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정돈 튜브
튜브 저는 69호 독자 모임을 정리하는 일을 맡아서 오게 된 튜브고요, 현재 문우의 부편집장을 맡고 있습니다.
유연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호에 유연이라고 실렸고, 이 글을 쓰느라 엄청나게 고생해서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현재 문우 편집장을 맡고 있어요.
데어 저는 원래 다른 글을 쓰다가 던지고 ‘쓰레기를 찾습니다’라는 글을 썼어요. 데어라고 불러주세요.
비상 저는 69호에서 필명이 비상이라고 되어있고요, 69호에 제가 참여한 글이 꽤 있어서 멀리 있지만 비대면으로라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찌부찌 안녕하세요. 저는 문우 필명이 찌부찌였고요. 제가 찌부지라고 소개를 할 수 있는 공간에 올 수 있어서 너무 영광입니다.
모 저는 모라고 하고요. 저는 문우에 글을 쓴 적도 없고, 문우 소속이었던 적도 없고, 심지어 이 학교 소속도 아니지만 찌부찌랑 친분이 있어서 문우를 계속 읽고 독자 모임에 여러 번 참석했었어요. 그 뒤로 한참을 못 읽고 있다가 이렇게 참여하게 돼서 참 기분이 미묘하네요. 돌고 돌아서 대면 모임을 하게 되다니.
비(飛) 저는 비(飛)라고 하고요. 단(丹)의 친구로 왔고 문우나 해당 학교에는 완벽한 타인이에요. 그런데 오늘 친구의 덕으로 이렇게 재밌는 경험할 수 있게 돼서 정말 반갑고,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단(丹) 저는 단(丹)이고요. 69호는 카드 뉴스 만들면서 잠깐 봤었는데, 이번에 다시 한번 읽어보고 완전한 독자 입장으로서 참여를 해보고자 왔습니다. 저희 문우 가족들이 얼마나 글을 고생하면서 썼는지 알기 때문에 정말 수고 많았다고 칭찬 날려주려고 껴봤습니다.
도토리 저는 올해 초에 들어온 문우 수습 편집 위원 도토리입니다. 69호 독자 모임이 실리게 될 70호에 도토리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게 될 것 같아요.
포슬 안녕하세요. 저는 포슬이고, 저도 예전에 문우 했었던 사람입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돼서 너무 반갑고 좋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비상 ‘울렁이는 지구 위에서’라는 제목을 정하게 된 이유가, 우리가 혼란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느낌을 최대한 담으려고 했었거든요. 처음에 ‘어쩌고 저쩌고 지구 위에서’라는 틀을 짰단 말이에요. 앞에 무슨 수식어를 붙여야 하나 얘기가 많이 나왔었어요. 최종적으로 ‘울렁이는’이 선정이 됐죠. 싫다고 생각을 한 건 아닌데, 당시에 ‘우리 의도가 제대로 전달이 될까?’라는 걱정이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이 제목 자체, ‘울렁인다’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했거든요. 엄청나게 긍정적으로도, 엄청나게 부정적으로도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울렁이는’으로 정했어요. 근데 보면 볼수록 그 뜻이 잘 담긴 것 같고 구현이 잘 된 것 같아서 저는 이번 호 제목이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모 저는 처음 봤을 때 사실 ‘울렁이는’이 그렇게 잘 쓰이지 않는 말이고 낯선 조어라서 표지만 봤을 때는 의미가 확 와닿진 않았거든요. 근데 편집장 서문에서 왜 이런 단어를 썼고, 어떤 의미인지 다 설명이 된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전체적인 글의 내용들이랑도 결이 잘 맞는 제목이라고 느꼈어요.
비(飛) ‘표지 디자인이 정말 내 취향이다’라고 느꼈어요. 유화 느낌이나 잉크 번지는 느낌을 좋아하거든요. 또 이런 볼드체가 표지에 적혀 있는 걸 좋아해서 디자인 정말 이쁘게 뽑혔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평소에 속해 있는 동아리는 없는데, 각종 교지 편집위원회나 동아리에서 회지를 내면 그걸 구경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읽으면서 이 회지를 내면서 몇 달의 시간이 걸렸겠고, 몇 번의 수정이 있었겠고 하는 게 느껴졌어요. 누군가 몇 달 동안 고생해서 만든 걸 구경할 수 있다는 게 재밌었어요. 제목이 ‘울렁이는 지구 위에서’인데 이게 편집장 서문에 흰색 바탕 글씨체로 네모 칸에 들어있잖아요. 그 부분이 좀 인상적이었어요. ‘회전의 기준이 되는 자전축마저 움직이는 지구 위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와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맵니다.’ 라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어요. 우리가 각자 지구에 어떤 자세로 있든 간에, 땅바닥에 붙어 있든 공중에 떠 있든 그냥 지구 자기장 안에 있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찌부찌 ‘울렁이는’이라는 말에서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의미를 주지 않고 싶다고 얘기를 해 주셨는데, 제가 제목을 보고 제일 먼저 떠올린 건 멀미였거든요. 이 지구가 그냥 보기에는 하나도 안 울렁거리고 평평해서 여기서 느끼는 미묘하고 이상한 지점이나 메스꺼움 같은 기분 나쁨을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잖아요. 근데 ‘지구가 울렁이고 있다’라고 전제를 함으로써 ‘이곳은 내가 멀미를 할 수 있는 공간이고, 나는 여기서 이런 자세를 취해야겠다.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겠다.’라는 대비책을 세울 수 있게 해주는 느낌을 받아서 제목이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비상 이번 호에 되게 다양한 내용이 나오잖아요. 권두시가 모든 글을 아우르는 역할을 해내야 하는 거라서 걱정했었어요. 유연의 능력을 걱정했다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걱정이 있었는데, 막상 나온 걸 보니까 ‘잘 썼는데?’ 싶어서 기분이 좋았던 생각이 나요. 지금의 권두시가 이번 호에 전체적으로 잘 붙는 느낌이어서 좋았어요.
찌부찌 저는 글들이 ‘그래, 나 이렇다 어쩔래’ 이런 느낌으로 읽혔거든요. ‘나는 이렇게 고민하고 있고, 나는 이렇게 애매하다.’라는 톤으로 읽혔는데 이 지점이 권두시에서 똑같이 드러나서 좋았어요. 내가 지금 느끼고 보고 생각하는 걸 포장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봐라 이게 내 건데 어쩔래’ 이런 느낌으로 보이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데어 저 마지막에서 두 번째 연에서 유연이 와르르 뱉어내는 그 단어들이 좋아요. 저는 원래 시에서 그런 것들을 좋아해서 너무 좋았습니다. 제 취향이에요.
유연 보통 권두시는 피드백을 안 받고 진행하는 편이거든요. 근데 저는 피드백을 좀 받고 싶었어서 편집 회의 독스에다가 올렸는데 피드백으로 아마 비상이 ‘진짜 미안한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라고 달았더라고요. 근데 저도 그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 시는 그냥 읽으시길’이라고 달았던 기억이 납니다.
비상 지금 돌이켜 보니까 저는 그 당시에 그게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시를 읽다 보면 ‘이거 뭔 말이고?’ 이러면서 읽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이 권두시랑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무슨 말이지?’ 싶은 걸 고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좋았어요.
