거나, 구성원이 자유롭게 재화, 서비스, 노동력을 거래하기 어렵다.


사실 과거를 살펴보면 지구상의 모든 사회는 착취적인 제도를 갖고 있었다. 왕이나 귀족이 기득권을 갖고 있었고, 무역을 독점했고, 노예, 농노, 노비 등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기득권의 부를 지탱했다. 하지만 어떤 사회는 (영국의 명예혁명과 같은 독특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포용적인 제도를 발전시킨 반면, 다른 사회, 가령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가나와 같은 나라는 그러지 못했다. 왜 그럴 수 없었을까? 그때 아프리카에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대런 애쓰모글루는 그 답으로 17세기부터 본격화된 노예무역과 유럽의 식민지 쟁탈 역사를 들려준다.


노예제도의 역사는 길다. 고대부터 노예가 있었다. 동아프리카에서 사하라 사막을 건너 아라비아 반도로 이송된 노예 수가 16세기에 55만 명 정도인 것으로 추정한단다. 그런데 17세기 들어서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카리브해 식민지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할 노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서아프리카 해안을 통한 노예무역이 활발해졌다고 한다. 새로운 경로를 통해 대서양으로 팔려간 노예 수는 17세기 135만 명, 18세기에는 600만 명에 달했다.


서아프리카는 노예를 판 대가로 유럽에서 총기와 탄알을 얻었다. 덕분에 전쟁이 늘어났다. 18세기 이후에는 나이지리아의 Oyo, 베냉의 Dahomey, 가나의 Asante와 같은 노예 정권이 들어섰다. 전쟁으로 주변을 정복하고, 정복한 땅의 주민을 노예로 팔아넘겼다.


1807년, 영국이 노예무역을 불법화했다. 그 결과 노예는 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아프리카는 노예 대신 팜유, 땅콩, 상아, 고무를 수출하기 위해 국내에서 노예를 활용했다. 1900년 아프리카 서부 인구의 30%가 노예였다고 한다. 노예 제도는 20세기까지도 살아남았다. 시에라리온에서 노예제가 철폐된 것은 1928년의 일이다.


두 번째로 가나를 비롯한 몇몇 국가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영국은 추장을 통해 간접통치 방식으로 식민지를 다스렸는데, 추장을 선출제에서 종신 직위화함으로써 세습제의 길을 열었다. 또 영국은 중앙기구를 세워 농산품을 강제로 매입하게 한 후 그 기구가 가격을 결정하게 했다. 이것은 과세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농부가 제값을 못 받았다는 뜻이다. 주민들은 생산성을 높일 인센티브를 잃었다. 독립 이후에도 이 기구는 살아남았고, 농민은 생산한 농산물에 대해 식민지 때보다 더 낮은 가격을 책정받았다. 먹고살기 더 힘들어진 것이다.


요약하면 아프리카, 특히 서아프리카는 유럽과의 노예무역으로 전쟁과 폭력이 극심했고, 인구는 정체되었고, 신뢰할 정부를 세울 수 있는 싹이 자라지 못했다. 유럽의 식민지였던 시기에도 착취적 구조는 계속되었다. 1960년대 독립했어도 기존의 착취적 제도는 살아남았다.


여기까지 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선택적으로 요약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깔끔하게 결론짓기 어려운 세 가지 질문을 갖게 되었다.


현재 가나의 정치 경제 제도는 포용적이지 않은가? 가나는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고, 선거를 통해 정권이 평화적으로 이양되고 있다. 또 중앙집권적인 정부를 갖고 있다. 내가 알기로 가나에서 독립하겠다거나 가나 정부와 다투는 국내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나가 법치주의, 사유재산권 보호, 공정한 공공 서비스 제공,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거래에 실패했다는 정황을 나는 모른다.


착취적 제도 운영의 결과물이 부정부패라고 봐도 될까? 정치권력이 소수의 고인 물에 집중되어 있고 그들이 편향적인 의사결정으로 특정인에게 자원을 몰아주는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발생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권력층의 부정부패 사례를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그 사회의 제도적 성격을 외부인이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을까.


1980년대 이후 선진국과 개도국을 막론하고 대다수 사회가 불평등의 증가를 경험하고 있다. 이 불평등이 착취적 제도와는 관련이 없을까? 범위가 너무 넓으니 한국으로 좁혀본다. 한국은 눈부신 번영을 이룬 사례로 책에 기록되어 있다. 정치 제도와 경제 제도가 포용적으로 변신한 덕분이다. 한편 요즘 국내 뉴스보도를 보면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현실이 곧잘 거론된다. 투박하게 말해서 강남에 살아야 서울대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계층 이동성이 줄어드는 이 상황, 이건 다원적이지 않은 정치 지형에서, 권력이 특정 계층을 위해 제도를 운영한 결과일까. 막 던지다가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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