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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후잡담

10년 만에 남편과 의견일치를 보게 해 준

21세기 자본

by RAMJI

오래전, 대학생 때 경제학입문 수업을 듣고 나와서 생각했다. '왜 꼭 경제성장을 해야 하지? 성장 안 하고 적당히 살면 안 되나? 성장의 끝은 무엇인가?' 기후변화 정치학 수업을 듣고 나와서 또 생각했다. '환경이 엉망이 되고 있는데 그냥 다들 적당히 살면 안 되나? 자꾸 성장해서 뭐 하나?' 스스로도 뭘 몰라서 하는 질문일 거란 생각은 들었지만 물어볼 곳도, 스스로 답을 찾을 역량도 시간도 없었다.


재작년부터 시간이 많아져서 경제학 대중교양서를 몇 권 읽었다. 읽으면서 옛날에 가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씩 찾아가는 것 같다. 처음에는 실업률이 문제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진다는 건 불황이 왔다는 거니까 망하는 기업이 생긴다는 거고, 그럼 실업률이 늘어나겠구나. 정부가 걷는 세금도 줄겠네. 힘들겠네.'


그러다가 연초에 앵거스 디튼의 책 <위대한 탈출>에서 성장과 불평등의 연결고리를 찾았다. 경제가 성장 일로에 있어야 모두에게 추가로 돌아갈 몫이 생긴다. 즉 경제가 성장하면 불평등으로 인한 갈등이 줄어든다. 이 부분을 읽고 '그래서 인류가 성장에 목매는가 보다' 싶었다.


이번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었더니 성장과 불평등의 관계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자본주의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는데, 바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항상 웃돈다는 것이다(r>g). 예외적으로 1, 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은 파괴와 각국 정부의 공공정책의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이 부등식의 방향이 역전된 적이 있었지만 1980년대 이후 다시 되돌아왔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거칠게 말하면 일해서 번 돈(노동소득)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돈(상속) 또는 금융자산에 투자하여 버는 돈(자본)이 중요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본소득의 분배는 애초에 워낙 불평등이 심한 한편 노동소득의 불평등도 늘었다. 능력주의의 병폐로 기업경영자의 보수가 (특히 영미권에서) 상식 밖으로 급등한 탓이다. 저자는 현대 사회를 초세습사회와 초능력주의사회가 공존하는 사회로 규정한다.


앵거스 디튼의 책을 읽는 동안에는 사회가 불평등 이슈를 별 탈 없이 평화롭게 넘기기 위해 경제성장이 필요하구나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피케티의 책을 읽으니 경제성장도 쉽지가 않을뿐더러 불평등 이슈를 매끄럽게 넘어가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해 보인다. 저성장, 인구정체의 시대에 경제성장률이 자본수익률을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하니 말이다. 저자는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를 대안으로 제시하는데 그게 가능하겠냐는 말이다.


워낙 책에 미국 사례가 자주 등장한다. 요즘 트럼프의 행보에 입이 떡 벌어지던 참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근거는 없지만 확신을 갖고 내 나름의 소설을 쓰게 된다. 피케티의 책이 출판된 후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서 부의 불평등은 더 극심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능력주의에 대한 대안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소득 최상위층은 자신의 부를 나눌 생각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 중산층과 하위층이 겪고 있는 경제적인 곤궁을 약자와 외부인 탓으로 돌리고 이들을 공격해서 부를 조금이라도 떼오려고 한다. 그 선봉에 트럼프가 서 있다!


책을 다 읽고 남편에게 슬며시, 전쟁이 또 일어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더니 남편 왈, '내가 2016년에 이 책 읽고 전쟁 날 것 같다고 말했잖아!' 이런다. 헐. 기억에 없는데. 우리 부부가 이런 데서 10년 만에 의견일치를 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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