단(丹) 저는 비상의 편집장 서문을 읽을 때마다 비상이 문우의 글 하나하나, 그리고 글 쓴 사람들 하나하나를 엄청나게 아끼고 좋게 본다는 게 느껴져서 되게 좋았어요. 그래서 편집장이 이 호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애정을 쏟았는지, 그리고 일로써 보는 게 아니라 '우리 문우 정말 좋은 사람들이다, 소중하다'고 여기는 게 느껴졌어요. 이 글을 보면서 비상이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유연 저도 비상의 책임감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이때 편집위원의 수가 너무 적고 마감도 계속 밀렸는데, 비상이 단체 채팅방에서 무한히 '여러분, 이때까지 하셔야 해요.' 하면서 재촉을 많이 한 편이었어요. 이 호가 유독 더 그랬어요. 근데 그러기가 되게 힘들잖아요. 편집위원들끼리 다 친분이 있는 사이에서 업무적인 재촉을 한다는 것이 충분히 부담될 수 있는데, 어떻게든 해내서 이 호를 출간했다는 것이 저에게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찌부찌 다른 분들의 말에 다 동의하면서, 개인적으로 마지막에 '당신의 울렁임이 당신을 상처 입히지 않기를 바라며'라는 말이 되게 와닿았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울렁임이라는 건 자기 자신만 아는 거잖아요. 제가 멀미를 해도 제 옆 사람이 멀미를 안 하면, 제가 아무리 괴로워해도 옆에 있는 사람은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럴 때 '왜 나만 멀미하지? 왜 나만 울렁거리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런 식으로 나를 상처입히지 않고 '내가 이런 상황에 있구나. 그러니까 이렇게 해야지'라는 쪽으로 가게끔 한다는 점에서 이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비상 사실 누군가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 제일 많이 고민했거든요. 이전 호들을 보면 편집장들이 다들 마지막 코멘트를 달더라고요. 다들 간지나게 썼길래, 나도 간지나게 써야 한다고 고민하면서 나온 결과물인데 누군가 그렇게 읽어주니까 너무 좋네요.
포슬 잡지나 논문집 같은 것을 읽을 때, 이 기획이 어떤 바탕에서 나오게 됐을지 항상 생각하게 된단 말이죠. 왜 이 주제를 정했고, 사람들이 다 같이 어떤 논의를 거쳐서 이런 글들이 됐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항상 있었어요. 그런데 편집장 서문에서 세미나를 소개해 주고, 어떤 고민 위에서 이렇게 다양한 글들이 나오게 됐는지 설명해 줘서 좋았어요. 제가 썼던 편집장 서문은 나온 글들을 어떻게 엮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거였고, 글을 쓰는 전체적인 기획 과정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비상의 편집장 서문에서 그런 사항들을 볼 수 있어서, 독자로서 되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비(飛) 저는 이 글에 첨부된 트위터 캡처 글들을 보고 매우 공감하면서 읽었어요. 트위터라는 SNS를 예시로 들었을 때, '좋아요'를 눌렀던 트윗들이 몇 분 지나고 보니까 서로를 비판하고 싸우는 글이었던 적이 꽤 많았어요. 누군가의 트윗을 보고 '나도 이렇게 생각해. 이 사람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구나'라고 느끼면서 마음을 누르고 피드를 내려요.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트윗을 보고 '이런 일이 있었구나'하며 공감하거나 지지하는 의미로 또 마음을 눌러요. 근데 잠시 뒤에 타임라인에 그 글들이 다시 돌아와요. 근데 알고 보니까 둘이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단편적인 글 하나씩만 봤을 때는 둘이 같은 이야기를 하거나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글 하나에서만 비슷하다고 느꼈던 거였죠. 그래서 '나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다들 이렇구나' 하면서 공감하는 마음으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비상 우리가 페미니즘의 발전 역사를 이야기하면, 보통 제1 물결, 제2 물결과 같은 식으로 미국이나 서양 중심으로 정리가 된 페미니즘의 역사를 주로 보게 되잖아요. 그런데 한국의 역사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보다 정리가 덜 되어 있는 상황이고, 그래서 유연이 글 쓰면서도 한국의 페미니즘 역사를 정리한다고 엄청나게 고생했던 걸로 알아요. 저도 이게 궁금했던 주제였거든요. 한국에서 어떻게 인터넷 시대까지 페미니즘이 변화해 왔고, 양상이 바뀌어 왔는지가 궁금했던 주제였는데, 그것을 굉장히 열심히 조사해서 잘 녹여낸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러한 부분들이 잘 정리됐다는 점에서도 저는 이 글이 되게 좋았어요. 정말 품이 많이 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새삼 '품이 많이 들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글이었습니다.
모 저도 비상이 말한 것처럼 읽으면서 '진짜 고생 많이 했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되게 복잡하고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내용인데, 읽으면 거의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써놓은 것 같아요.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쓰는 건 쉬운데, 어려운 내용을 쉽게 쓰는 건 진짜 어렵잖아요. 그래서 유연이 진짜 고생을 많이 했겠구나 싶었고, 저는 맨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글들이 되게 좋았어요. 거기에 줄을 쳐놨었는데… "반드시 '어떤 페미니스트' 되기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덜 공부해서, 덜 활동해서 아직 확고하게 자신을 특정 이름으로 정의 내리지 못했다는 불안감 없이요."라는 말이 되게 좋았어요. 저도 이런 고민을 한창 하던 시기가 있었고, 지금은 그걸 약간 내려놓은 상태거든요. 지금은 '될 대로 되라지.'하는 상태인데, 한창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을 때 읽었으면 되게 힘이 많이 됐을 글인 것 같아요. 너무 좋았어요. 한 5년 전쯤, 이 글을 읽었으면 제가 고민을 덜 하진 않았겠지만, 부담을 느끼지 않고 고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되게 많이 하면서 읽었던 것 같아요.
포슬 제가 문우에서 '시선의 좌표'에 글을 실었을 때, 『장애학의 도전』을 한 학기 내내 읽었고 장애로 글을 쓰라고 선배들의 지시가 내려왔어요. 그런데 제가 연세지인지 015B의 호를 보고 인터뷰 기사도 보게 되면서, 이론적인 내용, 재현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인터뷰를 쓰고 싶다.', '우리 학교에 대한 내용을 쓰고 싶다.'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어요. 그래서 장애인권위원회에도 연락하고 여기저기에 인터뷰 요청을 했었어요. 그때 들었던 생각이 한 학기 동안 장애학 공부를 하면서 장애에 대한 도식적인 이해들을 갖게 되었는데, 이런 이해들과 지금 우리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일들 사이에 간극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이론적인 언어들이 있는데 그것이 실제 세상에 맞닥뜨렸을 때 잘 안 붙는 것 같았고, 내가 믿는 것을 좀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고 싶은데 그것이 잘 안 찾아지는 상황들에 대한 글이라고 생각했어요. 제1 물결, 2 물결, 3 물결이 서구에서 정리됐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그 물결들이 계속 중산층 백인 여성 중심이었잖아요. 추후에 그것들이 계속해서 외연을 확장해 나가고, 점점 많은 피부색과 좀 더 많은 계급과 여러 국가들의 여성들이 들어오면서 계속해서 변화해 나가는 과정이었던 것이잖아요. 근데 유연이 이번 글에서 정리한 것도 계속해서 '이 사람도 여자이고, 이 사람도 여자이고, 이 사람도 여자인데. 그렇다면 여성은 어떻게 정리되어야 하는거지? 페미니즘 운동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 거지?'라는 맥락에서 변화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유연의 결론에서 자신을 확고하게 특정 짓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활동판에 깊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활동판도 약간 비슷한 것 같아요. 다들 빈곤 의제 아래에서 모였다고 해도 가만히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자 생각하고 있는 게 다르고 동상이몽하고 있어요. 그래도 어쨌든 동의하니까 일단 가는 거죠. 각자의 맥락과 어떠한 것들이 너무너무 다른데, 어쨌든 하나의 믿는 방향이 비슷하니까 같이 가고 있는 거잖아요. 활동판이라는 것도 그렇게 서로 섞이고, 엄청나게 서로 다르고, 그 사이에서 또 막 잡음이 있는 곳일 텐데, 활동을 더 했는지 덜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인권축제에서 북토크를 했었는데, 인상적이었던 말이 "서로 어떤 공동체든 사람들이 다들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근데 중요한 것은 그 말들을 서로 나누고 섞이고 서로 오염되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얘기했던 것이 있거든요. 저도 유연 글을 읽으면서 중요한 것은 그거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내가 오히려 너무 확고하게 서 있으면 오염될 수가 없는 거잖아요. 유연이 주장하는 건 섞일 수 있는 여지를 많이 열어두자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 되게 재밌게 읽었던 것 같아요. 그때랑 지금이랑 제가 많이 달라지기도 해서요.
