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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70호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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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편집위원회 Sep 23. 2024

천막을 붙잡아 세우며

편집위원 어푸, 비상

천막을 붙잡아 세우며

: 2024년 청소·경비노동자 투쟁 아카이빙 기획기사


기획기사 TFT: 편집위원 어푸, 유연, 데어, 비상, 수습편집위원 도토리

작성: 편집위원 어푸, 비상



0. 2024년 연세대학교

 

올해 3월부터 학교의 청소·경비노동자들은 붉은 조끼를 입고 일하고 있다. 노동기본권 쟁취,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대폭인상, 원청이 책임지고 생활임금 보장하라. 백양로를 잠시 걷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에도 노동자들은 조끼를 입고 외쳤다. 외침에 답하지 않는 학교의 답변을 듣기 위해, 7월 1일에는 언더우드관(이하 본관) 앞에 천막을 세웠다. “진짜 사장 연세대학교가 해결해야 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과 농성에 돌입한 노동자들을 피해 본관의 교직원들은 건물의 모든 문을 자물쇠로 걸어 잠그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폭염과 습한 날씨에 오래된 목조건물에서는 유기물이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관 앞의 노동자들은 농성을 이어 나갔다. 폭염에는 부채를 부치고 온몸에 모기 기피제를 뿌리며 본관 앞을 지켰다. 강풍으로 천막이 쓰러진 밤까지.



 1. 7월 11일 공공운수노조X공대위 합동 간담회 〈본관에 천막이 생겼다〉

 

편집위원 유연과 데어는 7월 11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와 연세대비정규노동문제해결을위한공공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합동으로 기획한 간담회 〈2024 연세대학교 청소노동자 투쟁 설명 간담회 : 본관에 천막이 생겼다〉를 찾았다. 본래 간담회는 천막이 세워진 본관 앞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찌는 듯한 날씨에 조금이라도 그늘이 있는 본관 뒤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간담회에 참여한 학생들은 스무 명 남짓으로, 홍보가 일주일 정도밖에 진행되지 못했음을 고려하면 제법 많은 수가 모인 셈이었다. 학생들의 소속과 참여한 이유는 다들 달랐지만, 땀을 흘리고 부채를 부치면서도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서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먼저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의 이류한승 조직부장이 작년과는 달리 천막 농성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던 경위를 설명했다. 2023년 11월 29일, 2024년의 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집단교섭이 시작됐다. 교섭에는 연세대학교를 포함하여 서울지역 대학·빌딩 사업장 14곳을 관리하는 17개 용역업체와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가 참여했다. 노조 측의 요구안은 기본급을 570원 인상하고 식대는 2만원, 상여금은 25만원 인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용역업체 측은 “임금을 제시할 재량권이 용역업체가 아닌 학교 측에 있다”라고 하며 1~5차 교섭 내내 교섭안을 제시하지 않다가 6차 교섭인 2024년 2월 6일이 되어서야 기본급을 50원 인상하고 식대와 상여금은 동결하겠다는 안을 들고 왔다. 7차 교섭인 2월 20일에도 용역업체 측은 한 달에 1만원에 남짓할 뿐인 기본급 50원 인상이라는 안을 고수했고, 노조는 최종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이어진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에서도 양자 간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3월 20일,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는 20일 국회 앞에서 ‘밥 한 끼를 지키는 투쟁’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어서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 앞에서는 투쟁 선포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조합원들은 붉은 투쟁 조끼를 꺼내 입었다. 학관 앞에는 요구안을 담은 현수막을 걸었고, 점심시간에는 백양관 앞에서 피켓팅을 했다. 항의차 총무처 본관을 방문하기도 했고, 백양로를 따라 행진하고 집회를 진행했다. 그러나 투쟁을 시작하고 석 달이 지나서 6월 20일에 재개된 교섭에서도 용역업체가 들고 온 안은 변함없었다. 연세대분회 조합원들은 지속적으로 임금 인상에 대한 연세대학교의 입장을 확인해달라 다방면으로 요청했으나 학교 측은 응답하지 않았다. 한 해의 반이 지나갔다. 더 이상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었기에, 조합원들은 본관을 찾아와 천막을 세우고 농성에 돌입했다. 


간담회에서 조직부장이 꼽은 2024년 천막 농성의 요구안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생활임금을 보장하기 위한 임금 인상이다. 대학 청소·경비노동자는 호봉 상승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교섭을 통해 이루어지는 임금 조정이 필수적이다. 소비자물가는 2022년 5.1%, 2023년 3.6% 올랐고, 생활물가는 2023년 3.9%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으며, 2021년 이후 누적 물가상승률은 12.8%에 달하고 있다. 생활물가와 공공서비스 요금 전반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상황에 임금 동결, 내지는 기본급 50원 인상은 사실상 임금 삭감과 다름 없다. 

2023년 11월 29일부터 이루어진 집단교섭에서 노조 측의 임금 요구안은 기본급 570원 인상, 식대 2만 원 인상, 상여금 25만 원 인상이었다. 이 중에서도 올해의 교섭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식대 인상이다. 월 12만 원이라는 금액은 2020년에 책정된 것으로, 이후 물가가 치솟고 실질적으로 식대의 기능을 할 수 없음에도 해당 시점에 동결되어 그 이후 오른 적이 없다. 국공립대는 공무직에게 월 14만 원의 식대를 보장하고 있으며, 카이스트 서울캠퍼스의 경우 최근 청소·경비노동자의 식대를 월 20만 원으로 인상한 바 있다. 월 12만 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새벽부터 오후까지 일하는 청소·경비노동자들의 한 끼 식대를 계산하자면 2,7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2,700원. 학교에서 구내식당 이용은커녕 김밥 한 줄도 사 먹을 수 없는 금액이다.


