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유연
안녕하세요, 독자분들은 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요즘은 참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답하는 일이 버거워졌습니다. 괜찮냐는 질문의 공허함과 뭉툭함을 실감하면서도 슬퍼하는 친구에게 별달리 적절한 말을 건네지 못할 때, 도무지 괜찮지 않아서 나를 걱정하는 얼굴에 아무 말도 돌려줄 수 없을 때, 아무도 잘 지내지 못함을 알 때. 올해는 조용히 무너지는 순간이 잦았습니다.
압도적인 재난에 휩쓸리고도 우리가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니 웃기고 신기한 일입니다. 그렇게 살아있는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요?
절절 끓었던 여름을 지나보내고, 문우는 이번 학기에 생태정치를 공부했습니다. 기후위기를 만들어낸 자본주의와 성장중심 체제의 그물망을 살펴보았고, 이를 마주하는 우리의 정치를 고민했습니다. 세미나가 끝난 후 펭은 ‘쌓인 이메일만 지워도 환경 보호에 기여한다’는 캠페인을 떠올리며, ‘지금의 체제에서 개인에게 기후위기 해결 의무를 지우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의문을 던졌습니다. 「스크린 너머의 물질 세계」를 통해 펭이 주목한 IT기업이 가리고 있는 ‘비물질’ 산업의 ‘물질성’과, 그것이 기후위기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한편 함함은 이토록 불안하고 위태로운 현실에서 우리가 꿈꿀 수 있는 가치로 돌봄을 가져옵니다. 「공동체를 향한 상상」은 함함의 진솔하고 발랄한 목소리로 정상가족이 아닌 공동체를 그리는 드라마들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소위 말하는 ‘대안공동체’에도 여전히 작동하는 자본주의와 성장 이데올로기를 섬세하게 짚어나갑니다.
기후위기와 더불어, 작년 12월 3일엔 또 다른 재난이 우리에게 찾아와 삶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불법 계엄령이 선포되고, 국회에 들이닥친 군대를 시민들이 막아서고, 국회에 의해 계엄령이 해제된 이후엔 매주 윤석열 탄핵 집회가 잇따랐습니다. 12⋅3 내란 사태 이후 문우가 숨가쁘게 살아낸 시간을 데어가 「탄핵 대자보 아카이빙」을 통해 정리해 두었습니다. 이어지는 「계엄 이후 구성된 학내외의 광장에 대한 개인적인 재현과 기록」은 유연이 온몸으로 경험한 광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연은 ‘모두의 광장’과 ‘하나의 광장’을 대비하며, 연세대학교 광장의 탈정치성과 순수성 강박을 지적합니다. 마지막으로 농촌을 고향으로 둔 단(丹)은 「사라져가는 땅을 바라보며」에서 남태령 연대에 주목합니다. 이번 호의 가장 긴 글인 「사라져가는 땅을 바라보며」는 단(丹)의 농촌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회고로부터 시작해, 지금의 농촌과 양곡관리법을 치밀하게 살핌으로써 완결됩니다.
문우의 눈으로 넘어가면, 이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필자(筆者)는 「흔들리는 존재의 기록 : 불안의 확장과 수렴」에서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불안을 조명합니다. 이 불안이 어떻게 증폭되고 또 자신에게 수용되는지를 필자(筆者)는 찬찬히 따라갑니다. 지구인은 자신이 사랑하게 된 뮤지컬 ‘이터니티’에 대해서, 그리고 ‘이터니티’의 극작가가 극의 퀴어함을 부정한 사건에 대해 썼습니다. 「세상은 너를 잊었다 해도 한 번도 너를 지운 적 없어」는 사랑하는 작품에 배신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봄 직한 글입니다.
마지막으로, 71호의 활동 보고는 여느 때보다 두껍습니다. 이번 학기 문우는 학외에서 907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에 공동주최단위로, 팔레스타인과연대하는한국시민사회긴급행동에 연대단체로 함께했습니다. 두 단체의 파견인이었던 지구인이 문우의 활동을 정리했습니다. 또한 학내적으로는 문과대학의 자치언론으로서 문과대학 운영위원회가 문과대학 성평등위원회를 회칙에서 삭제하는 안을 총투표에 올린 건에 대해 항의하는 자보를 작성하였고, 문과대학 운영위원회와 여러 차례 성명을 주고받았습니다. 해당 활동에 데어가 맺음글을 덧붙이며 정리하였습니다.
문우의 편집위원들은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괜찮지 않게 한 학기를 살아왔습니다. 앞서 독자분들의 안부를 물었었지요? 지금 당장 답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문우가 이번 학기를 살아낸 기록, 71호를 찬찬히 읽으며 생각해 주세요.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살아간다는 것을. 슬퍼하며, 껴안으며, 죽을 것 같다는 말을 반쯤 농담으로 주워섬기며, 그건 반은 진담이라는 뜻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고, 하루 세 끼 밥을 먹고, 가끔은 한 끼도 안 먹으면서, 깃발을 흔들고, 막연한 미래를 두려워하고, 영원히 뉴스를 들으며, 성큼 다가온 연대에 눈물짓고, 그 모든 막막함에도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아있는 우리는 무엇을 하게 될까요?
시대와 박자를 맞춰 숨쉬며, 편집장 유연 올림