데어 유연이 이 글을 쓰려고 엄청 두꺼운 책들을 동방으로 계속 들고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옆에서 봤는데 보면서 '절대 못 읽겠다. 『페미니즘과 지리학』이 대체 뭐야?' 싶었거든요. 편집위원이 완전히 새로운 주제에 대해 글을 쓸 수도 있지만, 본인이 이렇게 공부한 것에 대해 번역해서 다시 재전달하는 것도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서, 유연의 목표를 생각해 봤을 때 저는 목표에 되게 잘 맞게 썼다고 생각했어요.
찌부찌 전체적인 글의 흐름이나 구성에서 유연의 의식의 흐름이 보여서 좋았어요. 고민의 흐름이라고 해야 하나. '처음에 트위터 같은 것을 하면서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공부를 했어. 그래서 내가 공부한 내용은 이거였어. 그랬는데 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역시 정답이 없다. 그래도 괜찮지 않나, 이게 난데. 어쩔래.' 약간 이런 마인드로 전개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되게 솔직해 보여서 좋았어요. 이 글을 읽으면서 제가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가 생각이 났는데, 그때 한창 페미니즘 의제가 막 떠오를 때쯤이어서, 저도 다들 페미니즘 좋다 하니까 '나도 좋아, 해보자!' 하고 일단 했어요. 근데 사람들이 "그래서 너는 어떤 쪽인데?"라고 얘기를 하면 답을 못했고, 내가 어느 쪽에도 동조하지 못하는게 '공부를 덜 해서 그런 거구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페미니즘 강좌들을 막 들으러 다녔어요. 결국 이 글에서 유연이 공부한 과정이 그런 거겠죠. 그런데 그걸 다 듣고 나서도 모르겠는 거예요. 강좌 할 때 난 분명히 돈도 내고 열심히 들었는데. 그래서 여전히 저는 이 사람들이 싸울 때마다 거기서 '어쩌면 좋아, 싸우지 마세요.' 이런 역할만 하고 있고 그랬어요. 그랬는데 그런 나의 존재, 조금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계속 생각하고 있는 나의 존재를 긍정하고, '그래도 이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라고 생각하게 되는 게 건설적이고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연이 글에서 보여주는 의식의 흐름이 유연만 갖고 있는 게 아닐 수도 있고, 정말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환경에서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일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페미니즘이라는 걸 접해봤을 때, 그런 의미에서 공부와 고민의 치열한 고민의 과정을 보여준다는 게 되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5. [메인기획]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의 파도 아래 / 이해
비(飛) 저는 되게 재밌게 잘 읽었어요. 근 몇 년 새에 방영하는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위험 추구가 낮고, 일정 값 이상의 성공이 보장되는 장르가 저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프로그램이 지금 1~2년 동안 짧고 굵게 유행하는 게 아니라 벌써 한 7~8년을 훌쩍 넘겼잖아요. 제 이야기를 조금 하게 될 것 같은데, 저의 경우에는 올해 처음으로 연애 프로그램을 시청하기 시작했고요, 벌써 2개의 프로그램을 봤어요.
유연 뭘 봤나요?
비(飛) 올해 3월에 '연애 남매'라고 하는 JTBC랑 웨이브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6월 종강 이후에는 SBS에서 방영했던 '신들린 연애'를 봤어요. 반년을 내리 예능 프로그램을 감상했는데요. 보게 된 계기는 우연히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친구가 틀어주는 대로 오마카세를 받았는데, 같이 연애 프로그램 1화를 시청하니까 2화가 보고 싶어진 거예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되었어요. 저는 연애 자체에 매력을 느끼지만, 그 행위를 직접 이행하는 것에 있어서 많은 귀찮음과 무기력을 느껴서 연애를 아예 안 하는 사람이거든요. 인간관계에 있어서 저는 내 사람이라고 하는 범주 내의 사람에게는 정말 많은 허용을 하기 때문에 굳이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 않더라도, 범주 내의 사람과 보통 연인 간에 진행되는 정서적 교감이나 발달 정도를 습득하기 때문에, 연애하지 않아도 충족이 돼요. 그래서 저는 사람을 범주에 들일지 판단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겨요. 인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게 첫 번째로 인격, 성품이면서 안광을 보곤 하거든요.
유연 다들 눈을 피하기 시작해!
비(飛) 이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긍정적으로 감정을 가지는 연애 대상이 적고, 설령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더라도 좋은 사람, 연애하면 괜찮을 것 같은 사람에서 생각이 끝나고 더 발전하지 않아요. 사람이 마음에 드는 기준이 복잡하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낮다 보니까 연애 프로그램을 통해서 대리 만족을 하면 쉽게 연애 욕구가 해소돼요. 만약 총 16부작인데 8편까지 보면 전반적인 틀이 보이게 되고, 그러면 '할 만큼 했다' 싶어서 채울 만큼 즐거운 감정을 다 채우고 그만 봐도 되겠다 싶어요. 남이 연애하는 거 기승전결에서 전까지 다 구경했네. 할 만큼 했네 싶어요. 영화나 드라마 등장인물 보듯이 몇 시간 안에 끝날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보거든요. 너무 큰 감정을 쏟지 말고 즐거움만 얻어가자고 생각해서 대리만족했어요.
그리고 연애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전과 다른 생각이 들었던 게 있어요. 예전에는 정말 연애 얘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형식이 인간 관찰처럼 되고, 인터뷰도 하니까 인간상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휴먼 다큐멘터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찰자의 시선에서 몇십 명을 볼 수 있잖아요. 그 특정 기간에 무의식중에서 누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고, 몇 주간 이어진 행동들이 어떤 인식을 바탕으로 행해졌으며, 어떤 결과들을 탄생시켰는지를 구경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어떤 심리상태를 기반으로 어떤 행동이 나타났는지, 그 상태에서 어떤 선택지들이 나타나는지도 볼 수 있어서 즐거웠고요.
유연 연애 프로 보시는 게 맞죠?
비(飛) '인간 본성은 이렇구나~ 휴먼 다큐~ 인간은 이렇구나~' 하면서 인간을 알아봤고, 연애 심리 충족해서 도파민도 채워졌네. 나는 안 해도 되겠다. 생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어서 제가 참 재미있게 봤었던 것 같아요. 재밌는 글이었어요.
포슬 저는 다시 읽으면서 느낀 게 '진중한 연애라는 게 뭐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것 같아요. 글의 말미에도 어떤 진중한 연애를 해야 한다는 식의 결론이 나오는데, 진중한 연애라는 것에도 상당히 많은 어떤 규칙들과 규범들이 있잖아요. 그것들을 좀 더 살펴봤으면 더 재미있는 기획이 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연애 프로그램을 보진 않지만, 친구들이 하는 얘기들을 들어보면, 방송의 일부만을 보여주는 클립에서 남자가 어떤 행동을 한다면, 댓글에서 '저 남자 너무 방어적이다.' 아니면 '저 남자 너무 여우짓 한다.' 이런 식으로 평가를 한대요. 그 하나의 행동을 가지고 그 사람에 대해서 '방어적이다'라고 평가를 할 수 있고, 그 행동이 왜 나왔는지 다른 사람들이 계속 평가하는 게 너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식의 평가들이 결국 연애하는 데 있어서 어떤 규칙들이 있고, 어떻게 행동해야 맞는 것인지 등을 많이 보여준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만약에 이해 님이 글을 조금 더 구체화할 생각이 있으시다면 이 글에서 던졌던 어떤 연애 상과 연애 모습에 대한 질문들을 조금 더 가지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연애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연애의 모습들, 연애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풀어보면 재밌는 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단(丹) 저는 제 입장과 비교를 해가면서 연애 프로그램을 봤는데, 뭔가 시간이 지날수록 저나 제 주변이 어떤 사람하고 연애 관계를 맺는 것에 관해서 부담을 덜 가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옛날을 생각해 본다면 인간관계가 문제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그 사람을 봐야 했기 때문에 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 자체부터 무척 신중했던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그 사람과 다시 안 볼 수 있도록 활동 반경을 바꾼다거나, 연락처를 차단하는 등의 수단들이 많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서 가볍게 접근하려고 한다고 생각해요. 마트에서 상품을 사려다가 '뭔가 이거 별로인 것 같아. 나 그냥 이거 안 살래.' 이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을 선택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연애 프로그램을 보면 항상 누군가가 누군가를 선택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이 사람은 누구를 선택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나오는데, 사실 프로그램 밖에 실제 관계에서는 서로에게 접근하는 거지 선택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선택했을 때, 제삼자가 중계를 해주는 것도 현실에서는 없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서 연애 관계에 대한 어떠한 명확성을 얻고 싶어 하고, 누군가를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는 과정에서 어떠한 단순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넷 쇼핑몰에서 쇼핑할 때 장바구니에서 빼기 버튼 누르는 것처럼 사람을 선택하고 싶어 하는 요구가 이어지면서, 이러한 연애 프로그램의 장기적인 흥행까지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요.