둘째, 정년퇴직으로 발생한 3인 공석의 인원 충원이다. 연세대학교의 단체협약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존재한다.

단체협약 제34조 [적정인력 확보와 정원 유지]
④ 자연감소 등의 이유로 인원에 결원이 생겼을 때 회사는 7일 이내에 부족인원을 충원해야 하며, 이 기간 내에 충원이 되지 않으면 조합이 추천하는 자의 채용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할 수 없다. 단, 조합에서 추천하는 자가 없을 경우 회사는 결원 인원의 임금 총액을 대체로 근무하는 해당 건물의 조합원에게 기타수당 명목으로 지급한다.


2023년 12월 31일, 중앙도서관에서 두 명, 과학원에서 한 명의 청소노동자가 정년퇴직했다. 위의 단체협약 조항에 따르면, 회사는 해당 공석은 7일 이내에 채워야 한다. 그러나 연세대분회의 인원 충원 요구에도 반년이 넘도록 공석이 충원되지 않았고, 학교는 해당 문제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당연하게도, 해당 구역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은 업무가 과중해지고 건강이 악화하여 매우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일하게 되었다.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 상황에서 연세대학교와 해당 구역의 용역업체는 한참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다가 8월 1일이 되어서야 공석 세 자리의 인원을 충원했다.


셋째, 부당노동행위 지시 의혹에 관한 원청의 책임 확인이다. 연세대학교는 청소·경비노동자와 관련한 책임을 모두 용역업체에 떠넘기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간담회 현장에서 실질적인 책임과 지배력이 원청인 연세대학교에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를 여럿 접할 수 있었다.

일례로, 용역업체인 청우티에스의 현장소장은 외부 구역에서 청우티에스가 관리하는 구역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된 조합원을 전화로 불러낸 뒤 노조 탈퇴를 종용하며 “총장님이 세브란스에서 오시기 때문에 민노(민주노총)에 예민한 분이라 여기 가입해 있으면 안 좋게 보니까 하지 말라”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소장은 이후에도 “총무과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절대 노조에 가입시키지 말라고 했다”라며 노조 탈퇴 종용을 이어갔다. 용역업체가 노조 탈퇴 지시의 맥락으로 원청의 입김을 지목한 상황에서 연세대분회 측은 용역업체에 노조 탈퇴를 지시한 것이 맞는지 확인해달라 총무팀에 여러 차례 문의했다. 그러나 총무팀은 무응답 또는 내부 사정으로 확인이 어렵다는 변명 뒤로 숨었다. 노조 탈퇴를 종용한 소장에 대한 조치도 일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류한승 조직부장의 말에 따르면 용역업체의 태도는 일관적이다. 업체에서는 단독으로 임금을 인상할 수도 없고, 퇴직자가 발생해도 즉각 인원을 충원하지 않아도 되며, 노조 탈퇴를 종용하는 것은 원청이 그것을 직간접적으로 요구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책임과 지배력은 원청에 있다. 원청이 책임지고 나서지 않으면 청소·경비노동자의 노동 조건은 개선될 수 없다.



 2. 8월 1일 〈상황공유를 위한 작은 간담회〉와 인터뷰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본관을 직접 찾아가고 천막 농성에 돌입한 이후 교섭 상황은 얼마나 진전되었을까? 천막이 쓰러진 뒤로 연세대분회에서는 어떻게 투쟁을 이어 나가고 있을까? 8월 1일, 천막 투쟁의 세부 사항과 경과에 대해 학생들과 공유하는 간담회 자리를 찾았다. 노천극장 1층 한편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노조 사무실은 사무실 가득 모기향을 태우는 냄새가 났다. 


간담회 자료 1쪽
간담회 자료 2쪽

간담회 자리에서 이류한승 조직부장은 참여자들에게 집단교섭 진행 상황 및 계획을 정리한 자료를 나누어 주었다. 해당 자료에는 이화여대, 고려대, 홍익대 등 타 대학 중 어느 대학이 집단 교섭에 협조적이고 어느 대학이 그렇지 않은지, 교섭에 앞서 이들이 내세우는 조건은 무엇인지 등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앞서 공공운수노조가 임금을 집단교섭으로 조정한다고 했다. 집단교섭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며, 연세대학교 청소·경비노동자의 투쟁에서 다른 학교들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서는 청소, 경비, 주차관리, 시설관리를 담당하는 약 1,200명의 조합원을 대표하여 서울지역 14개 대학[1]의 17개의 시설관리 용역업체와 초기업 집단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연세대학교는 그 대학사업장 중 하나이며, 집단교섭을 통해 협약이 체결된다면, 대부분의 대학 비정규직이 비슷한 노동 조건을 보장받게 된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제도[2] 하에서 교섭권을 박탈당한 중앙대, 서울여대, 세브란스병원의 노조에도 거의 동일한 협약이 적용된다. 그렇기에 대학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임금 조정 관련 교섭 타결은 중요하고 필수적인 일이며, 노동조합과 사측이 만나 교섭을 이뤄내야 하는 일이다. 이러한 중대사안의 물꼬를 트는 일을 대학들이 서로에게 미루면서 교섭 타결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투쟁을 지난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대학이다. 집단교섭을 집단회피하는 대학 본부들이 문제다.



