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서문

편집장 어디

by 문우편집위원회

모두가 같거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때에야 다름이 보이고, 모두의 차이를 찾아낼 때에야 공통점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번 학기는 모두에게 힘든 한 학기였을 것이라는 말로 64호를 열어 보려다 든 생각입니다. 문우를 처음으로, 혹은 어김없이 펼쳐 주신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같은 글을 읽으러 오신 연세대학교 학생이라는 점에서 같은 시선을 나눌 수도, 또 각자 다른 이유로 문우를 찾아오신 만큼 다양한 색을 입힐 수도 있겠지요.


우리 모두가 하나라고 믿는, 그래야 하는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모두가 힘을 모아서” 위기를 이겨내는 중이고, 함께하는 사람들 모두가 영웅이고, 그 덕분에 아슬아슬하게나마 일상이 유지된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 없이는 2020년 한 해가 여느 해보다 길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겠지요. 이번 64호는 거기에서 출발했습니다. 지금까지 문우가 메인기획으로 다루어 온 주제들과 함께 놓고 보면 조금은 이질적일 수도 있지만, 또 하나의 좁은 주제에서 시작해 출발한 만큼 편집위원들의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2020년은 안전하다는 감각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실은 그 이전에 전제되어있는 것이 있습니다. 안전하게 디딜 수 있는 바닥이 있어야 그다음의 이야기가 가능하겠지요. 찰리의 「안전하게 살고 싶나요」는 그 안전함이 모두에게 닿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다음으로 눙의 「책임의 그림자」는 ‘때문’을 이야기합니다. 매일같이 새로운 소식이 들려오는 지금 확진자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수많은 책임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것이 개인이 짊어져야만 하는 몫은 아니겠지요. 끊임없이 한 사람의 몫을 해내기를,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나로부터 세상을 지켜야 하는 경영을 요구받는 현대인에 대한 이야기가 현오의 「비대면 경쟁에 열심인 당신에게」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렇듯 스스로를 관리하는 한편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몫을 해내라는 요구에 부응한 이들 ‘덕분에’ 대한민국이 이만큼 지켜지고 있다는 믿음이 자연스레 널리 퍼졌습니다. 이지는 「코로나 시대의 영웅난립」에서 이 믿음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던집니다.


트라우마라는 말은 이제 설명 없이 비유로 쓰여도 자연스러운 시대가 된 듯합니다. 어디의 「트라우마 19」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감염 자체의 고통뿐 아니라 위협 속에서 살아가며 트라우마를 경험할 이들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거대한 위협 앞에서 불안정하게 유동하며 지워지고 가려지는 ‘이방인’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검은의 「자리와 안전을 찾지 못한 사람들」로 이어집니다.


이번 문우 집필 역시 비대면 소통에 상당 부분 기대어 진행되었습니다. 다양한 매체로 소통하는 데에 익숙해진 세대로서 가져야 할 문제의식이 사구의 「소통의 구조와 방벽 세우기」를 통해 제시하고자 합니다. 메인 기획의 마지막은 찌부찌의 「울타리 위에서」입니다. 교환학생으로서의 생활을 준비했지만 거기서 어떤 어려움을 마주하고 돌아와야 했는지, 그 안에서 우리는 어땠는지 돌아보게 하는 글과 그림으로 문을 닫고 다음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어색하게 느껴지기만 했던 생활이 이제는 새로운 일상이 된 듯합니다. 시작도 마무리도 분명하지 않은 지금, 흐려진 경계 위를 살아 내는 것이 모두의 최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기가 완전히 지나간다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경계란 늘 전부 지나고 나서야 경계였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니까요. 판의 경계에서는 화산이나 지진 등의 우리가 재난이라 부르는 현상이 자주 발생합니다. 그러나 그런 큰 사건이 있어야 만들어지는 변화들이 있습니다. 주목하지 못해 약해져 있던 틈이 드러난 이번 판데믹을 무사히 버텨내고, 돌이켜 경계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여름, 편집장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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