유연 저는 이 글 피드백에도 참여했었는데, 다시 읽으면서 '리얼리티가 뭐지?'라는 질문이 들었어요. 이미 이 장르 자체가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으로 명명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리얼리티, 리얼리즘이라는 거에 대해서 궁금하게 되어서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리얼리티에 대한 고민이 있었으면 글을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모 이 글 기획 자체가 그동안 문우에서 얘기했던 주제들이랑 좀 다르잖아요. 문우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글이라 '이게 뭐지' 싶었어요. 저는 연애 프로그램을 보는 편도 아니고, 굳이 얘기하면 째려보고 있는 편에 가까워요. 저희 동생이랑 맨날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지만 저거 이성애 정상성 프로파간다라고 보긴 하는데… 제가 그걸 안 좋아해서 더 잘 다가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어요. 근데 그걸 빼놓고 봐도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지만은 않다고 느꼈거든요. 연애 프로그램을 주제로 할 수 있는 얘기가 많고, 더 깊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왜 연애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고, 우리는 이거를 바탕으로 어떤 연애를 추구해야 하는가에서 되게 급하게 끝맺은 느낌이 나서 아쉬웠어요.
튜브 저는 연애 프로그램을 조금 보거든요. 대부분 10일 안에 이루어지는 일들을 16부작으로 늘려서 방영해요. 저는 그것을 알고 있는데도 긴 시간 동안 그 상황이 지속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 글을 읽으면서 '맞아, 2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있었던 일인데 어떻게 그 짧은 시간 동안 저 사람에 대한 호감을 정리하고,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연애를 약속하고 미래를 약속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연애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 사람들에게 연애 프로그램이 가진 어떤 문제점을 짚어주긴 해서 재밌게 보았고, 재밌게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줄 만한 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비상 제가 1학년 1학기부터 문우에 계속 있었는데 필명을 매 호마다 바꿨어요. 이 호에서 비상이라고 한 이유는 살짝 제 글이 그런 느낌이잖아요. 비상하고 싶지만 날아오르고 싶지만 내 상황은 비상이다. 그런 의미로 비상이라고 썼었습니다. 나는 비상하고 싶지만 난 졸라 비상사태다. 제가 이때 그냥 개 힘든 상황이어서 이 글을 토해내고 말아야겠다 하면서 열심히 쓴 글입니다.
포슬 저 이 글 진짜 좋아해요. 이 글과 관련해서 얼마 전에 트위터(X)에서 무슨 3만 원 내고 키배 배우기 그런 글이 돌았었어요.
유연 트위터에서 좀 유명하신 것 같은 분이 여성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가 키배 드는 법을 배워야 하니까,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가 가능하고, 3만 원 내면은 자기가 키배 뜨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한 트윗이 있었어요.
포슬 그런 맥락이 있었는데, 사실 비상이 사회화가 된 과정, 퀴어로서 사회화가 된 과정도 어쨌든 인터넷을 통해서였고 유연 역시 글을 시작하는 어떤 증거로 삼고 있는 것도 트위터잖아요. 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젠더론’ 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나는데요,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젠더론이라는 게 사실 굉장히 모호한 말이잖아요. 뭐가 ‘젠더론’인 거지? 젠더론이라고 얘기를 할 때는 나는 특정한 입장이 있는데, 나의 반대편 입장을 이론화하는 게 젠더론인 것 같고, 결국에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어떤 입장을 젠더론 안 산다라고 표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내 입장을 어떤 이론이나 정체성 같은 것들로 설명하는 것도 큰 노력과 정성을 들이는 일이잖아요? 인권 담론에 대한 언어들에 대해 접근성이 좋지 않으면은 특정한 방향으로 기울어진 생각을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트위터(X)에서는 그냥 140자 안에 이렇게 다 설명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 트윗 하나로, 그 사람의 삶의 맥락들을 쭉 떼놓은 상태로 이거 하나만 이렇게 탁해놓으면 그게 바로 나의 입장이 돼버리고. 모두가 같은 삶의 조건 속에서 그런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설명이 되는 것 같고.
저는 사실 비상의 어떤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인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상이 자기 삶의 맥락들과 그 안에 있는 어떤 고민, 힘듦, 정신병, 어려움들이 있었다는 것을 다 설명을 해주는 이 글이 좀 더 비상이라는 사람을, 비상이 갖고 있는 입장들을 잘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 것 같아요. 그게 꼭 유연의 말처럼 ‘난 교차성 페미니스트야’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게 아니더라도 이게 훨씬 더 저는 비상의 입장을 이해하기에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비상이라는 사람을 좀 더 잘 알게 돼서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저는 진짜 비상의 글을 정말 좋아해요.
유연 저는 이 글이 제 기획이랑 같은 호에 실려서 진짜 좋았다고 생각하고요. 왜냐하면 앞에서 나 페미니스트인 것 같은데 모르겠어, 맞을까? 약간 이런 글이었다면, 이걸 읽고 나서 비상 글을 읽었을 때 글 맨 처음에 “비상은 사실 페미니즘 그런 거 잘 몰랐다. 대충 좋은 거라고는 하는데 나한테 저렇게 시비를 터는 거 보니까 일단 대다수가 개새끼 같다”라고 시작을 하는 글이 정말 좋았고요. 그런 다음에 이제 “페미니즘 그런 거 이제는 중학교 때보다 더 알게 되었다”라고 넘어가는 흐름이 정말 좋아서, 제 기획이랑 같이 실린 게 연관성이 있는 것 같아서, 이어지는 것 같아서, 그 지점에서도 이 글이 여기에 실렸다는 게 좋았고. 그러고 저도 포슬이 얘기한 것처럼 비상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해하는 데 많은 지침서가 생긴 것 같아서 좋고요. 사실 저는 글에 적힌 내용들을 이미 많이 알고 있기는 했지만, 본인의 입으로 언어화한 글을 읽는 건 또 다르잖아요. 비상은 자기 공개를 잘 안 하는 편인데 이 글을 어쨌든 내가 여기에 싣기로 했다는 것이 비상이 문우에 대해서 가진 애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것도 좋았습니다.
데어 저 소제목이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비상이 이 글을 뭔가 애매한, 그 상황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할 수도 있지만, 일종의 자기 긍정이 됐다고 생각해요. 그게 소제목에서 보여서 좋았어요.
모 저는 처음에 –4, -3이 아니라 4, 3, 2, 1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여기 ‘영점으로’라고 돼 있는 걸 딱 보고 어? 해서 앞에 돌아가서 다시 보니까 마이너스더라고요. 그러니까 마이너스에서 영점으로 왔다가 다시 1, 2, 3으로 가는 그 흐름이 너무 좋았어요.