간담회를 마친 뒤에는 연세대분회의 활동가들과 천막 농성의 쟁점과 청소노동이라는 일에 대해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먼저 본관을 천막 농성의 장소로 선정한 것에 대해서, 그 목적과 효과가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류한승 조직부장은 본관을 찾아간 의도 중에서도 ‘압박’이 중요했음을 설명하고, 그 과정에 생긴 만남과 단절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했다. 


어푸            처음에 본관 앞에 천막이 설치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본관 앞으로 사람이 많이 다니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본관은 목적지로 갈 때가 많고 그 옆을 그냥 지나치잖아요. 그래서 천막 농성을 시작하고 나서 학생이나 교직원을 맞닥뜨리거나 가까이서 대면한 상황이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이류한승     물론 학생이나 교직원을 많이 만나면 더 좋긴 하겠지만, 농성의 일차적인 목적은 학교를 압박하는 거예요. 학교를 압박해서 우리는 총장님 또는 적어도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관철하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그걸 위해 가장 적절한 장소는 본관 앞이었어요. 본관에 학교에서 가장 핵심적인 총장실이 있고, 본관이라는 상징성이 있으니까요. 방학이기 때문에 특히 학생이나 교직원을 많이 마주칠 수 없다는 것은 각오하고 있던 부분이었죠. 그런데 천막을 설치함으로써 본관에서 일하는 직원이나 보직 교수나 이런 사람들이 본관에 안 오게 되잖아요. 그것도 일종의 관계라고 볼 수 있죠. 오던 사람들이 안 오게 되는 이것도 변화인 거고. 

데어           이 농성은 학기 중에 백양관 앞에서 진행했던 집회랑은 성격이 많이 다른 걸까요? 

이류한승     학기 중에는 백양관 앞에서 농성을 하지는 않았고 선전전을 휴게시간마다 했었죠.

어푸           선전전은 농성에 비해 사람들한테 좀 더 드러나기 위한 활동일까요?

이류한승     선전전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런 측면이 있죠. 하지만 그때도 저희는 수업을 절대 방해하지 않으려고 되게 신경을 썼어요. 원래 쟁의행위라는 거는 정상적인 업무의 진행을 방해해서 사용자를 압박하는 건데요. 그런데 이제 학교에서 정상적인 업무는 수업인데, 재작년에 고소 사건 이런 것도 있었잖아요. 수업만은 방해하지 않으려고 우리도 되게 신경을 쓰면서 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까 주되게는 백양관에 있는 총무처, 그다음에 본관에 있는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총장, 부총장 이런 사람들을 압박하는 목적이 더 컸죠.


이류한승 조직부장이 언급한 ‘고소 사건’은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쟁의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소음이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2022년 5월 연세대 재학생 A 씨가 집회에 민형사상 고소를 한 사건을 가리킨다. 2024년 2월, 청소·경비노동자 측의 승소로 사건이 일단락되긴 했으나, 한편으로 이 사건은 오늘날 노동자와 학생 전반이 얼마나 단절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계기였다. 그렇기에 조합원들은 투쟁의 과정에서 “학생들하고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소지는 최소화”하려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서명 운동 같은 것도 하고, 간식 나눔 같은 것도 하고,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투쟁 상황이나 투쟁 이슈가 뭔지를 알리는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류한승 조직부장은 설명했다. 

운동의 반경이 비정규 노동 바깥으로 뻗어 나가기 어려웠던 것은 “밑바닥 노동자 취급을 받다 보니까,” 누가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의견을 묻지도 않는 구조에서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심을 가질래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 공동체와 충돌하고 논의에서 소외되는 경험 끝에 “이제 그런 구조적 조건에서 다른 대학 구성원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필요하겠다”라고 느끼고, 대학 노조, 대학원생 노조, 비정규 교수 노조 등 학교 공동체에 속한 외부의 노조들을 만나보는 등 노동과 관련한 고민의 저변을 넓히고 있었다.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수준의 생활임금을 보장하라! 이는 매년 진행되는 집단교섭에서 노조 측이 제시하는 요구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핵심이다. 그러나 집단교섭은 거의 매년 지지부진하게 진행된다. 올해의 교섭에서는 6차 교섭에 이르기까지 용역업체가 안을 내놓지 않은 것에서부터 교섭 타결을 어떻게든 미뤄보고자 하는 사측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용역업체만 소극적일까? 원청인 대학 본부들도 적극적으로 안을 제시하지 않고 “학교는 사용자가 아니다”라는 뻔한 변명 뒤에 숨기 급급하다. 11일 진행된 간담회에서 조직부장은 이화여대가 기존에 고수하던 “연세대와 고려대가 찍어야 찍겠다”에서, “단독 1등만 아니면 된다. 어디든 같이 찍을 곳만 있으면 찍겠다”로 입장을 굽혔음을 이야기했다. 어쩌다 ‘단독 1등’은 피해야 하는 불명예가 됐을까?


