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게 살고 싶나요

편집위원 찰리

by 문우편집위원회


살아 있다


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 이 질문에 대해 몇 가지 다른 답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중 ‘안전한 삶’을 떠올리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안전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죠. 다만 안전이 삶의 기저에 있는,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전은 삶의 조건이 아니라 ‘삶’ 자체의 전제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토록 당연하게 여겨지는 안전을 충분히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사고나 재난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합니다. 특히 현재 코로나 19라는 세계적인 팬데믹 속에서 이상적 안전과 우리 삶의 괴리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물론 우리는 여러 재난 상황의 대비책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표준’ 화재 대피 요령이 어렴풋하지만 나름대로 뚜렷하게 자리해 있습니다. 스스로가 화재 상황에 놓였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상상해봅시다. 불을 발견하면 큰 소리로 ‘불이야’라고 외치고, 엘리베이터는 전기가 끊겨 위험할 수 있으므로 계단으로 이동하며, 젖은 수건을 찾아 코와 입을 막은 채 낮은 자세로 대피하겠지요.


그러나 만약 당신이 언어장애가 있어 ‘불이야’라고 외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신이 너무 어려서 지금 화재가 발생했다는 걸, 그래서 대피해야 하는 걸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또는 당신이 고령자라서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힘들다면. 당신이 휠체어를 타고 있어 계단을 이용할 수 없다면, 만약 이곳이 의사소통을 전혀 할 수 없는 외국이라면,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다면?


재난으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재난을 예방하거나 재난에 대처하는 완벽한 방안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피해를 최소화하고 많은 사람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안내 자료가 제공되며 재난대비 교육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대처 방안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재난안전약자의 소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인식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찰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안전은 생존에 관한 문제이기에 재난안전약자에 관한 논의는 ‘더 나은’ 삶을 말하기보다도 앞서 ‘삶’ 자체에 관한 것이 됩니다.



재난안전약자란?


재난안전약자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서는 재난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 재난은 크게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나뉘는데, 자연재난은 자연현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재해이며, 사회재난은 화재나 붕괴, 폭발, 항공 사고 및 해상사고를 포함한 일정 규모 이상의 피해, 국가기반체계의 마비, 감염병 혹은 가축전염병의 확산을 말합니다. 재난안전약자는 재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을 총칭합니다. 현재 재난안전약자는 재난약자, 재난취약자, 재난취약계층, 안전약자, 안전취약계층 등 여러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각 용어의 정의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재난 상황에서 보호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기본 개념을 공유합니다.[1]


재난안전약자는 다양한 양상으로 존재하며, 재난안전약자가 가진 취약성은 경제적, 신체적, 환경적, 사회문화적 제약으로부터 발생합니다. 재난안전약자의 유형을 시기별로 구체화하여 살펴봅시다. 재난안전약자가 취약한 시기는 재난 상황 이전, 재난 발생 직후, 재난 상황 자체, 재난 상황 이후를 기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 구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재난을 야기하는 위험 인자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재난 상황 이전), 재난 상황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재난 발생 직후), 재난 상황을 판단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재난 발생 직후), 재난 상황에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재난 상황 자체), 재난으로부터 입은 피해를 복구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재난 상황 이후).


이러한 시기적 구분은 재난안전약자의 보호에 있어서 재난 그 자체로부터의 대피, 이를테면 ‘불이 난 아파트에서 탈출해 대피소로 이동하는 것’, 또는 ‘감염병을 치료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재난으로부터의 보호는 재난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재난이 발생한 이후까지 모든 시기에 요구됩니다. 이렇게 정의된 재난안전약자는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 장애인, 외국인, 독거노인, 쪽방촌 거주자,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을 포괄합니다.



재난안전약자 인식하기


우리나라에서는 재난안전약자를 위한 여러 법제적 조치가 시행되었습니다. 국회는 2016년 12월 29일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재난, 안전사고에 취약한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을 ‘안전취약계층’으로 정의했습니다. 또한, 정부는 2017년 9월 24일 장애인 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해 장애 특성을 반영한 재난, 안전관리 강화 등의 과제를 5년 계획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2] 그러나 여전히 현재의 재난 대책은 재난안전약자를 고려하지 못한 채 이루어지거나, 형식상 고려하였더라도 실질적인 대응책이 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실질적인 제도의 변혁을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선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인식의 문제를 두 가지 맥락으로 나누어 살펴봅시다. 첫 번째로, 우리는 인간의 기본값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인간의 기본값은 사회적으로 나타나게 된 보편적인 사람의 이미지를 근간으로 하는 인식 체계입니다. 2000년대 초반 한국 사회에서 의사라는 직업군의 기본값은 남성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의사’라는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그가 남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이로 인해 다음과 같은 농담도 존재했습니다:


부자지간인 두 남자가 차를 타고 가다가 트럭과 부딪혔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아들은 크게 다쳐 응급실로 가게 되었다. 그의 수술을 담당할 의사는 병원에서 수술 성공률이 가장 높은 외과 의사였는데, 의사는 침대에 누운 아들을 보며 “이 사람은 내 아들이니 반드시 살리겠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의사와 아들은 어떤 관계일까?


‘의사의 기본값 = 남성’이라는 고정관념이 이전만큼 공고하지 않은 지금에 이 이야기 속 의사는 아들의 어머니일 거라고 자연스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값이 여전히 존재하던 당시에는 이 문제가 넌센스 퀴즈와 같이 받아들여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만큼이나 인간의 기본값은 강력한 뿌리를 갖고 우리 머릿속에 자리하게 됩니다. 재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배운 화재 대피 요령에도 인간의 기본값이 들어가 있습니다. 계단으로 대피하라는 말은 ‘휠체어를 타지 않은 사람’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EC%9D%B4%EB%AF%B8%EC%A7%80_1.jpg?type=w800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 STUDIO GURU의 「안전교육 때 대피해본 적이 없다」 영상 캡쳐 [3]


이때, 휠체어를 탄 사람의 대피 방안은 논의에서 제외되기 일쑤입니다. 인간의 기본값 때문에 약자는 그 존재마저 인식되지 못한 채 무방비 상태로 재난 상황에 놓입니다.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에서 발행한 『장애인 재난위기관리 매뉴얼 – 지체장애인용 -』을 예시로 살펴봅시다.[4] 이 책에서 제시한 화재 대처 방안의 첫 번째 요령은 “사고 발생시 안전벨을 누르고 도움을 줄 사람(소방공무원, 활동보조인)을 기다릴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이동 방법에 대해 언급한 것은 “연기 나는 곳을 통과할 경우, 기어나갈 것”뿐인데, 건물의 층계를 내려가거나 올라가야 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특히 “사고 발생 시 움직이지 않기”라는 요령은 긴급상황을 대처하는 방안으로서 현실성과 구체성이 결여된 매뉴얼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사회의 그늘로 밀려나 있던 사람들은 코로나 19 상황 속에서도 대책 없는 위험 속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코로나 19에 관한 중앙대책방역본부 브리핑은 열흘이 지나도록 수어 통역 없이 방송되었고 청각장애인들은 감염병에 관해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5] 비슷한 문제는 브리핑뿐만 아니라 선별진료소에서도 발생했습니다. 대부분의 선별진료소에는 수어 통역이나 영상전화기가 제공되지 않아 청각장애인은 코로나 19 검사나 상담, 문의, 정보를 받을 수 없습니다. 만약 청각장애인이 확진을 받으면 병원이나 생활 격리 치료소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테지만, 아직까지도 감염병 관련 모든 과정에서 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사실상 부재한 상황입니다.[6]


두 번째 인식의 문제는 약자의 이질성에 있습니다. 재난안전약자는 고정된 개념이 아닙니다. 재난안전약자의 취약성은 다양한 요인을 통해 발생하며,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재난안전약자라는 개념 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약자들 사이에도 필연적으로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들을 단일한 개념으로 뭉뚱그려 인지한 채 대책을 마련한다면 결국 누군가에는 무의미한 대책이 제공될 것입니다. 재난안전약자라는 개념 속에도 다양한 층위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 간과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사회적 변화에 따라 재난안전약자의 범위가 축소, 확대,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어야 합니다.