찌부찌 제가 비상을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이 글을 읽었을 때, 지금의 비상이 있기 위해서 뭔가 거친 리츄얼 같다는 느낌을 좀 받았어요. 이거를 내가 언제 한 번 정리하지 않으면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난 여기서 모든 걸 풀고 가겠다, 이런 각오가 느껴져서 좋았고요. 그리고 -2에서 그 문우에 들어간 이유가 너무 현실적이고 와닿고 공감돼서 좋았어요. 특히 마지막에 “다들 똑똑해 보여서 나도 공부해야지”라고 생각했던 지점이 너무너무 저랑 똑같아서. 어떤 의미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문우에 들어갔고 거기서 어떤 거를 느껴서 지금의 비상이 되었는지를 솔직하게 얘기해 주는 것 같아서 좋았고요.
69호 제목이 울렁이는 지구 위에서라고 했잖아요. 이 글이 진짜 울렁거리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약간 그런 거 있잖아요. 이 글 자체가 전체적으로 ‘웩, 나 멀미 나! 나 지금 엄청 멀미하고 있어 얘들아, 그러니까 지금 울렁이는 나를 보라.’ (일동 웃음) 정말로 울렁이는 글을 썼고 이 울렁이는 세상 속에서 당연히 어쩔 수 없이 울렁이고 있는 나를 보여주고 있는 글이라서 정말 좋았어요.
비상 시간의 흐름과 과거 현재 미래를 소제목으로 표현을 해내고 싶다는 생각에 이렇게 음수, 0, 양수로 표현하게 된 거란 말이에요. 그 당시에는 ‘이게 괜찮은 소제목인가? 아무도 못 알아보는 거 아닐까’라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 보니까 괜찮은 것 같고 시간의 흐름도 잘 읽히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 그리고 이런 글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마지막에 “1, 2, 3 숫자를 무한히 세보자”이 파트에서 제가 의도한 대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나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거나 희망을 얻는다거나 내가 이래도 괜찮다거나 이런 감상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찌부찌 제목과 가장 잘 어울리는 글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네요.
유연 이 호의 약간 정체성 같은 느낌이 있죠. 그냥 이 글이 문우에 실렸다는 것도 너무 좋고 비상이랑 같이 대학 생활을 해오면서 변화하는 비상의 모습들을 따라가고 지켜보게 되는 과정과 이 글에 나온 비상의 느낌이나 생각들이 맞물리는 게 있어서 이 글을 정말 좋아했어요.
비상 이 글이 일단 문우에 실렸다는 게 너무 좋아요. 저희 문우 동방 책장에 다른 학교 교지들을 정리해 놓았단 말이에요. 다른 학교 단체들이나 교지들의 소식들도 저희가 파악하려고 하는 편이고, 우리 학교에 있는 다른 단체들에 대해서도 같이 연대해서 활동한다거나 자주 얘기를 하는 편인데, 소위 우리 편이라고 할 수 있는 동아리 중에 페스포트가 있었단 말이죠. 그래서 저도 페스포트가 없어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때 표면적으로 접할 수 있는 정보는 ‘페스포트가 없어진다.’, 이 정도뿐이었으니까 그 이외에 다른 이야기들을 알 수가 없어서, ‘많이 힘드셨던 건가?’ 아니면 ‘우리 대학이 이렇게까지 멸망해 가는가?’ 이런 느낌이 들기도 했고. 소식만으로도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아카이빙 작업을 문우에서 해서 비화 같은 걸 알 수 있어 정말 좋았어요. 페스포트가 없어진 이유 자체가 아주 암담하다거나, 외압이 심해졌다기보다는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해산되면서 전시회도 하고 간 거잖아요. 연세대학교에 운동이라든가, 여러 가지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단체라든가 이런 것들이, ‘아직 시간이 있구나.’, ‘내가 이렇게까지 비관하지는 않아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해준 것 같았어요. 문우도 그렇고, 다른 교내 단체들도 다 같이 [여러 가지] 도모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던 인터뷰였던 것 같아요.
이번 여름호가 나오고 나면은 코로나 시기 전에 했던 업무를 되살려서 교지를 다른 학교들에 좀 보내보려고 했거든요? 코로나 시기에 교지를 발송하는 업무 자체가 굉장히 침체돼서 교지나 단체들이 코로나 때 운영하기 힘들었기도 하고, 없어진 곳들도 많고, 근황을 확인하기도 어려웠어요. ‘없어졌다’라고 말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냥 소식도 뚝 끊기고 지금 뭐 하는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도 없는 그런 단체들도 너무 많았고, 온라인으로 아카이빙 된 자료를 찾을 수 없는 단체도 너무 많아서 그게 너무 아쉬운 거예요. 물론 흔적이 남아 있겠지만 우리에게서 유실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저번 겨울호에 이런 기획을 해서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페스포트가 이렇게 전시회를 열고 해산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이렇게 아카이빙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고 이 글이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하게 됐어요. 그래서 아마 앞으로 우리도 그렇고 다른 단체들이 이런 글을 보고 동력을 얻고 앞으로 할 일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그런 감상입니다.
데어 제 이야기는 비상이랑은 좀 다른 방향이고 페스포트를 끝내면서 인터뷰하신 분들의 의도와도 저는 좀 다르게 느꼈거든요. 저는 이게 너무 슬펐어요. 너무 화가 나고. 제가 연세지를 했었는데, 연세지에 들어가기 전에 연세지에서 중앙대학교 성평등위원회 <뿌리> 해체될 당시에 연대 대자보를 썼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뿌리를 닫는다, 닫으려고 마지막 전시회를 한다. 거기에 연세지 와주면 좋겠다’라고 초대를 받아서, 오프닝 이벤트 이런 걸 갔었어요. 갔는데 한쪽 벽에 연대 대자보를 다 붙여놓으셨더라고요. 그게 약간 화가 나는 거야. 약간 뭐라고 해야 하지, 나의 장례식에서 웃어줘? 이런 마음이 들어서. 이게 말이 돼? 어떻게 웃을 수가 있어! 그래서 약간 강박이 생겼어요. 이런 식으로 단체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서 남겨야겠다는 강박 같은 게 생겨서. 인터뷰를 보면서 이분들 되게 홀가분한 감정이구나, 우리 잘 닫았다, 정말 대단했다. 같은 감정이었는데. 나는 닫는다는 게 너무 슬프고, 통제 불가능성에 대한 불안, 그런 게 생겨서. 의도와는 다소 다른 동력을 얻고 갑니다.
모 닫는 단체가 하나 있을 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랑 밖에서 그걸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게 한 17년, 18년도부터 있었던 일을 쭉 아카이빙 해놓은 인터뷰 기사잖아요. 저는 딱 이 시기에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제 주변 친구들이 총여 폐지 때문에 머리를 싸매는 모습을 보고, 저도 학교에서 연대 대자보 쓰고 다녀가지고. 그래서 이때 당시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되게 잘 기억하고 있었지만 제 안에서 언어화를 못 하고 있었거든요. 오랫동안. 근데 47쪽에 보면 “총여 폐지 담론 진행되는 와중에 사람을 모으려고 해도 총여가 없어진 상태에서 학교의 여론이 이렇다고 쐐기가 박혀버린 거죠”가 딱 그 18년도 그쯤을 설명하는 제일 정확한 말인 것 같아요. 연대뿐만이 아니라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연대 총여 폐지가 되게 크게 이슈가 됐었고, 그것 때문에 대학가 전체의 여성주의 그런 쪽 단체들의 활동이 확 수그러들었거든요. 그걸 기점으로. 그래서 되게 상징적인 사건이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걸 언어화를 못 하고 있다가, 제 언어를 대신 꺼내준 느낌이거든요. 이런 게 아카이빙이 된다는 게 참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형태로 아카이빙이 돼서 참 씁쓸합니다.