문유례        늘 동덕여대에서 (교섭 타결) 1등을 했어요. 그런데 매번 일이 이렇게 진행되니까 동덕이 용역업체들한테 공격을 받는 거야. 너네가 도장 찍어서 우리도 그렇게 찍게 됐잖아 이런 식으로. 그래서 1등을 안 하겠다. 요건은 그거예요. 그래서 서로 안 찍으려고 그러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서울지부에서 동시타결, 이 말이 나온 거예요. 여럿이 앉아서 하나둘 셋, 하고 찍으면 누가 1등이에요? 누가 1등이랄 게 없잖아요. 같이 찍었으니까. 그러면 욕을 먹어도 같이 먹잖아요.


학교는 업체들의 비난 때문에 원청에서 교섭을 섣불리 타결시키기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청소·경비노동자들이 한 끼에 2,700원으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어떻게 용역업체의 비난을 피하는 것보다 뒷전일 수 있을까? ‘원청의 입장을 감안하여’ 여러 학교가 동시에 교섭을 타결하는 식으로 학교 측의 부담을 줄이는 안을 제시하였음에도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섭이 진전되지 않는다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위의 설명은 더욱 궤변처럼 들린다. 단독 1등으로 교섭 타결을 하는 것만 피하면 된다고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몇몇 학교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본관 앞에서 농성을 시작하자 본관을 텅 비워버린 연세대학교에서는 이런 소극적인 태도조차 확인할 수 없다. 노동자의 삶과 생존에 직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임금 교섭을 진행하는 데에, 선두가 되기 위해 다투지는 못할망정 선두에 서지 않기 위해 서로 꼬리를 빼는 모습은 보기 민망할 정도다.



집단교섭으로 진행되고 있는 임금 관련 문제 이외에도 조합원들이 천막 농성에서 제기하고 있는 두 가지 문제 역시 인터뷰를 통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정년퇴직 인원의 충원은 앞서 언급한 연세대학교 단체협약에 따르면 공석이 발생하고 “7일 이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연세대학교와 용역업체는 7달 동안 공석에 대해 조처를 하지 않다가 8월 1일이 되어서야 신규 인력을 채용한 것이다. 늦어도 한참은 늦은 인원 충원에 이류한승 조직부장은 분통을 터뜨렸다.


어푸           오늘 아침에 추가로 인원 충원이 된 건가요?

이류한승      3명 다 충원이 된 겁니다.

데어           그건 그래도 진척이 조금 있었네요.

이류한승     저는 사실 무척 열을 받았는데요. 몇 달을 기다렸는데, 이렇게까지 해서야, 지금 한 해의 절반 이상이 지난 8월 1일에 와서야 (인원 충원을) 한다는 게 정말 너무 화가 나고. 그래서 내년에는 진짜 두고 보자고 지금 이를 갈고 있어요. 이제는 전혀 신뢰할 수가 없는 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푸           부당노동행위 지시 의혹에 대해서는 계속 묵묵부답인 건가요?

이류한승     조직부장 우리가 찾아가서 면담했을 때는 총무팀 직원이 전부 바뀌어서 자기들은 전혀 모르는 얘기고, 이전 직원들한테 SNS나 메일로 물어봤는데 답이 없다. 그래서 자기들도 답답하다. 이런 식으로 답을 했어요. 그래서 이게 노조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이거를 그냥 “물어봤는데 답이 없으니 어떻게 못 하겠다.” 이렇게 얘기하시면 저희는 어떻게 하냐, 그리고 우리도 학교가 했는지 안 했는지라도 알려줘야 거기에 맞게 대응을 할 거 아니냐, 그러니까 정확하게 얘기를 해주셔야 한다고 했더니 그럼 자기가 다시 한번 물어보고 알려주겠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그 이후로는 답이 없고. 우리도 지금 당장 식대 문제나 인원 충원 문제에 집중하다 보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은 하지만 직접적으로 추궁하지는 못하고 있긴 해요. 하지만 연세대가 이런 시도를 한 게 처음도 아니고 해서,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연세대가 이런 시도를 한 게 처음도 아니고”라는 언급의 배경에는 연세대학교가 청소·경비노동자에 대해 부당노동행위 지시 시도를 한 긴 역사가 있다. 2007년 청소노동자의 노동 실태에 대한 조사로 학생 연대체인 ‘살맛’이 조직되고 청소노동자들을 설득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에서 연세대분회를 조직한 이후에도 2012년 연세대학교 교직원이 민주노총이 아닌 어용노조 설립을 지시해 노조의 무력화 내지는 파괴를 꾀했다는 용역업체의 고백이 있었고,[3] 2018년에는 연세대학교에서 하청업체와 노동자들과 협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경비노동자의 근무시간을 변경해 노조에서 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한 적도 있다.[4] 이외에도 부당하게 인력 감축을 시도하고, 용역업체의 부당노동행위나 괴롭힘 등의 갑질을 방기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조합의 조직력을 떨어뜨리고 노동자들을 분산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존재했다.


기획 기사 TFT의 편집위원들은 앞서 서술한 집단교섭과 인원 충원 문제 및 부당노동행위 지시 의혹 속에서, 동트기 전 집을 나서서 학교를 치우는 실제 노동자들의 존재가 학교를 어떻게 지탱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우리가 학교에서 누리는 쾌적하고 위생적인 생활은 분명히 학교를 청소하는 이들의 노동이 있기에 가능하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조합원들에게 하루의 일과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물었다.


