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찰리
0.
온도는 오래 머무르는 성질을 가져서
쉽게 붉어지는 눈동자가 있다
유난히 일찍 깨어나는 아침
그늘이 자주 찾아오는 방향이 있다
1.
여름이 되면 쉽게 축축해지는 우리들의 이름으로
울음이 많은 사람의 명단을 만들어줘
벽지에 핀 곰팡이 위를 하얗게 덧칠하면
방이 자꾸만 좁아지는 기분
표정은 쉽게 문드러지고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에 우리는
사과 더미처럼 앉아 있다
마트 창고 깊숙한 곳에서 썩어 버린
저마다 크고 작은 멍을 갖고 물러터진다
순식간에 부패해버리는 계절에만
우리는 각자의 모습으로 아플 수 있다
매일이 그늘이라면 어떤 꽃을 심으면 좋을까
꼭 닫힌 문 안에서도 자라고 있는 화분이 있다
구겨진 은박지처럼 반짝이는 여름
창문을 열어두면 뜨거운 바람이
소매 안으로 기어들어온다 어떤 밤은
엎드려 숨을 쉬지 않아야 견딜 수 있고
하얀색 페인트에 가려질 때 곰팡이는 점점 짙어진다
얼마나 더 축축해져야 온전해질 수 있을까
2.
해마다 감기처럼 여름을 앓는다
아프지 말라는 말은 소문처럼 쉽게 퍼지므로
여름이 있던 자리마다 진득한 냄새가 났다
그늘 안에서 움트는 단단한 마음들
오래도록 자라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