유연 제가 이 글의 언협 보도상 추천서를 썼었거든요. 쓰면서 ‘나는 이 기사가 우리 동아리 이번 호에서 잘 쓴 기사라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보도상 후보로) 올릴 거다.’ 하면서 열심히 추천서를 썼어요. 그걸 읽어드리자면 “사라진 동아리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 동아리에 머물던 사람들이 어떤 시간을 함께했는지, 어떤 논의 끝에 동아리가 지속 불가능하다고 결정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본 적은요? 연세대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페스포트는 문을 닫으며 그간의 발자취를 정리해 전시 〈비행 일지〉를 열었습니다. 문우편집위원회가 전시를 취재한 후 인터뷰를 진행했고, 편집위원 어푸가 이를 정리하여 기사로 남겼습니다. 어푸의 기사에서는 페스포트의 경험과 고민이 그 끝과 함께 사라져 버리지 않게 하려는 노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이 기사는 그리하여 계속 연세대학교를 다니며 페미니즘 감수성을 공유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게끔 기록하고자 한 결과입니다. 어푸는 동아리의 재생산 문제, 학내 페미니즘 동아리로서 마주한 어려움 등 무거울 수 있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섬세하고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며 묵직한 인터뷰를 만들어 나갑니다. 그럴 수 있는 까닭은 그 또한 페스포트의 구성원들과 같이 연세대학교라는 공간에서 살아온 동료 학우이자 페스포트와 마찬가지로 대학 동아리인 문우의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비행 일지: 페스포트를 기록하다〉는 대학 언론으로서 쓸 수 있는 가장 유의미한 기사 중 하나일 것입니다”라고 제가 추천사를 썼었거든요. 어푸가 같은 대학 구성원이기에, 인터뷰 대상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같은 일들을 같이 겪은 사람으로서의 인터뷰이기 때문에 이렇게 깊은 인터뷰가 가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문우에서 이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이 어푸뿐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거기 계신 분들이 다 최소 18학번이었는데 저는 학번이 많이 차이가 나요. 그래서 저는 이미 총여 폐지도 다 끝나고 모든 것들이 다 마무리되고 우총필도 없고 그냥 전설로만 듣는 이야기 같은 느낌이었어요.
글에서 그 얘기를 하잖아요, ‘동아리가 지속 불가능하다’라고 판단하게 된 과정에 있어서 ‘나는 그냥 이 공동체가 좋은 공동체였다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전시회 축사를 해준 친구가 동아리라는 건 원래 필요하면 생기는 거고 그때 필요한 사람들이 없으면 그냥 없어지는 거다, 당시 동아리가 필요했던 사람들끼리 서로 잘 지냈으면은 충분히 괜찮은 거다, 라고 축사를 해줬다고 했는데 저는 오히려 이게 와닿았어요. 총여에 관련된 내용보다는 이게 더 와닿아서 충전되는 인터뷰였어요. 인터뷰를 갔다 오고 나서 우리가 책임지기 힘들면 그냥 동아리를 닫을 수 있는 거구나. 내가 힘들면 닫자고 논의를 할 수 있는 거구나 내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니구나, 그 생각이 들어서 편집장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한테 너무 의미가 깊은 인터뷰였고 그 점에서 너무 좋았어요.
비상 제 학번이 총여 때 단체들이 다 같이 연대 성명도 내고 총여실 앞에서 1인 시위도 이어가면서 했던 선배들이 학교에, 동아리에 여전히 남아 있어서 직접 얘기를 전해 들을 수 있는 학번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문우에 들어오자마자 선배들이 이 사건에 대해서 엄청 소상히 설명해 주는 세미나 같은 걸 들었거든요, 총여 사건의 타임라인이 어떻게 되어있고 이후에 어떤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지. 제 기억으로 그때까지 시위도 했던 것 같아요. 들어오자마자 그런 걸 듣다 보니까 이런 행동을 이어 나가고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제가 학교에 입학을 하고 난 뒤는 이미 총여의 기능 자체가 상당히 무력화된 상황이었고 여기 글에서 말한 것처럼 단체들이 결집할 수 있는 구심점이 없어진 상태였어서. 내가 겪어보지 않은 생활이지만 총여가 남아있었다면 우리의 대학 생활이 지금과 다를 수 있었겠다, 지금은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소실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제가 입학했을 때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기획을 보면서 제가 입학했을 때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맞아 이땐 이랬었지. 우리가 이거를 이어 나갈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이 있을까, 구심점이 되는 단체도 없고 어떻게 보면 연세대학교가 탈권화된 이 시점에서 내가, 우리가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찌부찌 저는 이거 읽으면서 너무 우울해졌어요. 제가 18학번이거든요. 제가 문우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했던 게 총여 주관의 인권 축제에서 축제 진행을 하는 거였고, 그다음에 우총필 대자보를 썼어요. 그때 진짜 너무 괴로웠고, 이 총여가 없어지고 백래시를 맞닥뜨린 2018년, 이게 진짜 너무너무 슬펐어요. 저 이 교내 친총여 동아리 모임 및 기구 명단 공개 실시간으로 봤거든요. 그때 진짜 무서운 시대였어요. 계속 뭔가를 해야 하고, 저랑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존립이 위험해지는 시기였고... 총여 재선을 했는데도 투표로 떨어지고 하필이면 그 총여 폐지 투표가 연세대학교 이래 제일 처음으로 들어온 온라인 투표였어요. 그래서 그때 참여율이 진짜 미친 듯이 치솟고… 저희는 이미 뽑힌 총여를 없애는 게 말이 되냐 이런 얘기를 했던 것도 같고 총여실에 모여서 얘기 나누기도 했었고 코로나 시기에는 총여실 지켜야 한다고 자물쇠 따고 들어가서 농성하기도 하고, 그쪽에서 막 이상한 영장 만들어서 붙이기도 하고 그때는 그걸 보면서 스스로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정말 두려운 시기였어요. 언제라도 내가 학교나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없을 것만 같고 내가 아무리 발악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이 생기는구나, 라는 걸 느꼈고, 그래서 이 두려운 시기를 다시 상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이 글이 마음에 들었어요.
둘째로 45쪽에서 어푸 님이 그렇게 얘기하네요. “이렇게 소진될 일이었나 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고 하는 게, 진짜 많은 사람들이 소진됐어요. 그땐 모두가 지쳐서 아무것도 못 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문우도 그 여파를 되게 크게 맞았었고 와중에 코로나까지 겹쳐서. 그래서 부원 5명이 글 쓴 적도 있었어요. 회의 3명이 하고 5명이 문우를 내고. 그냥 버텨야만 되는 시간이 있어서 문우도 엄청 힘들었었어요. 그래서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가면서 어떻게 해야 새 부원들을 모으고, 새 담론을 만들 수 있을까. 모두가 지쳐버린 이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힘을 낼까. 다 힘이 없는데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걸 페스포트에서도 당연히 했을 거고 그때 어떤 노력을 하고 그 결론으로 지금 이렇게 닫는 것까지 했다고 하는 부분이 저는 문우와 떼어놓을 수 없는 서술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비상 굉장히 절박하게 이 학교의 운동 역사에 대해서 설명을 해 줘서, 저도 이게 굉장히 심각하구나, 를 느낌으로 받았던 것 같아요.
찌부찌 맞아요. 이 총여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했었고 그래서 글을 쓰고. 그래서 그런지, 이 백래시가 일어나고, 코로나로 인해 그런 학내 활동이 줄어들고, 이런 역사를 함께 했었고, 거기에 대한 서술이 쫙 적혀 있으니까 읽으면서 계속 눈물이 나는 거예요. 나랑 당연하게 함께했었고 또 함께 계속 있을 거라고 믿었던 그런 단체가 없어지면서 이런 생각을 했구나, 라는 걸 느끼면서 오랜 친구 떠나보내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옛날에 있었던 우리의 트라우마틱한 이야기를 해보자, 약간 이런 느낌. 그래서 되게 슬펐어요.
모 바로 전에 있는 비상 글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통과 의례 의미로 쓰인 글 같다는 느낌을 되게 많이 받았어요.