황금순        위쪽 2구역[5] 같은 경우에는 6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4시에 일을 끝내긴 하는데, 그래도 일찍 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보면 대부분이 이쪽 1구역[6]하고 2구역 분들이 많이 오셔요. 그래서 한 번 아침 첫 차를 타봤거든요. 타기 전에는, “첫 찬데 사람들이 많겠어?” 했는데 엄청 많아요. 의외로 많아요. 나는 기점 부근에서 타니까 앉아서 오는데, 한 중간쯤 가면 앉을 자리가 없어. 이 차가 신촌에서 회차해서 가는 차기 때문에 사람들이 중간에 내리지도 않아요. 그러면 어디서 많이 내리냐, 학교 앞에서 다 내려. 다 연세대야. 다 연세대로 들어오는 거야. 나 처음에 깜짝 놀랐잖아. 여기 와가지고. 버스 타면 이미 낯익은 분들이 앉아 있어요. 그러면 이제 언니 안녕 이러지. 중간에 타면 또 다 아는 사람들, 다 연세대야.

문유례        거기 버스가 4시 40분이면 늦다. 첫차가.

황금순        첫차가 4시 반인가 그래요. 

문유례        나는 현장에 있을 때 차를 갖고 다녔는데 차를 타고 오다 보면 마포구청 앞에서 신호에 걸릴 때 601번이 같이 서 있거든. 꽉 찬 버스가. 어느 날은 내가 새벽에 아무도 없을 때 왁스 작업을 하려고 4시에 출발해 봤어요. 그래서 오는데 그 601번 차가 마포구청 앞에 서 있는 거야. 첫차래요 그게. 또 공항 쪽에서 다니시는 분들 많거든요. 첫차를 타고 여기(연세대) 오면 4시 50분 4시 45분 이렇게 된대. 그러니까 잠을 몇 시간을 자겠어요. 집에서 살림하고 어쩌고 저쩌다 보면 11시나 12시에 자서 한 2~3시간 정도 자고 나오지.

황금순        3시간. 많이 자면 4시간.

문유례        저도 여태까지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하다 보면 또 그게 적응이 돼가요. 그렇게 4시간만 자도 적응이 돼요.

황금순        아침 일어날 시간 되면 눈이 떠져.


첫 차가 4시 40분에 출발하면 늦은 거라는 조합원들의 말에 웃을 수도 웃지 않을 수도 없었다. 학생이나 교직원, 산학협력기관의 기업체들이 출근하기 전에 아침 청소 업무가 마무리되어야 하기 때문에 청소 노동자들은 근무 시간으로 규정된 시간보다 한참을 이른 시간에 출근한다. 옷을 갈아입고 커피 한 잔을 겨우 마시면 곧바로 청소를 시작해야 한다. 아침은 물론 못 먹고 온다. 숨도 안 쉬고 일을 하다가 8시가 넘어가면 슬슬 배가 고프지만 일을 멈추고 식사를 할 수는 없으니 서둘러 끝낼 수 있는 일을 끝내고 9시가 넘어서야 간식이나 과일 한 개 정도를 먹는 것으로 대신한다고 공학원에서 청소노동을 하고 있는 부분회장은 말했다. 현재 공학원에 속해 있는 청소노동자 한 사람은 평균 650평에서 700평 정도를, 최대 900평까지도 담당하고 있다. 하는 일이 어떤 종류냐는 질문에 부분회장은 “청소, 미화 일이지.”라고 일축했지만, 그 말 뒤에는 어느 연구실에서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지, 어느 공간을 어느 시간에 치워야 하는지, 어디가 어떻게 가로막혀 있고 뚫려 있는지를 전부 파악하고 있는 숙련됨이 있었다. 이는 ‘청활’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간담회와 인터뷰 자리에서는 ‘청활’이라는 활동이 몇 차례 화두에 올랐다. ‘청활’은 농민-학생연대활동인 농활과 유사하게, 청소노동자-학생연대활동의 줄임말로, 청소노동이 이루어지는 시간에 학교에 나와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학교를 치우는 활동이다. 당일 인터뷰에 함께한 공대위의 태현은 청활에 참여한 경험을 떠올리며, 학생들이 아무리 열심히 비질을 해도 조합원분들의 속도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청활에서 직접 겪은, 청소노동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 청소노동을 업으로 삼는 노동자의 숙련도 차이는 엄청났다. 그럼에도 근무 시간 안에 자신에게 할당된 공간을 전부 ‘미화’하기 위해서는 엉덩이도 못 붙이고 일하기도 한다는 말에서 이 업무를 어떻게든 완수해 내는 노동자의 전문성과 그럼에도 절대 만만치 않은 노동 강도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 



 3. 문우편집위원회에서는

 

그렇다면 이러한 노력에 학생들은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 7월 11일 간담회에서 공공운수노조의 활동가들은 참여한 학생들에게 세 가지를 요청했다. 개인과 자치기구에서 청소·경비노동자 투쟁과 관련한 입장을 제시할 것, 농성장을 지키는 조합원들이 볼 수 있게 응원의 마음과 생각을 담은 메시지를 작성할 것, 식대 인상 지지 서명운동에 연대할 것. 이에 문우는 원청인 연세대학교가 적극적으로 교섭에 응할 것을, 학생들에게는 청소노동자의 투쟁에 연대할 것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작성해 중앙도서관 앞과 학생회관 내부에 부착했다. 아래는 대자보의 전문과 대자보를 부착한 사진이다.