%EC%9D%B4%EB%AF%B8%EC%A7%80_2.jpg?type=w800 뉴스피처, 「배달하다 응급실까지... 코로나보다 무서운 택배 폭탄」, 『연합뉴스』, 2020.3.20.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고 사람들은 외부활동을 최대한 자제하며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직업적 특성상 재택근무가 어려운 사람들, 즉 사회적 거리 두기가 불가한 사람들은 이러한 대처 방안에서 고려되지 못했습니다. 특히 택배 노동자들은 재택근무가 불가할 뿐만 아니라 급증한 노동량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부담까지 안고 있습니다. CJ대한통운 광주광역시 장수터미널에서 근무하는 한 택배기사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저만 해도 코로나로 인해 물량이 15~20%가량 늘었다”며 “코로나 때문에 ‘문앞 배송’을 원하는 고객들이 많아 휴식시간도 없고 퇴근 시간은 더 늦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건설 현장도 코로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나덕철 중소현장 건설사 대표는 “작은 현장에서는 열 감지 기계 비용 때문에 거의 체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를 관리할 수 있는 혈압 측정기, 열 감지기는커녕 손을 씻을 수 있는 화장실조차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대다수 일용직으로 구성된 직종의 특성상 출근자가 매일 바뀌기 때문에 개개인의 신원 파악이 어렵고 확진자가 발생해도 추적하기가 상대적으로 힘듭니다. 한국어가 서툰 이주노동자들은 코로나 19 관련 정보나 지원 방안 등을 아예 모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7]


이처럼 재난안전약자로 포괄되는 사람들 내에서도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은 제각기 다릅니다. 재난안전약자에 대한 심층적인 해석은 대처 방안의 실질적인 활성화를 위해 꼭 필요합니다. 재난안전약자를 ‘고려하고 있다’라는 겉만 번지르르한 말을 넘어 실제로 재난 상황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기본값과 약자의 이질성이 반드시 인식되어야 합니다.



모두, 그리고


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 코로나 19가 우리의 일상을 빼앗아갔다고 생각되는 요즘, 코로나 이전의 ‘평범한’ 삶을 원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각자의 평범한 삶은 다르겠지만, 그중 안전한 삶을 전제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안전하지 않은 사회를 평범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감염병 확산에 대한 공포가 자리한 현재를 평범하지 않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안전이란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우리 삶의 전제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안전하게 살기 위해 ‘누가 포함되었는가’보다 ‘누가 배제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둘은 당연하게도 같은 답이 나와야 하는 질문이지만, 전자의 질문을 통한 논리는 약자 아닌 자의 기본값에 빠지거나 약자의 이질성을 인지하지 못할 위험성이 큽니다. ‘모두’의 안전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안전을 통해 완성될 수 있습니다.


모두를 포함하기 위해서는 약자에 대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고려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간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온 존재와 연대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인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누구도 안전으로부터, 삶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을 때까지 약자의 존재 양상은 더욱 뚜렷하게 각인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 여전히 살아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 모호한 개념의 사용과 용어의 혼용은 정책적 측면에서 혼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분명 개선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글은 재난안전약자라는 용어의 복수성이 아니라 재난안전약자 문제 해결을 위한 인식적 논의에 관한 것이므로 「재난안전약자의 보호 및 지원체계 개선방안 연구」에서 사용된 ‘재난안전약자’라는 용어를 차용하고자 합니다. 이 용어는 재난 및 안전에 취약한 대상에게 일반적인 재난안전관리와는 구별되어 특수성과 차별성을 띠는 중점적 개별관리가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최경식, 「재난안전약자의 보호 및 지원체계 개선방안 연구 = A Study on Improvement of Protection and Support System for Vulnerable People to Disaster」, 원광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6, 20쪽.)

[2] 이승준, 「턱 막힌 대피로 턱 없는 매뉴얼」, 『한겨레21』, 2019.05.13.,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7045.html).

[3] 학교에서 화재 대피 훈련을 할 때 비장애인 학생들은 지하나 바깥으로 대피 훈련을 진행하는 반면, 휠체어를 탄 자신은 혼자 교실에 남아 있어야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4]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 장애인 재난위기 관리 매뉴얼 – 지체장애인용 - , (http://ebook.seoul.go.kr/Viewer/F93YTNY6F4P0/).

[5] 김철환, 「코로나 브리핑, 화면에서 사라진 수어통역사」, 『시사주간』, 2020.02.11., (https://www.sisaweekly.com/news/articleView.html?idxno=30716).

[6] 박승원, 「코로나19 불안에 선별진료소 찾아갔지만, 청각장애인은 ‘어리둥절’」, 『비마이너』, 2020.03.27., (http://beminor.com/detail.php?number=14514).

[7] 서효선, 「열 감지기도, 세면대도 없는 중소형 건설 현장, '코로나19 비상’」, 『TBS 뉴스』, 2020.02.14., (http://tbs.seoul.kr/news/newsView.do?typ_800=6&idx_800=2384798&seq_800=10377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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