데어 학교 내에서 문우를 포함하는 사업이 하나 있었는데, 그때 유연이 어떤 말을 했냐면 자기는 편집장이라 문우의 공동체를 돌보는 역할이기 때문에 이 공동체의 안녕을 꾀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라서 여력이 없으면 없다고밖에 할 수가 없다, 약간 이런 뉘앙스의 말을 했었거든요. 그게 되게 인상 깊었어요. 저는 페스포트가 닫기로 한 것도 이해는 되는데 한편으로는 유연이 인용했던, ‘동아리는 필요해서 생기는 거다’라는 말에 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는 게, 어떤 필요나 목적은 개별 사람이랑은 좀 별개로 존재하는 것 같아요.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알지만, 사람이 없어도 단체가 있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페스포트를 보면서.
찌부찌 저는 제 대학 생활을 문우에 묻었거든요. 그런 입장에서 문우가 물론 학기 말에 좀 고통스럽다는 단점은 있지만 학기 중에는 정말 따뜻한 공동체고, 서로 돌봄을 받는 관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우에 계속 오래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학기 말에 무한히 마감해야 되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문우에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페스포트에서 진행했던 것처럼 문우라는 공간을 좀 따뜻한 공동체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저희 한 번 글을 안 쓴 적이 있었거든요. 너무 소진돼서, 우리 쓰지 말자, 라고 하고 공동체의 안녕을 위하여 글을 포기한 적이 있었어요. 우리가 교지 편집 동아리인데도 불구하고. 그때는 우리 동아리의 기조보다는 공동체의 안녕이 좀 더 중요했던 거죠. 그래서 저는 문우를 여전히 따뜻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따뜻한 곳으로 쭉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비상 제가 찌부찌와 같이 지냈던 선배들과도 알았던 사이고 제 밑에 유연이나 뒤에 더 들어온 사람들의 사이에 있는 입장에서, 위의 선배들이 만들어 놓았던 체제는 그대로 있는데 구성원들이 계속 바뀌잖아요. 구성원들이 바뀌다 보니 체제를 어쩔 수 없이 바꿔야 하는 일이 생기는 거예요. 제가 편집장을 할 때 정말 많이 느낀 건데 우리 단체가 목적성이라는 게 분명히 있고, 학내나 학외에 대해서 비판적인 글을 쓰는 단체고, 그에 걸맞게 교지 발행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지만 동시에 우리 공동체의 안녕과 우리가 지향하고자 했던, 소위 ‘좋은, 안전한, 행복한, 돌보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구나 깨달았어요. 그래서 제가 편집장 할 때 체제를 바꿔야 할 것 같다. 바꾸지 않으면은 동아리를 이어 나가는 것에 큰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이런 의견들을 많이 제시했던 것 같고 그런 것들을 요새 문우가 착착 실현해 나가고 있다고 느껴서 상당히 좋아요. 그래서 페스포트의 이 글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고, 생각했던 것들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어서 이 글이 정말 고마워요.
데어 데어는 영어에 Truth or Dare 할 때 그 Dare입니다. 저는 연세지 있을 때부터 데어라는 필명을 고정으로 쓰고 있습니다.
데어 쓰레기 탐험대로 넘어가자면, 학내 쓰레기 문제에 대해 해결을 해보자는 취지로 학내 4개 단체가 모이게 됐어요. 코로나 이후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게 되게 대중화됐잖아요. 코로나 때 학식당이 문을 닫으면서 학생들이 학교에서 식사를 해결하기가 어려우니까 일시적으로 허용을 해줬던 건데 한 번 허용된 거를 되돌리기가 어렵더라고요, 이미 학생들이 익숙해지니까. 명목상으로는 금지되었는데 암묵적으로 허용이 되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이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또 일회용 쓰레기가 많이 나오다 보니까 코로나 이전보다 노동자분들의 업무량이 훨씬 많아진 거예요. 그거를 연세대 비정규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이하 공대위)가 문제로 삼았어요. 이거를 분회에서만 해결할 일은 아니다, 학내 학생들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해서 학내 자치 언론 <연세지>, <문우>, <연희관 015B> 3개 단체와 공동대책위원회 4개가 모여서 팀을 설립했습니다. 이름은 쓰레기 탐험대(쓰탐)인데 처음에는 간담회를 주최해서 문제의식을 확실히 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할지 얘기를 한 다음에 워크스테이션을 등록해서 학내 쓰레기 현황을 파악하고, 그걸 조사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포함해서 학교에서 발생하는 쓰레기가 어떤 방식을 통해 학내에서 처리되고, 그것이 학교 바깥으로 나가서는 어떻게 되는지 등의 과정을 조사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토대로 어떻게 쓰레기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한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이 글은 캠페인의 일환인 공동 연재 글의 첫 번째 글입니다.
비상 이게 연재 글이잖아요. 뒤에 다른 단체들의 글들도 이어지는 건데 저는 그 점이 진짜 좋았어요. 쓰레기 탐험대같이 우리가 다른 학내 단체들과 협업을 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굉장히 드물고 그렇게 하기가 굉장히 힘든데 이런 기획을 할 수가 있었다는 게 너무 좋습니다. 앞에 패스포트 글도 그렇지만 이 글도 다 같이 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아요.
튜브 이 글 읽으면서 생각난 게 하나 있는데, 작년 총학 후보에서 내건 공약 중의 하나가 쓰레기통 수를 늘리겠다는 거였어요. 제가 그때 정책 토론회에 갔었는데 쓰레기통을 늘리면 청소 노동자의 일거리 늘어나는데 고려는 했냐, 청소 노동자분들과 얘기가 된 사항이냐를 물어봤었어요. 총학이 생각했을 때 쓰레기 문제를 단순히 ‘사람들이 버릴 공간이 부족한 것 같다, 그러니 수를 늘리자!’ 이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런 글이 있어서 좋았어요.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는 쓰레기 문제를 짚어준 것 같아서.
유연 ‘사람들이 잘 버리면 지저분하지 않겠지?’라고 생각을 해서 ‘그럼 쓰레기통을 늘리면 되겠다!’라고 생각하는 게 이해는 가지만 그러면 청소 노동자의 일이 두 배로 느는 건? 청소 노동자 두 배로 고용하실 거예요?
튜브 자랑 아닌 자랑 하나 하자면 저는 집에서 쓰레기 버릴 때 스티커 붙어있는 거 하나하나 다 떼서 철저하게 버리는 편이거든요. 여름에 백양로 걸을 때는 음료수 없으면 걸을 수가 없어서 주스 같은 거 사서 걸어가는데 다 마시고 학교 내에서도 버릴 때 항상 씻어서 버린단 말이에요. 근데 버릴 때 보면 사진처럼 버블티 같은 거 내용물 그대로 담긴 상태에서 버리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학생들 인식 수준 자체가 좀 잘못되어 있는데, 쓰레기통을 늘린다고 해서 미친 인간들의 짧은 생각이 극적으로 변하지 않을 것 같단 말이죠? 그래서 쓰탐이 하는 일이 굉장히 좋은 취지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 글이 좋았어요.
유연 진짜 그 점에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저도 뭔가 학교 다니면서 잘 생각을 못 해봤던 것 같거든요. 쓰레기를 버리면 그분들이 치울 수 있게끔 버려야 된다. 이 정도까지만 생각하고 그게 다 어디로 가는지는 생각을 못 해서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글이었다고 생각해요.
데어 예를 들어서 탕수육 같은 음식물을 시켰어요. 소스 같은 경우는 벌레가 꼬이니까 벌레 꼬이지 말라고 사람들이 비닐봉지를 꽉 묶어서 일반 쓰레기통에 넣더라고요. 음식물 쓰레기통이 없으니까. 근데 청소 노동자분들 인터뷰하러 갔을 때 그렇게 꽉 묶으면 못 풀어서 하나하나 가위로 자르고 다녀야 하니까 차라리 느슨하게 묶어서 옆에다 놓고 쓰레기통에 넣지 말라는 얘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런 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 저는 이 활동하면서 제일 좋았던 점 중의 하나예요.