 

 

연세대학교는 침묵으로 숨는 대신 청소노동자에게 응답하라


올해 7월 2일부터 연세대학교의 본관인 언더우드관은 텅 비어있다. 그리고 언더우드관 앞에는 청소노동자들의 천막이 생겼다. 노동자들은 천막이 강풍으로 무너지기 전까지, 무더위와 폭우를 견디며 그 앞을 지켰다. 언더우드관의 교직원들은 왜 사라졌고, 청소노동자들은 어째서 천막을 설치해야 했을까.


청소노동자는 호봉 상승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교섭을 통해서만 임금을 조정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공공운수노조에서는 청소, 경비, 주차관리, 시설관리를 담당하는 약 1200명의 조합원을 대표하여 서울지역 14개 대학의 17개의 시설관리 용역업체와 초기업 집단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연세대학교는 그 대학사업장 중 하나이다. 


현재 공공운수노조의 요구안은 미화‧주차직 시급을 현 10,190원에서 10,460원으로 270원 인상하고, 보안직 시급을 최저임금에서 30원 오른 9,650원으로 인상하고, 식대를 월 120,000원에서 140,000원으로 인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해당 요구안에 대한 입장표명이나 대답 없이 침묵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중앙도서관에서 두 명이, 과학원에서 한 명이 정년퇴직을 하였음에도 몇 달이 지나도록 인원이 충원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한 업무 공백은 남아 있는 노동자들의 몫으로 전가되고 있다. 이는 단체협약 제 34조, 7일 이내에 부족한 인원을 충원하라는 조항을 명백히 위반한 상황이다. 


또한 지난 12월에는 청우티에스 현장소장이 조합원들에게 노조 탈퇴를 종용하였으며, 이와 같은 부당노동행위가 연세대학교 총무처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노조는 용역업체와 총무처에게 수 차례 확인 요청을 했으나, 총무처는 무응답으로 일관하거나 당시 담당자에게 물어봐도 제대로 답해주지 않아 사실 확인이 어렵다는 변명만 하고 있다. 


3월 14일 조정 불성립과 쟁의 이후 지난 6월 20일 다시 교섭이 열렸고, 이 과정에서 노조는 연세대학교에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7월 1일 노조가 언더우드관으로 찾아가자 연세대학교 측은 언더우드관 출입을 막았으며, 노조가 면담이 성사될 때까지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로 천막을 설치하자, 언더우드관을 폐쇄한 채로 침묵을 고수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총무처 등은 청소노동자와 학교 사이에 직접적인 사용종속관계가 없음을 주장하지만, 청소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원청인 연세대학교의 지배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7두8881 판결은 ‘사용자’를 “근로자와의 사이에 사용종속관계가 있는 자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해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명시했다.

원청이 간접고용노동자에게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이상, 원청은 노조법상 사용자로서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 금지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연세대학교는 간접고용이라는 형식 뒤에 숨어 청소노동자와 교섭할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 


이에 문우편집위원회는 7월 18일, 총무처 총무팀장에게 학교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취재를 요청했으나 답을 받지 못해 전화와 메일 전송을 반복하였고, 7월 30일에서야 진행중인 사안이니 취재가 불가하다는 짧은 답만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행태는 학교 구성원의 정당한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는 처사이며,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의 의사가 전무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총무처는 학내 문제 해결을 위한 소통 창구로서의 역할을 저버리고 있다.  


앞서 서술했듯 노동조건에 관한 대부분의 결정권한이 학교에 주어져 있는 상태에서 학교 측이 교섭에 응하지 않는 것은 사용자의 책임이자 학교를 운영하는 주체로서의 책임을 방기하는 행위이다. 학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청소노동자의 시위가 아니다. ‘다른 학교들이 (집단교섭안에 도장을) 찍으면 (우리도 도장을) 찍겠다’는 식의 불성실한 교섭 태도, 청소노동자들의 천막농성에 본관 폐쇄로 대응하는 것,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 교무처 등, 학생을 포함한 모든 학내구성원에게 무책임한 학교가 ‘불편’을 낳는다. 학교는 학내노동자들의 실질적 고용주로서 교섭에 성실히 응할 책임, 청소·경비노동자의 복리후생에 대한 책임을 다하라. 


학교는 언더우드관 앞의 천막만 외면하면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우리는 학내 구성원으로서, 노동하는 존재로서,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청소노동자와 함께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요청한다, 이 글을 보는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청소노동자와 함께할 것을. 

연세대학교뿐 아니라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 14개 대학사업장 노동자의 투쟁은 노동권의 보장을 위한 정당한 요구이다. 그러므로 원청 연세대학교는 청소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고 이에 응답하라. 우리는 학교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학교가 교섭에 성실히 응할 때까지, 나아가 학내노동자의 정당한 노동권이 보장될 때까지 투쟁에 연대할 것이다.  


2024. 7. 30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자치언론 문/우/편/집/위/원/회 


중앙도서관 앞 대자보
학생회관 안 대자보

그러나 대자보를 부착하고 이틀밖에 지나지 않아 8월 1일 중앙도서관 앞에 부착한 대자보가 사라졌다. 도서관에서는 관외의 게시물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않고, 도서관을 청소하는 노동자들은 대다수 조합원인 상황에서 학생 혹은 학교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문우에서는 대자보를 재부착하며 “대자보 작성 및 부착은 학내 구성원,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부착된 대자보를 훼손하거나 수거하지 마십시오. 9월 이후 혹은 교섭 타결 시 직접 수거하겠습니다.”라는 문구와 문의를 남길 수 있는 문우 공식 메일 주소를 작성한 포스트잇을 덧붙였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지 않은 7일, 또다시 대자보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자보는 왜 계속 떼어지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 집요하게 청소노동자의 목소리와 그에 연대하는 목소리를 지우고자 하는 것일까? 

또한 문우는 청소·경비노동자의 질문에 대한 학교 측의 입장을 듣고자 총무처에 7월 18일 취재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답신이 없어 몇 차례 더 보내고, 전화로 답신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7월 30일이 되어서야 “현재 민주노총과의 협상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인터뷰가 어려움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한 줄짜리의 답변만 받을 수 있었다. 



 4. 나가며


교섭이 결렬되어 쟁의행위에 돌입할 때도 청소·경비노동자들은 매일 해오던 일과 투쟁을 병행한다. 우리가 청결하고 위생적인 상태의 학교를 오갈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시간에 학교에서 땀 흘리며 바닥을 쓸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창문을 닦고, 문을 여닫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청소·경비노동자의 노동이 멈추면 학교도 멈춘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천막 농성으로 텅 비었던 본관에 어떻게 다시 교직원들이 출입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문유례       본관 같은 데는 나무 재질이 많잖아요. 거기서 뭔가 썩는 냄새 정도 날 정도로 곰팡내가 이렇게 고약하게 나더라고요. (중략) 그 정도로 악취가 많이 났는데 어우 진짜 그래도 학교가 돈이 많은가 봐요. 청소업체 하루 딱 불러서 전부 다 하고 나서 그다음에 (교직원들) 다 들어가더라고요. 곰팡이 제거, 냄새 제거 다 하는 그 돈 만만치 않아요.

황금순        하는 데도 돈 꽤 들어갔을 텐데, 몇백은 들어갔을 텐데.

문유례       그리고 또 우리가 점거해 놓으면 또 (교직원들은) 나왔다가. 또 몇백 들여 (곰팡이 제거) 또 하면 되지 뭐. 그러지 말고, 그런 거에 그렇게 성의 없이 돈 쓰지 말고 쿨하게 청소 노동자들 밥 한 끼 따뜻하게 먹으시오 하면, (식대) 주면 되잖아.


천막 농성이 시작되자 학교가 청소·경비노동자의 존재를 부정하며 출입을 막은 본관은 역설적으로 가장 청소·경비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상태가 됐다. 공부하고, 웃고, 떠들고, 활동하는 학내의 모든 공간은 청소노동이 멈추면 낡고, 더러워지고, 곰팡이가 핀다. 청소·경비노동자의 노동은 학교에서 필수불가결하며, 학교에서 살아가는 모든 구성원의 삶의 질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그럼에도 학교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한다.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귀담아듣지 않는다. 하루의 일과에서 끼니를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시간을 거쳐 집으로 돌아가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치우는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건물을 말끔하게, 새것처럼 유지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바로 지금의 연세대학교다.


활동 시간과 반경이 완전히 나누어져 있는 듯하지만, 학생과 청소·경비노동자는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학교가 자리 잡고 있는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노동자의 노동 조건과 삶은 학생과 교직원 등에게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우리의 삶은 이들의 노동에 빚지고 있다. 그렇기에 연세대학교에 공대위가 생겨났고, 꾸준히 노학연대가 이어져 왔다. 그 물결을 이어 문우편집위원회도 청소·경비노동자의 투쟁에 대한 기록을 남김으로써, 이 움직임에 미약하게나마 힘을 보태고자 한다. 천막 농성 중 마주친 학생에 대한 이류한승 조직부장의 이야기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류한승     비가 계속 왔잖아요. 근데 우리 농성장에 그냥 같이 앉아 있고 싶어서 왔습니다, 이렇게 인사를 하고 온 학생이 있었어요. 그 학생은 정말 같이 앉아서 책을 읽다가 그다음에 우리 조합원들하고 얘기 나누면서 그렇게 오전 내내 있다가 갔어요. 그다음 날 또 오셨는데 그날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어서 천막이 이만큼 올라갔어요. 넘어질 뻔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뛰어나가서 막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면서 천막을 바로잡고 있는데 이 학생이 막 뛰어와서 우산을 씌워주다가 마무리되고 갔거든요. 그렇게 어쨌든 조용히 와서 같이 하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게 굉장히 조합원들에게도 그렇고 저한테도 그렇고 위안이 됐죠.


연대라는 행위는 막막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조합원들에게 집회 현장을 찾아온 학생들은 애써 목이 터질 듯이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뒷배”다. 그렇다면 곁에서 우산을 들고 바람에 쓰러지는 천막을 같이 붙잡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그다음에는 노동하는 존재로서, 동료 시민으로서, 우리의 곁에 자리 잡고 있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 연대의 물결을 만들어보자. 8월 안에는 식대 인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 용역업체가 약속을 이행하는지, 도급 계약 뒤에 숨어 있는 연세대학교가 임금협약 동시타결, 또는 8월 중 임금안 합의에 어떤 태도로 임하는지 꾸준히 지켜보자. 한 명 한 명이 모여 학교를 바꾸고, 청소·경비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고, 더 나아가 모든 노동자가 존엄하게 노동할 수 있는 세상으로 향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부록: 연세대학교 내 청소·경비노동자의 투쟁 역사

편집위원 비상

 