비(飛) 이 글이 가장 제 취향이었어요. 제가 다니는 학교는 연세대학교보다 훨씬 더 열악해요. 조금 전 동아리 퇴임에 대한 글 관련해서 여기는 총여가 폐지됐어도 밑에 페미니즘 동아리들이 남아있고, 아무리 주변에서 뭐라고 말을 붙이더라도 따로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일 수 있잖아요. 근데 제가 입학한 학교는 아예 없어요. 제가 학교에 4년 동안 몸을 담고 있는데, 그동안 한 번도 대자보 붙은 걸 본 적이 없어요. 붙일 공간 자체도 없어요. 애초에 학교에서 다 막아놔요. 그래서 저는 분위기에 맞지 않는 말일 수도 있지만, 좀 부러웠어요. 그래도 아직은 행동할 수 있구나, 나도 이 학교 가고 싶다, 하고요. 저희도 모이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을 텐데 단순히 SNS 친구를 맺는 정도에서 끊기고 모이지 못해요. 활동으로 이어지지 못해요.
쓰레기 탐험대는 여러 단체 협업한 프로젝트였잖아요. 그게 너무 놀라운 거예요. 저희는 학교에서 하지 말라고 한 적은 없지만 다들 하면 안 된다고 지레짐작하고 포기하거든요. 매장당할까 봐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곳에 속해 있다 보니 이 상황 자체가 부러웠어요. 문과대학에 자치 언론이 존재하는 점이나 학교 노동자들 간에도 비정규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도 놀라웠어요. 저희 학교는 노동자분들의 시위가 일어난 적이 없거든요. 근데 이게 학교가 잘 해줘서 시위가 일어나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매 건물 들어갈 때마다 미화원 휴게실 먼저 찾아보는데, 있긴 있지만 구석 아니면 외부 비상구에 있더라고요. 이걸 보면 학교가 잘해주는 게 절대 아닌데 ‘왜 한 번도 데모가 안 일어나는 걸까, 다들 정말 인내하고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떤 소리를 내야 되고 어떻게 사람을 모아야 할지 항상 생각해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려 하면 득달같이 물어뜯어서 모두가 사이좋은 망나니가 되고 마는 저희 학교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어요.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지나치게 무책임하고 무례하고, 청소 노동자는 또 지나치게 친절하다는 걸 느꼈죠. 저희 학교 쓰레기통이 어떻게 돼 있냐면 일반 종이 캔 병 플라스틱 이렇게 4개 분류 통이 있고 그 위에 노브랜드 쿠키통같이 대형 플라스틱 통이 있어요. 청소 노동자분들이 사비로 사서 만든 물품들을 그렇게 위에 올려두시고 액체나 건더기를 거기다 버리게 하거든요. 그걸 보니까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제가 입학할 때부터 이미 있었거든요. 그걸 보면서 ‘이래도 되나? 지금 뭐 하는 짓이지?’라고 생각하는데, 옆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휙 버리고 가는 거예요.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경우에는 그냥 세면대에 버리고 물로 헹구면 되는데 1~2분밖에 안 걸리는데 그걸 못해서 남한테 떠맡긴다는 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도 안 하는구나 싶었어요. 뭐가 잘나서? 이 제도가 무엇을 용인하고 있기에? 청소 노동자들이 왜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서 인지조차 못 하고 먼저 포기한 상태로 이들을 용인해야 하는 거지? 학교는 뭐 하고 있지? 우리 학생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거지? 등의 질문을 던지며 인간 혐오를 하면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글이었네요.
유연 제도가 뭐를 용인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데어 인터뷰하러 갔을 때 청소 노동자분이 ‘근데 그렇게 버려도 돼요. 그런 일 하려고 저희가 있는 거니까’라고 말하실 때 ‘아니요, 그 자식들 다 집에 가면 분리수거할 거예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연 학교라서 안 할 거예요. 집에 가면 할 거 아니야.
데어 지가 과태료를 내니까 하겠지. 근데 밖에 나와서는 자기가 과태료를 내는 게 아니고 학교가 과태료를 내니까 남한테 떠넘겨도 되고 꼭 자기가 학교의 주인이라는 듯이 행동하는 게 너무 꼴 보기가 싫어요. 진짜 너 뭐 돼?
모 연세대도 청소 노동자 얘기가 되게 오래전부터 나온 얘기잖아요. 근데 그 논의가 돼 오는 과정들을 보면 일관적으로 느껴지는 자세가 ‘청소 노동자는 학생들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 원래 그런 건데 왜 데모하고 시끄럽게 하고 학생들의 권리를 침해하느냐?’ 이게 깔려 있잖아요. 그게 참 안 변한다 싶은 것 같아요.
유연 다음 호에 실을 글들을 우리가 쓰고 있잖아요. 독자 모임 때 이 글은 또 어떤 얘기를 듣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되게 재미있었던 것 같고 지금 쓰고 있는 글을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열심히 써서 꼭 이번 호에 실어서 다음 독자 모임 때도 복복 받아야지라고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비상 이 69호가 제가 편집장으로서 두 번째 냈던 호인데 처음에도 얘기했지만 아주 힘들었어요. 저도 일이 굉장히 많았고 교지를 낼 인력 자체도 굉장히 부족했어서. 그래서 이 호가 저한테 어떻게 보면 애증의 존재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읽으니까 고생을 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이때 썼던 글도 꽤 마음에 들고 어떻게든 이 호를 발간해서 소중한 아카이빙이나 여러 가지 글들을 남겼다는 게 너무 뿌듯했고 그걸 여러분들의 감상으로 한 번 더 확인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유연 맞아요. 저도 어제 새벽에 제가 쓴 글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는데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봐줄 만한데? 이때 나 제법 쳤잖냐~’라는 생각이 들어서 신기했어요. 이거 쓰고 탈고했을 때는 진짜 꼴 보기도 싫고 엉망진창의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년 지나고 다시 보니까 그래도 봐줄 만한 것 같아서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찌부찌 이 공간이, 공동체가 이렇게 잘 남아 있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문우라는 공동체를 지탱해 주시는 여러분께 제가 뭐라고 약간 감사함을 느끼네요. 문우 독자 모임의 꽃말은 이 글이 결국 누군가한테 읽히기는 한다는 것 같아요. 독자 모임을 통해 한 번 더 읽음으로써, 이 글이 생명을 얻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독자 모임을 계속 진행하는 것도 정말 괜찮다는 생각이 들고 다시 한번 이 따뜻한 공동체에 함께하게 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모 제가 아까 페스포트 얘기할 때도 잠깐 나왔던 건데 작년인가 터얼 정기공연 하는 걸 봤었거든요. 거기서 찌부찌랑 인상 깊게 봤던 게 졸업한 사람들이 와서 자기 악기를 잡고 연주를 하고 마지막에 인사하는 거예요. 그쪽도 상황이 그렇게 희망적이지는 않은 것 같긴 했지만 ‘오래 봤으면 좋겠다. 내년에도 봤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걸 보면서 학내에 저런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동체를 만들고 거기 참여하는 마음에 대해서 되게 오래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근데 문우도 그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분투하는 걸 제가 봤기 때문에 문우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약간 위로가 되는 게 있어요.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오래오래.
비(飛) 저는 여기서 타인이잖아요. 학교도 다르고, 전공도 다르고. 친구에게 초대를 받아서 덕분에 왔지만 다 처음 뵙는 분들이었는데도 여러분들께서 반년 동안 쓰셨던 글들 재밌게 잘 읽으면서 몇 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고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책 읽는데, 중간중간에 코멘트까지 쓰면서 한 2시간 정도 읽은 것 같아요. 근데 2시간 지나는지도 몰랐고, 맨 마지막 페이지에 몇 장인지도 안 보다가 쓰레기 탐험대 끝나니까 다 끝난 거예요. 엥? 벌써 끝났다고?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재밌었어요. 여러분들 반년의 시간이 저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어요. 훌륭한 결과물이었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