연세대학교 내 청소·경비노동자의 투쟁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07년 특강을 듣던 재학생들이 연세대학교 청소노동자의 노동 실태조사를 하다 ‘살맛’을 조직하였고, 이는 학내 노동문제 해결을 위해 힘쓰는 노학연대체인 연세대학교비정규노동문제해결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살맛’의 학생들과 청소노동자들이 모인 연세대분회도 같은 연도에 결성되었다. 연세대분회와 공대위는 지금까지도 존속하며, 학교와 용역업체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7]

그 이후의 굵직한 사건들을 요약하자면, ‘코비 컴퍼니’ 사태가 있겠다. 많은 대학교들이 노동자를 고용할 때, 학교와 노동자 사이 용역업체를 낀 간접고용 형태를 채택하고 있고 연세대학교도 마찬가지인데, ‘코비 컴퍼니’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백양누리와 경영관 등의 청소를 담당한 용역업체이다. 코비는 청소노동자들에게 위험한 정화조 청소를 시키거나 공휴일에도 일을 시키고, 월차와 연차를 주지 않는 등 부당 노동 행위를 자행해왔다. 이에 노조가 대응하자, 코비 측은 노동자들을 따라다니며 감시하고 노조 탈퇴를 종용했으며, 노동자들은 코비를 몰아내자는 목표하에 투쟁하게 되었다.

당시 문우편집위원회와 연희관 015B, 연세편집위원회와 YIRB 총 네 학내 언론단체는 ‘아직도 반복되는 청소경비 노동자 문제와 코비 컴퍼니 사태의 해결에 디딤돌이 되길 바라는 언론모임’의 줄임말인 ‘아코디언’을 결성하여. 2019년부터 코비 컴퍼니 사태에 대한 릴레이 특별 기획기사를 작성하였다.[8] 아코디언은 이외에도 학교와 코비에 맞서 연서명을 받고 입장문을 내고 집회를 진행하였다. 

또한 당시 총학생회 <Mate>가 청소·경비노동자 휴게시설 보장을 약속하였으나 당선 이후 해당 공약은 이행되지 않아, 문우편집위원회 등 여러 단체가 이를 규탄한 사건도 있었다. 당시 중앙운영위원회에 올라온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입장문 작성과 연서명 안건은 부결되었고, 공대위가 요청한 단체 소개 및 홍보 안건 상정 또한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9]

그러다 마침내 2020년 12월, 코비 컴퍼니가 학교에서 퇴출되어 투쟁의 한 단락이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사회와 학내 상황이 계속해서 바뀌는 만큼, 투쟁도 계속 진행될 수밖에 없다. 2022년 3월, 연세대분회의 집회가 다시 시작되었다.[10] 투쟁의 요지는 물가 인상에 따른 실질적 임금의 삭감을 막기 위한 440원 임금 인상, 정년퇴직자 인원 충원, 샤워실 설치를 위한 원하청협의기구 설치 요구였다. 가파른 물가 인상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요구는 생존권과 노동권에 직결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5월, 연세대 재학생 이동수 씨가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집회를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해당 고소가 있은 지 두 달 후, 청소·경비노동자의 투쟁에 연대하는 연대생들의 기자회견이 공대위의 주도하에 열렸으며, 청소·경비노동투쟁지지 연서명은 삼천 명을 넘겼다. 당시의 투쟁은 8월 26일 임금 인상안이 타결되며 종료되었으며, 다행히 고소 건도 2024년 2월 6일 청소노동자 측의 승소로 마무리되었다.



[1] 집단교섭 대학사업장: 고려대, 고대안암병원, 광운대, 덕성여대, 동덕여대, 서강대, 성신여대, 숙명여대, 연세대, 연세재단빌딩, 이화여대, 인덕대, 카이스트, 홍익대 (소수노조: 중앙대, 서울여대, 세브란스병원)

[2] 해당 사업장들에서는 민주노총은 소수노조이고, 한국노조가 다수노조인 상황이다.

[3] 남지원, 황민국. “연대 청소노동자노조 파괴하려 대학 간부가 어용노조 설립 지시.” 경향신문, 2012.12.11., https://www.khan.co.kr/national/incident/article/201212112224545.(2024.08.15. 접속).

[4] 윤자은. “하청업체 단체협약 휴지 조각 만든 원청 연세대.” 매일노동뉴스, 2018.08.10.,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3231.(2024.08.15. 접속). 

[5] 청소노동의 구역을 나눌 때,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의 백양로 건물 쪽 삼거리를 포함하여 북쪽 구역을 칭하는 말

[6] 청소노동의 구역을 나눌 때,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의 백양로 건물보다 남쪽에 위치한 영역을 칭하는 말

[7] ‘살맛’의 활동과 관련하여 자세한 이야기는 살맛의 학생들이었던 김세현, 오수빈, 용락이 쓴 『빗자루는 알고있다』 참고.

[8] 당시 언론단체들이 작성한 릴레이 특별 기획기사는 아코디언 페이스북 페이지에 실려 있다.

[9] 문우편집위원회. “2020 아코디언 기획기사“여전히 남아있는 책임 - 말 뿐인 ‘최선’을 넘어 실질적인 ‘행동’으로.””https://blog.naver.com/yonmunu/222147196137 참고.

[10] 연희관 015B. “보이지 않던 노동을 마주할 때.”https://brunch.co.kr/@yonsei015b/152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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